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했다. 회사원이 된 것이다. 내가 전혀, 절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길이었다. 나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수익창출만이 목적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나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건 학부 3학년 때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학부 3학년 때 부모님은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야 한다"면서 용돈을 끊으셨고, 과외는 내가 배우는 게 없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셨다. 사실 듣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다. 단가가 가장 높은 과외를 한다고 해서 부모님이 뭐라고 할 순 없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군대까지 갔다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따랐다.
나는 다양한 일을 했다. 영어학원에서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도 했지만 내가 했던 일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건 취재해서 글을 쓰면서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일이었다. 리바이스의 웹진 업무를 대행했던 adnstyle이란 회사에서 리바이스 마니아들을 인터뷰하는 일을 대대행으로 받아 시작해서 다양한 대학생 활동들을 하면서 나는 운이 좋게도 사람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즐겁고 행복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 소식을 알리는 사회적 역할을 함과 동시에 내가 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이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1년간 그런 삶을 살고, 그 과정에서 성과도 내고 인정도 받으면서 나는 4학년이 된 후 사람들이 '언론고시'라고 말하는 시험을 준비했다. 스터디에서 내 글쓰기는 기자보다는 피디가 더 어울릴 것 같단 말을 듣기도 했지만, 나는 초지일관 기자만 바라보며 1년을 보냈다.
아버지는 내가 기자가 되는 것을 좋아하진 않으셨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기자들에게 이용당하는 등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자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필기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기자가 되고 싶긴 했지만, 기자만 될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메이저'로 분류하는 언론사 시험들만 봤는데, 연합뉴스를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에서는 모두 필기시험에서 낙방을 했다. 그러자 부모님은 '졸업하고 백수로 있으면 지원 못해준다'라고 하셨고, 나는 그제야 뒤늦게 일반 회사들에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기업 취업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은 내가 그렇게 지원해서 합격할 리가 만무했다. 더군다나 지원서를 늦게 쓰기 시작해서 나는 언론사를 포함해서 20개의 원서도 쓰지 않았으니, 그중에 하나가 얻어걸리기도 힘들었다. 4학년 2학기를 그렇게 불안 속에 보내며 운이 좋게 서류전형을 통과해도 면접에서 대부분 떨어졌고, 그 과정에서 유일하게 한 회사에 합격했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기에 면접이 남아있던 남은 두 회사의 면접을 포기하고 주위에서 좋은 회사라고 해서 별생각 없이 지원 직전에 지원하는 계열사를 바꿔서 원서를 접수한 내 첫 직장에 취업을 했다.
최종면접까지 "글로벌 비즈니스"로 봤지만, 내가 한 다양한 취재 이력을 본 회사는 나를 홍보실로 합격시켰고, 나는 당시만 해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맡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내가 퇴사하고 몇 년이 지난 뒤에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팀을 두 개나 운영하기도 했으나 내가 취업했을 시점에는 나보다 한참 시니어인 선배에 나, 둘이 온라인을 담당했다. 이미 온라인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하며 생계를 경험했던 덕분에 나는 업무에 빠르게 녹아들었고, 신입사원 때 혼자 해외 출장도 나가고 대학생 기자단 프로그램도 2년 차에 만들어 운영하는 등 자리를 잘 잡는 것처럼 보였다. 로스쿨에 합격한 뒤 퇴사하겠단 소식을 알렸을 때 선배들이 충격을 받았을 정도로.
1년 차엔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일했다. 그런데 신입사원으로 해외 행사에 혼자 출장을 가면서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홍보실이 필요할 땐 내게 연락을 하지만, 내 연락은 받지 않는 모습을 보며 '회사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 않는구나'라는 사실을 나는 직접 겪게 됐다. 그런 경험을 한 뒤 귀국해서 선배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들의 모습이 수년 후 나의 모습일 테니까.
그리고 나는 2년 안에 퇴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동기들이 1년 차 보너스를 받은 뒤 남자들은 돈을 조금 더 보태서 차를 사고, 여자들은 명품백을 살 때 나는 돈을 고이고이 모았다. 학부시절 한 교수님께서 술자리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시는 상태에서 종이에 내게 '너, 영어 -> 미국 JD -> 변호사'라고 써서 보여주신 게 기억났고, 변호사가 소송만 하는 게 아니라 국제기구에서도 일한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로스쿨 준비를 했다. 미국 로스쿨은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갈 수가 없었고, 때마침 한국에도 로스쿨이 생긴 상황이고 잘 모으면 생활비와 학비는 감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나는 LEET시험을 회사를 다니며 준비했다.
사실 나는 내가 졸업한 로스쿨에 합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LEET점수도 높지 않았고, 학점과 이력이 나쁘진 않았으나 대기권 밖에서 노는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항상 말한다. 나는 면접에서 점수를 역전시킨 케이스라고. 로스쿨 면접에서 나는 케이스 풀이를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면접관이셨던 한 교수님께서 '그런 의미라면 ~라고 답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어보셨고, 들어보니 맞는 말씀이셨다. 그래서 나는 말씀이 맞는 것 같다고 인정을 해버렸는데, 내 면접시간 이후 잠시 쉬어가자고 하시더니 화장실에 가시는 길에 그 교수님께서 내 어깨를 치면서 '이 면접이 원래 압박하기 위해 보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라고 하시더라. 그때, 어쩌면 합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넘어 어쩌면 수천 번 정도 내가 계속 회사에 다녔으면 어땠을지를 상상해 봤을 것이다. 로스쿨 2학년 때는 한 중대형 로펌에서 인턴을 마치고 한 회식이 끝난 뒤 첫 차를 내가 다녔던 회사 사옥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건물을 올려다보며 '내가 이 회사를 왜 그만둔 거지?'라고 생각하며 술에 취해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그들에게 내가 했던 가장 충격적인 결정은 그 조건 좋은 첫 직장을 그만둔 것이었다고 말한다. 업무강도와 연봉 수준, 사회적 평가 중 어느 하나 빠질 곳이 없는 회사였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그땐 순수하고 현실을 몰라서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그렇게 규격화된 삶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학교 때 아버지께 '나는 절대로 아빠 같은 회사원은 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해서 아버지께 상처를 입혔었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주말에는 주무시고, 평일에는 얼굴을 보기도 힘든데 술 마시고 들어오시면 술 냄새를 풍기면서 나를 깨우고 까끌한 수염을 내 얼굴이 비비는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이 싫어서, 그렇게 말한 것도 있지만 돌아보면 나는 그저 틀에 박힌 삶이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래서 모든 회사원을 존경한다. 회사생활이 100% 만족스러워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먹고살기 위해서 출근을 한다. 싱글들은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고, 기혼자들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고 산업화시대가 만든 틀인 '9 to 6'라는 비인간적인 틀 속에서 살아간다. 그 과정은 누가 뭐래도 고귀하고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그런 시간들을 버텨내셨기에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삶을 살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하면서 보람, 의미, 가치를 느끼는 게 너무 중요한 사람이어서 그럴 수 없는 게 분명한 회사는 최대한 빨리 그만두고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로스쿨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와인바와 카페에서 일하며 와인이랑 커피 공부를 하면서 로스쿨 입시와 유학을 준비해서 그다음 해에 어떤 형태로든지 대학원을 가려고 했다. 그런 선포를 해 버린 아들을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1년간 지켜보셨고, 부모님께는 너무 다행하게도 나는 한 번에, 변호사가 되지 못한 뒤에 주위 사람들 말을 빌리자면 '네가 변호사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 학교에 합격한 상태에서는 가지 말라고 말릴 수가 없는' 학교에 합격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 학부 때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취업도 잘했으며,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감당할 정도의 돈은 모은 상태였으니까. 그래도 혹시 몰라 나는 퇴사 시기를 로스쿨 입학 직전인 2월 말까지 미뤘고, 내가 받을 수 있는 돈을 한 푼이라도 더 확실하게 받고 나서 퇴사를 했다. 그렇게 입학 전 2개월을 보낸 게 내 로스쿨에 어떤 혼란을 가져오게 될지를 나는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