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어도 괜찮아. 1
사람들은 꿈을 꾸라고 한다. 심지어 꿈이나 목표가 없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너는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으면서 마치 꿈이나 목표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받으며 성장한다. 꿈은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다. 꿈은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고, 인생에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꿈이나 목표가 없는 상태가 더 건강하고 바람직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이는 꿈이나 목표가 명확한 사람들은 그 꿈이나 목표만을 바라보면서 다른 것들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한 사업가가 되겠다는 꿈과 목표가 있는 A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A의 꿈과 목표가 분명하고, 명확함과 동시에 크면 클수록 A는 자신의 꿈과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A는 돈을 버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나 도덕적인 문제는 무시하고, 그런 문제들이 걸리지 않는 꼼수들을 써가면서 돈을 벌고 회사를 키울 생각만 할 것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이미 경험했다. 산업화 시대에 그런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은 5-6살짜리 아이들을 공장으로 내몰았고, 1990년대에도 우리가 모두 아는 글로벌 기업은 법망을 피해 가난한 나라에서 아이들이 축구공과 축구화를 만들도록 했다. 그렇게 멀리까지 않아도 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인간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다른 것들을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번에는 B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과 목표라고 생각해 보자. B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단기적으로는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해칠 일은 없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정계에 뛰어든 후에 오로지 대통령이 되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B를 상상해 보자. B는 자신이 지킬 수 있는지 공약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이 듣고 싶은 공약을 남발할 것이고,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상대방의 단점을 집요하게 물고 뜯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은 이미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대통령이 된 후에는 본인이 대통령으로 한 업적을 기록에 남기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 삶보다는 무리를 해서라도 자신의 업적을 남기기 위한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의사결정을 할 확률이 높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무엇인가가 꿈이나 목표로 설정된 뒤에는 경주마처럼 옆은 보지 않고 앞으로 질주만 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다. 히틀러는 순수한 인종으로 구성된 국가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사지로 내몰았고, 수많은 사이비 종교단체 창시자들은 돈이나 성을 위해 종교를 이용했으며, 마약상들은 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나락으로 보낼 수 있는 마약을 판매한다.
우리는 이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꿈이나 목표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정치인들 중 상당수가 선거철에 내놓는 공약들만 봐도 그렇다. 세금은 줄이는데 복지는 늘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공약을 내놓는 사람들은 선거 때마다 있지 않나? 그렇게 멀리 가지 않고 회사만 들여다봐도 그런 사람들은 많다. 반드시 일을 마쳐야 할 데드라인이 있어서 본인이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일을 떠맡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워라밸을 챙기기 위해 무조건 칼퇴를 하는 직원도, 반대로 자신의 평판을 위해서 만들지 않아도 되는 보고서를 자신의 팀원들에게 만들 것을 강요하는 상사도 모두 자신의 목표를 위해 주위 사람들의 삶을 희생시키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꿈과 목표를 너무 분명하고 강하게 세우는 것은 이처럼 위험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봤을 때 우리는 어쩌면 꿈과 목표가 너무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꿈이나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C와 꿈과 목표가 분명한 D가 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두 사람이 모두 해고당한다면 C와 D는 어떻게 반응할까? 물론, 두 사람은 모두 힘들어할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성향이 그렇게나 다르다면 두 사람은 회사를 다니는 이유도 달랐을 것이다. C는 아마도 본인이 지원한 회사들 중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주거나 집에서 가기 편한 회사를 선택했을 것이고 D는 그 회사에서 분명하게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C는 해고가 되고 나면 힘들긴 해도 또다시 연봉이나 집에서의 거리, 평판 등을 듣고 다른 곳에 취업을 하기 위한 노력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반면 D는 자신의 목표가 좌절됨으로 인해 방황하고, 힘들어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D는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맞는 회사들만 찾아서 그 회사들에만 지원할 확률이 높다. 누가 더 빨리 재취업을 할 수 있을까?
이처럼 꿈이나 목표가 너무 명확한 것은 그 꿈이나 목표가 좌절되는 경우 그 사람을 나락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나는 학부를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잘 취업해서 1년을 다니다 아무래도 회사에 오래 다니면 조직에 종속이 될 것 같아서 2년 차에 로스쿨에 지원을 했고, 곧바로 좋은 로스쿨에 합격을 했다. 그 뒤에 나는 너무 당연하게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줄 알았기 때문에 무조건 연봉을 높게 주는 대형 로펌에 취업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대형 로펌에서 인턴은 했지만 오퍼는 받지 못했고, 심지어 변호사시험에도 합격하지 못했다. 나는 그 후유증 속에 수년을 방황했고, 지금도 그 과정에서 경험한 실패의 기억이 내게 영향을 일부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삶은 불행해졌을까? 아니다. 실패하고, 힘들어하는 과정이 좋았거나 필요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역설적이게도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덕분에 다른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내 로스쿨 동기들이 연차가 쌓이는 과정을 옆에서 보면서 나는 그들이 하는 일들을 하면서 절대로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다 보니 나는 진심으로 관심이 있는 분야를 공부해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지금은 의미가 부여되는 일들을 프리랜서로 하고 있다.
그 과정을 돌아보면서 아쉬운 게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내가 로스쿨 재학 시절에 가졌던 꿈과 목표가 과도하게 분명했고 강했단 것이다. 그런 나의 성향은 내가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30대 초반까지 항상 목표하던 바를 이뤘고, 실패가 낯설었던 나는 집 안은 물론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굴었고 그들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은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지금도 해결되는 과정에 있다.
꿈과 목표를 갖는 것 자체가 부정적이거나 잘못되었단 것이 아니다. 꿈과 목표가 '너무' 분명하고 강한 것은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본인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꿈과 목표는 갖더라도 적당히 느슨하게 설정해도 괜찮다. 느슨하게 꿈과 목표를 설정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상황에 반응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단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유연성은 절대로 모든 것이 내가 계획하고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