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오탈자 하나쯤 있어도 괜찮아 2

by Simon de Cyrene

얼마 전에 SNS에서 10년 전 사진을 공유하는 게 유형처럼 번졌다. 오랜만에 10년 전에 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돌아봤다. 고를 사진도 없었고, 사진을 고르고 싶지도 않아졌다.


정확히 10년 전에 나는 변호사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요즘에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는 건 합격률 탓이라도 할 수 있다. 나는 로스쿨 초기에 로스쿨에 진학했고, 내가 처음 변호사시험을 볼 때는 합격률도 높았다. 우리 학교 교수님들은 '우리 학교 애들은 다 합격하겠지'라고 생각하고 변호사시험 대비를 전혀 시키지 않았고 우리 기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합격률을 기록했다. 모교수님은 '학교 이름에 먹칠을 한 놈들'이라고 하셨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학교 탓을 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담담하게 인정할 수 있다. 내 준비가 부족했었다고. 그렇다면 왜 준비가 부족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원인에 대해 지난 10여 년 간 얼마나 오랫동안 고민과 분석을 했겠나?


혹자는 내게 다른 사람들보다 덜 간절하다고 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일도 병행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했던 말이다. 그런데 당시에 내가 다른 일을 병행했던 것은, 30대 중반에 차마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었고 우리 집이 찢어지도록 가난하진 않았지만 내가 모든 금전적인 지원을 마음 편히 받을 수 있는 정도로 여유가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의 그런 상황과 마음을 몰랐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시험은 당연히 수험적합성이 높은 학원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라고 몰랐을까? 그런데 학원 강의를 들으면 일 년에 수강료로만 수백 만원이 나간다. 내가 로스쿨에 진학한 것은 그전에 회사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었다. 그래 놓고 부모님께 학원비와 생활비를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결국 돈 때문에 합격하지 못했을까? 아니다. 내가 변호사가 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변호사가 어떤 일을 하는 지를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업무의 성격과 강도까지 알게 된 뒤 나는 로스쿨 3학년 내내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온 게 아닌데, 도대체 뭘 해야 하는 거지?'라는 고민에 휩싸여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뒤에는 예상하지 못한 불합격이란 결과를 받아 들고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고 '합격해야 하는데'란 강박과 압박에 짓눌리자 생각이 많아져서 또다시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을 몇 년 전에 깨달았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공부를 안 하지 않았고, 내용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변호사시험은 내용을 아는 수준이 아니라 단기메모리에 시험용으로 머리에 잘 정리를 해서 당일 날 머리에 있는 걸 쏟아내고 나온 뒤 다음 날엔 다음 과목으로 머리를 채워 넣기를 반복하다 시험이 다 끝나면 내용의 상당한 부분이 완전히 휘발되는 시험이다. 그런데 생각이 많다 보니 그 생각이 차지하는 공간만큼 나는 합격하는데 필요한 내용을 머리에 넣지 못했고, 그 결과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물리적으로 공부를 많이 했다. 하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과 고민이 너무 많아서 불합격한 것이다. 오죽하면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여 시험 한 달 전부터 매일 약국에서 파는 신경안정제를 먹고, 정신과 의사인 친구가 콕 집어서 처방을 받으라고 한 신경안정제를 처방 받아 먹으면서 시험을 봤을까? 청심환 따위는 나의 긴장감이 뚫어버릴 정도로 나는 극단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내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소진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이 시리즈가 징징대는 내용을 가득 찰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는 않다. 만약 누군가 내게 변호사가 되지 못할 것을, 시험에 계속 불합격할 것을 알았더라도 계속 시험을 봤을 것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건 내가 그 길을 갔기 때문에, 인생을 조금은 돌아갔기 때문에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굉장히 많고 그 덕분에 내게 더 잘 맞고 보람, 의미, 가치를 느끼는 길을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쉽지 않다고,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단 생각을 진지하고 수백 번도 더 했다. 내 인생이 망한 것 같았고, 온세상이 다 내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로스쿨에 진학하기 전까지 또래들 중에는 금수저를 제외하면 나름 상위 1-2%의 삶을 살고 있었는데 모든 것에서 뒤처지면서 내 삶에 어떤 희망도 없는 것 같았다.


40대가 된 지금, 나의 30대를 돌아보면 수험생활과 박사학위 논문을 쓴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허무함이 몰려올 때도 있다. 가끔씩 유튜브에서 30대 초중반의 사회생활과 연애, 결혼에 대한 영상을 볼 때면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다양한 경험을 할 때 나는 공부 외엔 아무것도 하지 못했구나'란 생각이 들어 아쉬울 때도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렇게 30대를 통으로 날려버린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아쉬움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더 이상 후회하진 않는다. 내가 그렇게 산 시간으로 인해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으며,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내가 세상에서 고립되어 보낸 7년 간의 시간 덕분에 내가 더 많은 것을 갖게 될 수도 있단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내가 잃은 것이 당연히 더 많다. 하지만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과정에서 깎이고, 다듬어지면서 나 자신에 대해 더 깊게 알게 되고 그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앞으로 잘 활용하면, 나는 내가 가지 못한 길보다 내게 더 맞고 행복한 길을 갈 수 있단 것을 알기에 나는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 시리즈는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기나긴 터널을 지나면서 어떤 생각과 경험을 했으며, 지금 그 길을 돌아보면서 드는 인생과 삶에 대한 생각을 내 이야기를 시작점으로 잡고 풀어나가려 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한 사람이 힘을 얻으면 그건 하나의 세상이 힘을 얻는 것이기에 단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내 이야기가 힘을 준다면, 그것 만으로도 내가 이 시리즈를 쓸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 이야기와 생각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가 너무 작게 느껴지고 인생이 끝난 것처럼 여겨지는 누군가에게라도 아주 조금은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