인류는 꿈이나 가치를 찾지 않았다

꿈이 없어도 괜찮아. 2

by Simon de Cyrene

분명한 꿈과 목표를 갖는 것이 위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분명한 꿈과 목표를 가질 것을 요구받는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장래희망'을 써내도록 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문화가 있을까 싶은데, 이는 아이들이 '장래희망'을 써내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직업의 귀천을 따지게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써낸 장래희망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장래희망을 써냈는데, 학교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연락을 하신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나는 4학년 때 장래희망을 '경비원'으로 써냈는데, 그걸 보신 선생님께서 집에 연락을 하셨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는 시대도 아니었는데 집에 전화까지 하신 것을 보면 선생님도 어지간히 놀라셨나 보다.


내가 장래희망으로 경비원을 써낸 이유는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나는 당시에 하교를 한 후나 주말에 집 앞 주차장에서 친구들과 야구를 하곤 했는데, 경비아저씨들은 우리를 항상 쫓아내셨고 나는 야구를 마음껏 하면서 놀고 싶어서 경비원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장래희망에 '경비원'을 썼단 이유로 혼이 났고, 유별나단 얘기를 들었다.


바뀐 나이로 갓 10살 정도가 된 아이가 세상에 대해 얼마나 알겠나? 당시에 나의 시선에서 경비아저씨는 가장 힘이 센 존재였다. 다른 아이들은 의사, 대통령, 변호사 같은 걸 써냈지만 그때도 지극히 현실적이었던 나는 그런 직업이 되어서 뭘 하는지 몰랐다 보니 내 삶의 반경 안에서 장래희망을 써냈는데 그게 혼날 일이고, 부모님께 연락이 갈 일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장래희망에 변호사, 의사, 대통령, 국회의원을 쓸 때 얼마나 그 직업과 그 직업을 갖게 되는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을까? 그러한 장래희망은 사실 그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에 의해서 강요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들이 이 직업이 좋다고 하니까, 이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하니까 그 장래희망을 써내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써내는 경우보다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얼마나 폭력적인 일인가?


그런데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는 거의 꿈을 꾸거나 목표를 갖고 살지 않았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고, 위인전을 읽으면서 마치 모든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엄청난 꿈과 목표를 갖고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역사는 대부분 국가와 권력에 대한 의사결정을 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서술이 되어 있고, 위인전에 개인의 삶이 소개될 정도의 사람은 그만큼 예외적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지구에 태어나 숨을 쉬었던 대부분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남겨져 있지 않고,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이나 목표를 갖고 살지 않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꿈이나 목표를 가질 수 없는 세상에 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산업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의 당면과제는 '생존'이고, 개인의 자유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근대사회 이전에 사람들은 계급사회의 한 조각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사람들은 생각보다 오래 살지 못했다. 1900년대 초에 집계된 조선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36세, 조선시대 27명의 왕의 평균 수명이 47세였고, 중세유럽의 평균 수명은 30세, 1900년대에도 50세에 불과했다는 것은 사실은 사람들이 뭔가를 꿈꾸고, 목표를 세워서 살기에는 너무 짧게 살았단 것을 보여준다.


만약 인간이 꿈을 꾸거나 목표를 가져야만 하는 존재였다면,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꿈을 꾸고 목표를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구에 태어나 숨을 쉬었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특별한 꿈이나 목표를 갖지 않고 살았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일 자체에 대해 만족하거나 그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지 않았다. 인류에게 일은 생존을 위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었고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에 공개한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 및 격차 실태와 정책적 함의'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순자산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상위 1%는 전체의 10.9%, 상위 4%는 29.3%, 상위 10%는 43.2%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부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대부분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건 부자들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자본주의에서는 필연적으로 돈이 돈을 벌게 되어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상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면 돈이 아닌 다른 꿈이나 목표는 어떨까? 꿈꾸고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우리는 꿈꾸고 목표한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이뤄지지는 않는단 것을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꿈과 목표를 갖고 있는데 그들이 목표로 하는 '자리'나 '지위'나 '직업'은 무제한으로 공급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비슷한 꿈과 목표를 갖고 살면 살수록 그만큼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고, 그들은 결국 생존과 생계를 위한 일을 하게 된다.


사실 이런 현실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까지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입시가 성공여부의 첫 기준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으니 대학진학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대학도 아니고 '괜찮은 대학'의 기준이 '인서울'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고, 여기에 의대나 한의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정도가 '괜찮은 대학'에 포섭된다. 그런데 그런 '괜찮은 대학'에 포섭되는 대학은 한해 수험생 중 10%도 수용하지 못한다. 이 얘기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무려 90%는 '괜찮지 않은 대학'에 진학하게 된단 의미다. 그리고 그 10% 안에서도 서열이 있어서 자신이 진학한 대학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란 점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 중 90% 이상은 20대가 되기도 전에 자신의 꿈과 목표가 좌절되는 경험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어렸을 때부터 꿈꾸고 목표를 가질 것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그중 대다수, 최소 90% 이상은 자신의 꿈과 목표가 좌절된다. 이게 정상적인가? 우리는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꿈꾸고 목표를 가지라고 어렸을 때부터 가르치는 것인가?


꿈꾸고 목표를 갖고 그것을 달성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많은 경우 그 성취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내 취업과정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데, 나는 사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사기업에는 지원을 아예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언론사 시험 재수하면 지원은 못해준다'라고 하셨고, 나는 뒤늦게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대학 4년 내내 사기업은 생각도 없었고, 경영학과 수업은 하나도 들은 적 없는 나는 지금 돌아보면 너무나도 이상적인 얘기만 면접에서 떠들어댔고 대부분 회사에서 "너무나 재능이 뛰어나시지만 아쉽게도"라는 말이 들어간 결과를 받아 들었다.


기나긴 취업시장에서의 사투 끝에 나는 한 곳에만 합격했다.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연봉이 낮은 회사였을까? 아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당시 평균 연봉이 금융권을 제외하면 5위를 벗어나지 않았고, 내가 지원했던 모든 회사들 중 연봉이 가장 높은 회사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치 실력과 능력이 객관화될 수 있고 절대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대한민국 입시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재능이 없는가? 아니다. 정말 창의적인 사람들은 암기중심에 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의 공교육제도와 입시 안에서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우리가 발휘하는 '능력'에는 많은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꿈꾸나 목표했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곧 그 사람이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생계와 생존을 위해 일하는 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인류역사를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꿈이나 목표를 갖지 않거나 꿈이나 목표를 이루지 못한 삶을 살았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린 꿈이나 목표를 이룬 사람들이 행복했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건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