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수저는 아니다. 프롤로그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로스쿨 학비와 로스쿨에 다니는 동안의 생활비를 모두 학부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충당했다. 그 정도 돈을 모으기도 했지만, 부모님께 지원을 부탁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우리 집에는 없었다. 변호사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인강을 듣는 비용도 부담스러웠으니 우리 집이 금수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흙수저인 것도 아니다. 아버지께서 다니셨던 회사는 내 학부 학비를 전액 지원해 줬고, 나는 부모님께 지원을 받긴 현실적으로 힘들었지만 부모님의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대기업을 다니셨고, 정년퇴직을 하셨으며, 퇴직 후에도 일이 있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힘들게 자랐다고 징징댈 자격은 없다.
성장하는 과정을 굳이 평가하자면 나는 흙수저보다는 금수저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아버지께서 무역회사의 해외 지사원으로 일하셨고, 그 덕분에 오랜 시간 동안 해외에서 외국인학교를 다녔으니까. 아버지께서 다니신 회사가 대기업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짠돌이로도 유명한 곳이다 보니 학비를 모두 지원해주지는 않았기에 부모님께서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학비를 감당하셔야 했다는 건 내가 크고 나서야 알았다. 부모님은 한 번씩 학비가 버겁다는 티는 내셨지만 그래도 두 아들을 위해 많은 희생과 투자를 하셨다.
그런 나의 성장과정을 들은 사람들은 1989년에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부터 해외에서 살았던 내 삶을 금수저나 마찬가지로 평가하기도 했다. 어렸을 땐 그런 시선이 억울했던 시기도 있었다. 사춘기를 전부 해외에서 보내고, 부모님께서 현실적으로 미국 대학 학비를 감당해 주실 수는 없어서 혼자 한국에 돌아와 기숙사학교에서 지내면서 많은 방황을 했기 때문이다.
혼자 귀국한 나는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내가 살았던 국가의 사람도 아닌 모든 게 뒤섞인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영어로만 수업을 들었다 보니 나는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오죽하면 매일 저녁에 야식으로 라면을 먹었음에도 한 학기가 지난 뒤에 10킬로가 빠졌을까? 해외에 있을 때 나는 분명히 한국 사람으로 분류됐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나는 '이상하고 다른 애'로 취급됐고, 나는 국제전화를 걸어 부모님께 전화를 할 때면 울면서 너무 힘들다고, 이곳에 있기 싫다고 말했다.
애매한 인생이었다. 누린 삶 자체에 부족함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그런 삶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그래도 여러 상황을 극복하고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대학으로 꼽는 학부대학과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었던 건 한국에서 해외로 갔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뒤 또 해외로 나갔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내 안에 자리 잡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버티는 능력치 덕분이었다. 그리고 보수적이고, 본인들이 공부를 잘했던 부모님의 아들로 자라나며 나는 항상 목표치를 높게 설정하고 사는 게 습관이 됐다. 여러 나라 학생들이 있는 외국인학교에서 학생회장이 되었을 때도, 괜찮은 대학으로 분류되는 대학에 합격해도 부모님은 당근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채찍을 드시는 분들이었으니까.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재수도 했고, 졸업 후에는 내가 목표로 했던 회사에 취업하진 못했으니 원하는 것을 모두 갖진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성인이 된 이후에는 큰 굴곡 없이, 학부시절에 부모님께서 용돈을 끊으셨을 때는 또 다양한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면서 열심히 일하며 학점도 괜찮은 수준으로 챙기며 입사 당시에 연봉도 높은 수준이었던 대기업에 취업했다. 실패와 실수가 없었던 건 아닌데, 실패와 실수를 없었던 척할 수 있을 정도의 성취를 이루며 그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었다.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까진 그랬다.
나는 내가 모든 것을 성취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한 건 분명히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스쿨에 다닐 때 모교를 찾아가 교장선생님과 2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고 나서 교장선생님께서 내게 '너는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해. 받은 게 워낙 많으니까. 그게 우리 학교 졸업생답게 사는 거야'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속으로 고개를 갸웃댔다. 나보다 훨씬 많이 받고, 편하게 잘 사는 금수저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내게 저런 말씀을 하시나 싶었다. 나는 또 내 나름대로 힘들고, 열심히 노력해 왔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내 상황과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를. 나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것을 몰랐다.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나는 그들보다는 넉넉하지 않았다 보니 난 받은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부모님께 지원을 받는 게 아니라 부모님을 지원해드려야 하거나 심지어 부모님으로 인해 많은 것을 접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도 노력은 했다. 그리고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많은 것을 대가 없이 받기도 했더라. 그리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거의 10년 동안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도, 사실은 내게 선물이고 내가 '받은 것'이라는 것을.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 됐을까? 나는 여전히 내가 가진 것은 모두 내 힘과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나는 받은 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그건 그들의 잘못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무의식 중에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이 얼마나 끔찍하고 세상 물정 모르고 철없는 생각인가.
내가 실패하고, 인생이 풀리지 않기 전까지 내게 자신의 어려움과 힘든 상황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이상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힘듦과 어려움을 내게 털어놓더라.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들은 어쩌면 자신들이 보기에 내 인생도 본인의 삶만큼이나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자신의 속 이야기를 내게 털어놓은 것 같다. 내가 승승장구하고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가 됐다면 듣지 못했을 이야기들이다. 실제로 최근에 만난 대형로펌에서 파트너가 된 한 지인은 누군가 쉽지 않은 상황을 보내는 것을 모두 그 사람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것을 보며 내 실패와 좌절의 경험도, 내겐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준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금수저도, 흙수저도 아니다. 은수저나 동수저 정도의 삶을 어렸을 때 보냈고, 지금 내 통장의 잔고는 동수저보다는 못한데 또 흙수저보단 나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동수저보단 흙수저에 더 가까운 수준으로.
중년으로 분류될 수 있는 나이의 노총각으로 이렇게 살고 있는 모습을 어머니께선 안쓰러워하신다. 내 생각은 다르다. 물론, 내가 잃은 것이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무엇인가를 잃은 덕분에 받게 된 것도 있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내가 잃었거나 갖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갖지 못하게 되었기에 보고, 듣고, 느끼고, 알게 된 것들이 내 삶에서 내가 받은 것들 중에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금수저, 흙수저와 같은 표현을 썼지만, 개인적으로 그 표현을 좋아하진 않는다. 이는 금수저가 갖고 태어난 것들이 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는 더 좋은 것으로 평가받을 수는 있지만, 인생을 길게 놓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관점에서 봤을 때는 흙수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갖지 못함으로 인해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가질 수 있게 된 것들이 더 가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무엇을 갖고 태어났거나 갖지 못하고 태어났다고 여겨지는 것의 진정한 가치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너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은 그로 인해 노력하는 경험과 자신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몰라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될 수도 있고, 가난하고 힘든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그 덕분에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상황이 곧 그 사람의 삶과 미래를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나와 함께 해외에서 외국인학교를 다녔던 형, 누나, 동생들도 각양각색의 삶을 살고 있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 미국의 좋은 대학교에 진학해 좋은 금융권 회사에 취업해 40대에 이미 평생 먹고살 돈을 다 번 사람도 있지만,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비슷한 학력과 재력을 가진 부모님을 둔 또래들이었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은 망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다. 망하고 성공하는 것의 기준도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고.
변호사시험에 불합격해서 변호사가 되지 못하고, 결혼도 못했으며 통장잔고도 슬프단 면에서 내 인생은 실패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그 덕분에 내가 보람, 가치와 의미 중 어느 하나도 느끼지 않는 일은 하지 않고, 40대에도 가슴이 뛰고 설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변호사가 된 지인들 중에는 돈도 잘 벌고, 가슴이 뛰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내 지인들 중 상당수는 금전적으로 여유도 있고 사회적으로도 인정은 받지만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서면을 쓰면서, 영업을 뛰고 의뢰인들의 눈치를 보며 돈 외에는 어떠한 가치나 의미도 찾지 못한 생활인이 되어있다.
나도 잃은 게 있는 대신 누릴 수 있게 된 것들이 있고, 그들도 희생한 대신 받은 게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무엇이 자신에게 더 중요한 지에 따라 자신이 더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삶은 있겠지만, 그들과 내 삶에 객관적인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이 완벽하진 않고, 조금 더 안정적이고 풍요로웠으면 좋겠단 생각을 당연히 한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하지만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완벽하진 않고 결핍된 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이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다. 그리고, 많은 방황과 좌절 끝에 내 앞에 놓인 길을 잘 가면 더 좋아질 것을 알기에 설레고 기대가 된다. 사십 대에도 이럴 수 있다는 건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 아닐까. 나는 참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이고, 감사할 게 너무 많다.
3-4년 전만 해도 내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시리즈에서는, 그렇게 바뀐 과정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