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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유치원, 보내야 할까?

by Simon de Cyrene

지인이 회사에서 보내주는 연수로 캐나다로 나갔다. 애 때문에 나간다고 하길래, 처음 가서 혼란스럽고 복잡할 수 있으니 잘 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그 혼란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그랬더니 '네가 우리 애를 알아?'라는 식으로 '형 때도 영어유치원 다니다 갔어요?'라고 묻더라. 내가 어렸을 때 영어유치원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우리 애는 당신이랑 어린 시절 자체가 달라'라는 뉘앙스가 깔려있는 어조였다.


어렸을 때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무역회사에 다니셨고, 아버지께서는 물려줄 정도의 재산은 없으니 영어와 중국어를 할 줄 알며 밥벌이는 하지 않겠냐고 생각하시고 한국과 중국 간의 수교가 이뤄지자마자 손을 들고 중국지사를 개척하러 나가셨다. 그 덕에 영어는 한국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하고, 중국어도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한다.


한 때는 그런 부담감이 있었다. 나는 부모덕에 영어를 편하게 하는데, 내 아이에게는 그런 환경과 교육을 제공해주지 못하면 미안할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사회와 기술이 바뀌는 속도를 보고, 또 내가 다니는 교회 어린이부에서 어렸을 때 해외에 살다 와서 독어, 불어, 영어는 편하게 하지만 한국어는 편하게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내 또래인 30대 후반에서 40대 초중반까지의 부모들은 여전히 영어와 외국어, 그리고 다른 나라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그럴까? 그들이 사는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금도 다른 나라 언어를 하지 않아도 Google Translate 등을 통해서 소통을 하는 세상에 산다. 나는 독일어를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억지로 한 것 외에는 전혀 접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툴을 이용해서 독일 원자료들을 번역해 가면서 발표자료를 만드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정도로 언어를 번역하는 기술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지금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한국어로 말하면 기계가 자동으로 상대가 설정한 언어로 번역을 해서 듣게 되는 장치들이 보편화되어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의 AI가 한국어로 물어봤다가, 영어로 물어보고, 중국어로 물어보면 각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현하는 걸 보면, 유치원이 아니라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는 모든 언어를 자유자재로 실시간 번역하는 이어폰이 나올지도 모른다.


설사 그런 장치가 개발되지 않더라도 언어 한두 가지를 조금 더 편하게 하는 건 엄청난 장점으로 작용하진 못할 것이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냐고? 내 세대만 하더라도 사실 언어 한두 가지를 더 하는 게 먹고사는데 획기적인 차이를 야기하진 않기 때문이다. 물론, 언어를 잘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런데 내 주위에는 성인이 되어서 경험의 폭을 넓혀가며 언어를 잘 습득해서 글로벌한 일을 하면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도 많다. 반면에 나처럼 어렸을 때 해외에 살아서 다른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도 업무에 전혀 사용할 일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어렸을 때 영어를 배우는 것의 유일한 장점은 발음 정도다. 어렸을 때 엄청난 어휘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발음에 그렇게 집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외국인이 발음을 너무 모국어처럼 하면 '너 이상해'라고 반응한다. 10-20년에 비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들이 확연하게 많아졌는데, 그들의 발음이 한국사람 같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폄하하지는 않지 않나?


의사소통이 잘 되기만 하면 한국어를 잘한다고 하는 것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의사소통이 잘 되면 그 언어를 잘한다고 말한다. 통역벽으로 군복무를 하던 시절 나와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미군들은 내게 '너는 한국 사람인데도 영어를 미국 사람처럼 하는 게 이상하고 적응 안 된다'라고 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해외에 살다 한국에 와서 독어, 불어, 영어를 한국어보다 편하게 하는 아이들을 보고, 영어유치원을 다니면서 본인이 영어 하는 것을 자랑하는 아이들을 보면 복잡한 생각과 마음이 든다. 해외에서, 다른 문화권에 살면서 항상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야 했고, 해외에서 나는 한국인으로 분류되는데 한국에 들어오면 다른 아이들과 사고체계와 성향이 달라서 외계인 취급을 받았던 경험들이 떠오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국을 비하하고, 한국인이 아니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봤는데 한국어는 제대로 못하면서 영어를 잘한다고 자랑하는 아이들을 보면 '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가장 한국적인 게 오히려 경쟁력일 수도 있는데'란 생각이 들어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진다.


지금 초중고등학교나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글로벌한 일을 할 경우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확실하게 에지가 있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미국 사람보다 미국적일 수 없고, 중국사람보다 중국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의 가장 큰 강점은 가장 한국적인 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초중고등학교나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장 확실하게 경험하고, 배우는 게 결국은 가장 큰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사대주의적인 문화가 남아 한국어를 제대로, 잘 알고 한국문화를 익히는 것보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가장 한국적인 게 어떻게 경쟁력이 될 수 있냐고? 넷플릭스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우리나라와 관련된 콘텐츠들을 생각해 보자. 최근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부터 '킹덤', '오징어게임'까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주목했던 것은 가장 한국적인 요소들이 들어가 있는 콘텐츠들이었고, 케데헌의 경우 한국 국적자들이 만든 건 아니지만 재미교포들이 많이 참여했는데 그게 가능했던 것도 그들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1980년대에 처음 해외에 나가서 유치원부터 다녔으니 어렸을 때 해외경험을 한 실질적인 1세대에 가까운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어렸을 때 영어를 배우는 건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영어와 함께 접하게 되는 외국의 문화들도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사춘기를 지나며, 나와 완전히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온 부모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을 잘 버텨내는 아이들도 있지만 정서적으로 무너지거나 왜곡된 가치체계를 갖게 되는 아이들도 굉장히 많다. 그런데 정말 큰 문제는 그 경험을 직접하고, 그 혼란을 잘 정리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되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되는 지를 부모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모른다는데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 감정을 부모에게 표현해도 부모는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주지 않다 보니 아이들이 스스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어도 그걸 부모에게 표현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나도 그 기나긴 터널을 지날 때 내가 그런 상태인 줄 몰랐다. 한국에 혼자 먼저 보내져서, 갑자기 기숙사 고등학교를 다니고, 야식으로 매일 라면을 먹어도 반년 만에 살이 10키로 빠지는 경험을 하면서도 나는 내가 힘든 줄 몰랐고 나의 사고체계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몰랐다. 나는 성인이 되고 한참이 지나서, 이미 내 머리와 마음을 따라 내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는데 그 선택이 한국에서 요구하는 정답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주위의 여러 평가와 말을 듣게 되면서야 비로소 내가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내고,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가며 학교에서 사용했던 주 언어로 사용했던 경험이 내게 미친 영향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무려 30대 중반 정도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어렸을 때 했던 경험과 내가 처했던 환경이 미친 영향을 깨달았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에서 영어유치원을 다닌 아이들은 내 다다음 정도 세대의 아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자라나는 환경이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인한 경험은 나의 그것과 또 다를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최소한 내가 어렸을 때보다는 높을 것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문화에 훨씬 관심이 많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게 한국 사람의 가장 큰 경쟁력일 수 있다. 이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언어의 장벽이 엄청난 수준으로 무너져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하고 좋을까? 영어유치원을 다닌다고 해서 영어능력치가 유지되지 않는다. 나는 5살에 해외에 나갔다가 8살 때 들어와서 5학년 때 다시 해외로 나갔는데, 한국에 들어와 있었던 기간에 영어를 다 잊어버렸다. 물론, 어렸을 때 했던 경험 덕분에 영어가 빨리 돌아오긴 했지만 이런 나의 경험은 영어유치원을 다닌 뒤에 그 언어적 감각과 능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계속 영어를 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그 아이가 한국에 살면서도 영어로 수업을 듣는 학교에 다니거나 영어학원을 다녀야 한단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유기적으로 사회관계를 형성하고 한국문화를 접하기보다는 한국에 살면서도 한국문화는 접하지 못하고 어렸을 때부터 더 많이, 빨리, 높은 곳을 향해 달릴 것을 요구받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이에게 그렇게 투자하는 부모는 반드시 그 아이에게 그만큼의 성과를 기대할 것이다. 우리 어머니께서 마흔이 넘은 아들에게 '너는 그때 익힌 언어를 어떻게 하나도 써 먹지 못하면서 사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게 정말 아이를 위해서 좋은, 필요한 교육일까?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진정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가족에게 기댈 줄도 알고, 가족이 기댈만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기 전에 영어유치원과 학원으로 내모는 것이 과연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시대에 본인이 한이 맺히고 부족함을 느낀 부분을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렸을 때 해외에 살았던 경험이 없는 부모가 아이를 영어유치원과 국제학교에 보내게 되면, 그 아이가 하는 경험과 생각을 절대로 이해할 할 수 없을 것이고, 아이에게 부모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영향을 아이들이 받게 될 것이며, 그 여파가 언젠가 어떤 방법으로든지 아이와 부모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단 사실도 알아야 한다.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건, 단순히 언어를 익히는 것 이상의 영향을 아이에게 미친다. 아이의 입장에서 직접 경험해 본 바로는 그렇다. 경제적인 능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나와 유사한 환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지인들 중에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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