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았다

by Simon de Cyrene

서울에 있는 대학들 중 중위권에서 중하위권 대학에 다니는 지인이 있었다. 그 지인은 모일 때면 본인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고 학교에서 잘 나가는지를 과시하듯 말하곤 했다. 개인적으로 '그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그런데 한 학기에 수강하는 학점수를 우연히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18학점만 들어도 과제와 시험공부를 하려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데 본인은 20학점을 넘게 들어도 여유가 있단 것이다.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신할 수 없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여러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강의를 하다 보니 왜 그게 가능했는지를 알 것 같아졌다.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전반적인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어렵지 않게 파악된다. 그리고 강의를 하는 과정에서는 학생들이 더 많은 내용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으면 강의와 시험의 난이도를 올리게 되고, 학생들이 힘들어할 듯하면 난이도를 낮추게 된다. 그 지인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상위권 대학에 진학했다면 공부에서 느껴지는 난이도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로스쿨에 진학했을 때 나는 그 벽을 느꼈다. 학력과 학점만 놓고 보면 적어도 한국 안에서는 나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스펙은 갖춘 편이었다. 3학년 때까지만 해도 유학을 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학점관리도 열심히 했으니까. 그런데 로스쿨에 진학하고 나서 한 학기가 지난 뒤 동기들의 이력을 알게 된 이후 나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로스쿨 제도 초창기여서 엄청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렸을 수도 있는데, 내 동기 중에는 회계사, 변리사들은 물론이고 이미 미국 아이비리그 로스쿨을 졸업해서 미국 변호사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미국에서 명문대 박사과정을 하다 귀국해서 로스쿨에 입학한 사람부터 공학박사를 받고 한국의 한 대학에서 교수 오퍼를 받았음에도 교수가 하기 싫어 로스쿨에 입학한 사람, 그리고 천재들만 간다는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수학 석사를 마친 사람까지. 학점은 서로 공유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내가 로스쿨을 다닌 대학의 학부에서 단과대와 학과 수석들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아 놓고 경쟁을 하는 구조였다. 상대평가로. 거기에 나는 학비와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에 선행학습을 전혀 하지 못한 상태였다.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고등학교 동기에게 자료를 받긴 했지만 아무리 자료를 듣고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퇴근 후에 책을 봐도 머리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반면에 내 동기들 중 상당수는 최소한 합격이 확정된 이후에는 선행학습을 대부분 시작했더라.


내가 속했던 로스쿨은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고 봤던 어떤 집단보다 더 똑똑하고, 공부하는 체력도 좋은 사람들을 모아 놓은 곳이었다. 내가 천재는 아니지만 로스쿨에 진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떤 모임이나 집단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A라는 장점을 내가 갖고 있지 못해도 나는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한 B라는 장점은 갖고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로스쿨에서는 내가 갖고 있지 못한 A, B, C라는 장점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더해서 그나마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장점도 누군가는 항상 갖고 있더라. 학부 때는 수업에서 질문하고, 답하고, 발표를 하는 과정에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있었는데 로스쿨에서 나는 평범 이하의 학생이 되었다.


당연히 경쟁도 치열했다. 본교 학부를 졸업하고 곧바로 로스쿨에 진학한 동기들은 법을 미리 공부했다 보니 초반에는 학점이 더 좋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에도 일부는 다른 동기들에게 따라 잡혔다. 편한 듯 웃으며 함께 밥을 먹기는 하지만 서로 경쟁관계에 있기에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시험 관련 자료도 정말 가까운 이들 간에만 공유되었다. 방학에 로펌에서 진행하는 인턴에 합격했는지 여부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우리는 인턴을 하러 가서야 비로소 누가 인턴에 합격했는 지를 발견하고는 했다.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도 당연히 많았다. 로스쿨 초기에는 한 해에 일정 숫자 이상의 변호사가 배출되어야 한단 이유에선지 휴학도 자유롭게 할 수 없었고, 그러한 엄격한 분위기는 결국 동기 중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이 나오고 나서야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독서실 내 옆자리가 지정석이었던 친구가, 자신이 너무 모자란 것 같다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출발이 좋아야 하는데, 선행학습을 하나도 하지 못한 나는 첫 학기부터 평생 받아본 적이 없는 학점을 받았다. 그리고 1학년 여름방학을 나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하숙집 방구석에 박혀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고 보냈다. 그 안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고, 도대체 왜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건가 싶었다.


그래도 그나마 방학이 지나서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시험만 합격하면 괜찮을 거야'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장점들을 갖고 모의재판 대회에 참여해서 입상도 했고, 대형로펌에서 인턴도 하면서 어떻게든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 가슴이 뛰고, 보람을 느끼는 영역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온갖 세미나는 다 찾아다녔고, 그 과정에서 지금은 내 지도교수님이 되신 교수님의 일반 대학원 세미나까지 쫓아다녔다.


그게 내가 살 길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엄격한 상대평가로 이뤄지는 학점 경쟁에서 나는 이길 수가 없겠단 판단이 들어 나만의 색을 갖춰서 경쟁하려고 했다. 법조계의 분위기를 너무 몰랐기에 내린 나이브한 결정이었다. 법조계는, 지금은 그나마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굉장히 수직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연수원 등수가 평생 영향을 미치듯이, 로스쿨에서는 학점이 좋은 학생들이 진로를 빨리 찾았다. 법조계에서 다른 요소들은 신입을 채용할 때는 후순위 고려대상이거나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다.


이런 상황에 더해서 나는 내가 관심이 가는 법영역을 크게 두 가지로 추린 후에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따라가는 선택을 했다. 해외에서 살았고 영어를 편하게 하는 장점을 살릴 생각을 했으면 조금 더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순진하고 순수하게 마음이 따르는 대로 결정을 했고 그 영역은 돈이 되지 않았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나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름 다양한 경험을 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똑똑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내가 다닌 로스쿨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앞, 뒤와 양옆을 봐도 내가 만만하기는커녕 비슷하게 조차 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경험은 내게 반드시 필요했고, 내가 오만해지지 못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로스쿨에서 만큼 뛰어난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임을 나는 그 뒤에도 접한 적이 없는데, 그렇다 보니 한 번씩 상대의 능력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면 나의 예전 자아가 올라와 나도 모르게 상대를 낮춰보려고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로스쿨에서의 기억이 나의 그런 마음을 끄집어 내린다. 그리고 상대에게도 내가 모르는 나보다 뛰어난 능력치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그런 마음이 사그라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에 그렇게 탁월한 동기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 내게 주는 또 다른 인사이트가 있다. 그건, 반드시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란 것이다. 물론, 내 로스쿨 동기나 선후배 중에 굉장히 잘 나가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다. 모든 대형로펌에 몇 명 이상은 지분을 가진 파트너 변호사로 있고, 판사가 된 사람도, 개인 사무실을 차려서 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보다 덜 일하면서 돈은 더 많이 버는 사람도 있다. 정치인을 꿈꾸며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그 순위대로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직접 보고 있다. 엄청나게 똑똑하고 잘 나가던 사람들도 상황으로 인해 밀려나기도 하고,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이기적인 사람들은 망가지기도 하며, 승승장구만 할 것 같은 사람이 무리를 해서 건강이 안 좋아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똑똑하고 잘 나면 잘 나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세상이 꼭 그렇지도 않더라.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모든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란 것이다. 정말 똑똑하고 뛰어난 동기들 중에는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다' 싶어서 대형로펌에서 오래 다니지 않고 워라밸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그중 한 명은 로펌에 다닐 때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슈퍼에 가서 가격도 보지 않고 대충 살 것들만 담았는데, 사내변호사로 자리를 옮겨 매일 출퇴근을 같은 날에 할 수 있게 되면서 우유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승승장구하고 잘 나가는 로스쿨 동기와 선후배들이 사회적으로는 엄청나게 성공한 게 분명하지만 그 성공이 곧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라는 걸, 그들과 만날 때마다 느낀다. 그들은 대낮에 호텔에서 내가 몇만 원을 호가하는 식사를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사줄 수 있고, 이미 일반적인 회사원들이 평생 벌 수 있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번 경우도 있다. 하지만 주니어 시절에는 빨라야 저녁 11-12시, 늦으면 다음날 아침까지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일하면서 그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할 기회를 상실했음을 대화를 하다 보면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잘 나가는 사람들 중에서는 자신의 시간을 대부분 쏟는 일에서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걸 나는 꽤나 자주 발견한다.


사회적 평판과 돈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리고 내 로스쿨 동기와 선후배들 중 상당수는 그 영역에서의 성취를, 나는 앞으로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이뤘다. 하지만 그 성취가 곧 능력치와 비례하진 않고, 그러한 성취를 이뤘어도 본인의 성향에 따라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더 작은 일을 하며 작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보다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나는 굉장히 자주 발견한다. 사람들은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솔직히 그렇게 잘 나가는 동기와 선후배들 중에 지금의 나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꿈꾸며, 설레이는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본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항상 목표로 하는 바를 이루면 이룬대로 축하하지만 이루지 못해도 좌절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그 길로 갔다고 해서 성공하고 행복했으리라는 법도 없고, 그 문이 열리지 않은 건 어쩌면 그 길이 본인과 맞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 문이 닫힌 덕분에, 그 사람은 사실은 자신과 굉장히 잘 맞음에도 본인이 생각해보지 못한 길을 찾게 될 수도 있다.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서 순간, 순간을 살아낸다면 능력치가 완벽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부족해도 자신이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고, 나는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