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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pr 20. 2024

법이 전제하는 '개인'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합리적인 것을 전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을 기초로 해서 경제적인 예측을 하고, 모든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아니지만 평균치를 따라가다 보면 균형점이 잡힌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법학은, 법은 어떤 인간을 전제로 하고 있을까?


법학을 연구하고, 현실에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들 중에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이는 법학은 지극히 현실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다. 학부에선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법학을 박사과정까지 마친 나는 두 학문이 모두 규범에 대한 학문이지만 두 학문이 얼마나 다른 지에 대해서 때때로 굉장히 놀라곤 한다. 


정치외교학은 무엇인가를 이론화하고 지나간 일에 대한 설명을 사후적으로 제시하거나 아직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해 예측을 하다 보니 조금은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강하다. 이와 달리 법학은 철저히 땅에,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학문이다. 그리고 법학은 헌법과 법률을 주어진 것으로 전제하고, 헌법에 비춰서 법률을 평가하고 판단하거나 헌법과 법률에 담겨 있는 의미를 해석하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법학에서는 '사람은 어떤 존재야?'라는 질문이 파고들 틈이 별로 없다.


물론 법철학, 법사회학, 법정책학, 입법학과 같은 영역에서는 그런 논의가 이뤄진다. 하지만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고 변호사시험 합격자 숫자가 고정되면서 로스쿨은 학문이나 인문학적인 사고를 함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으로 전락해 버렸다. 변호사시험과 관련 없는 과목들은 폐지되고, 학생들도 당장 시험부터 합격해야 하다 보니 다른 영역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 그렇다 보니 법학에 대한 논의에서 '사람'은 어떤 존재인지를 고찰하는 사례들은 더더욱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을 연구하거나 집행하는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라도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검사들은 매일 범죄자들만 보다 보니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전제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판사들은 법정에서 믿을 수 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다 보니 사람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거나 믿지 않는다. 이는 변호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변호사들 중에 순수하게 자신의 의뢰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느 정도 연차가 찬 변호사들은 자신의 감정과 믿음의 영역을 구석으로 미뤄놓고 의로인의 말이 맞다고 치고 소송을 '대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렇듯 법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불신이 전제되어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판사, 검사, 변호사만 그럴까? 아니다. 이는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법학자들도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는 항상 리스크부터 생각하고,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번 학기에는 AI와 법에 대한 대학원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관련 논문들을 읽다 보면 AI의 가능성보다는 리스크에 대해서 주장하는 보수적인 입장이 법학 논문들 중에는 훨씬 많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은 왜 만들어지는가? 법은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만들어지는 장치다. 사람들이 자신의 선함을 주장하려고 할 때 '나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야'라고 말하지 않나? 그건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법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란느 것을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하물며 법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렇다면, 매일 법을 보고 고민하거나 거짓말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들을 매일 보는 사람들은 어떻겠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여기에서 보수적이라는 것은 시스템의 안전과 보호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고? 이는 시스템을 유지할 경우에는 현재가 유지될 수 있지만 법을 바꾸면 어떠한 새로운 리스크가 어떠한 방식으로 발생할지가 예측가능하지 않아 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면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은 매일, 매일 법조문을 주어진 사안에 어떻게 해석해서 적용할지를 보다 보니 좋게 말하면 디테일하고 섬세해지지만 나쁘게 말하면 시야가 좁아지는 경우가 많다. 판사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일반인들 기준에서 상식에서 벗어난 결정들이 내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법이 만들어질 경우 생기게 되는 리스크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서 그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게 업이다. 그렇다 보니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항상 위험요소를 포착하는데 도사가 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실에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해서 먹고사는 사람들도, 법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모두 예민하거나 편집증적이고 자신의 주장이 강한 경우가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법을 도구로 생계를 해결하는 사람들은 그게 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을 하는 사람들이 성악설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의 영역에서도 과거에는 성악설을 전제로 처벌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인권에 대한 개념과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 줘야 한단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국가에 의한 처벌은 배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마저도 사실은 '인간은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를  전제로 하여 어떻게 하면 그런 피해를 덜 주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유인들을 조절할 것인지가 결국은 법으로 생업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법을 주된 도구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상대적으로 부정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지를 잘 보여준다.


로스쿨을 지망하는 사람들은 본인도 그렇게 변해 갈 것이란 것을 알고 지원하는 것일까? 그 지점에 개인적으로 항상 가장 궁금하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멀리 와 버렸지만... 나는 모르고 지원했었다. 내가 법을 몰랐다면, 나는 조금 더 긍정적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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