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나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보고 성경을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종교가 훨씬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느껴서 그 종교를 믿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도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10년, 20년 전에 당신이 이해하고 있던 세상과 지금 당신이 보는 세상은 같은가? 아닐 것이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10년, 20년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고민하면서 공부한 것들로 인해 세상을 보는 당신의 시야가 넓고 깊어졌을 테니까. 불과 10년, 20년만 지나도 그렇다. 그런데 인간이 신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닐까? 인간의 시선에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느껴진다면, 반대로 말하면 그건 인간이 만든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작년 9월에 태어난 조카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도 알아듣지 못하고, 할머니를 2주 동안 5-6번 만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아이는 이제 갓 이유식을 먹기 시작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맛을 알지 못하고, 당근만 입에 넣어도 눈을 번뜩이며 자극을 받는다. 그 아이가 성인들이 먹는 음식의 맛을 알 리가 없고, 어른들이 돈을 어떻게 벌어오는 지를 알 수도 없다. 그런 아이와 어른 간의 간극이 클까? 인간과 신 간의 간극이 클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신을 다 아는 것처럼 주장하는 이단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당연히 잘못되었고, 그런 사람들을 보며 기독교를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잘못되었다.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서 그 나라의 문화유산에 한글로 낙서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의 국민성을 보여줄까? 술 마시고 노상방뇨를 하는 한국 사람이 있으면, 한국 사람들은 다 그렇다고 생각해도 될까?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쓰레기 국가일까? 아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이해할 수 없고, 비합리적이며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과 개신교가 진리가 아니고 틀린 것은 아니다.
나는 모태신앙을 가진 것으로 분류된다. 개인적으로는 신앙이라는 게 부모님의 태중에부터 생길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친할머니께서 교회에서 어머니를 보고 마음에 드셔서 아버지와 소개를 시킨 뒤 두 분이 결혼하신 부모님의 아들로 살아왔다. 그렇다 보니 나는 교회에 가거나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이 일요일을 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교회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조차 가진 적이 없다. 내게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건,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떠한 갈등이나 고뇌도 없이 개신교 신자로 살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개신교 교회에 출석하시는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개신교 신자가 되기로 한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평생 매주 일요일마다 설교를 들었다 보니 성경에서 이해되지 않고,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지점들이 많았다. 개신교만 진리라는 주장도 폭력적으로 느껴졌고,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모순되고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더 악한 일들에 분노해서 교회를 떠나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당연히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교회가 세습과 개신교계를 망치는 주범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더더욱.
그래서 학부시절 다른 종교들도 들여다봤다. 불교, 천주교, 이슬람교, 유대교까지. 이 종교들을 편견을 배제하고, 경전과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그 입장에 대해 반복해서 곱씹어 봤다. 그 외에 다른 종교들은 교리가 너무 투박하고 모순 덩어리여서 살펴볼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개신교와 천주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들은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컸다.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선하게 산다고 해서 가지고 싶은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종교들은 그런 내용을 가르치며 현생에서의 삶을 인간이 알 수 없는 사후세계에 억지로 끼워맞춘 느낌이 많이 들었다. 선한 일과 악한 일을 할 때면 다른 쪽 어깨에 벽돌이 쌓이고, 죽은 후에 그에 따라 평가받는다는 식의 이야기를 이 땅에서 밖에 산 적 없는 인간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유대교는 신이 모든 걸 창조했다면, 왜 유대인만 다르게 취급되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불교는 종교보다는 철학에 가깝다고 해석하는 게 맞을 듯했다.
마지막 관문(?)이었던 천주교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미사를 드리고, 신부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에서 정리가 되었다. 천주교의 일부 교리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졌고, 무엇보다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을 '성인'으로 분류해서 숭배하듯 하는 문화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천주교 안에서 축적된 영적인 요소들과 그 깊이는 존중하고, 개신교 신자들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 관점에서 천주교는 너무 모순된 지점들이 많았다.
개신교는 달랐다. 형식적으로는 평생 교회를 다녔지만, 이게 진리인지를 알기 위해 고민하고 파고, 또 파 본 개신교는 내가 알았던 개신교가 아니었다. 우리 집은 아주, 매우 일반적인 보통의 교회 다니는 집안이다. 부모님께서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가치들을 추구하며 사셨다. 더 많은 돈, 사회적 지위와 명예. 그러면서도 또 너무 요란하게 고지론적이고 기복신앙적이면 안된다는 모순적인 양육지침까지. 그러한 모순적인 상태는 대를 이어 내게로 그대로 전달됐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상당수, 아니 어쩌면 대부분 이 지점에 머물러 있다. 겉으로는 거룩하고 선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아니 어쩌면 더 탐욕적인 욕구와 욕망을 갖고 하나님을 도구로 그것을 손에 쥐려고 하는 상태 말이다. 그 모든 건 좋은 로스쿨에 입학까지 했으니 당연히 내가 당연히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변호사 자격증을 손에 쥐지 못하게 되는 과정에서 모두 깨졌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신이 정말 존재는 하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했고, 태어나서 가장 진지하게 신앙서적과 신학책, 성경을 읽었다.
나는 그 과정을 지나면서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엄청난 이변이 없는 한, 아마도 매우 높은 확률로 개신교 신자로 죽을 것이다. 이는 그 과정에서 내가 알게 된 성경의 말씀과 개신교의 교리들은 그 어떤 종교들보다 현실적이고, 환상을 심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는 그 과정에서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신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종교를 가짐으로써 조금 더 편해지고 삶이 윤택해질 수 있다고 말하며 그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지금은 힘들더라도 결국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개신교도 그와 같은 방향성을 가리킨다면, 개신교는 다른 종교와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형식적으로는 교회에 다니면서 실질적으로는 샤머니즘과 같은 형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같은 형태와 방향성을 가진 신앙생활을 한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욕구하고 욕망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전제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심지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사는 삶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는 삶은, 교회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는 세상,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현실이라고 불리는 영역에서 고난과 고통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은 그런 삶을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이 배척하고 탄압할 것이라고도 말하면서 그것을 감당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성경은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그런 삶을 사는 건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부분 종교는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라도 사탕발림을 약간이라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사례들을 통해서 삶은 고통과 고난의 반복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팔려고 할 때 인위적으로 뭔가를 만들거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구성요소를 포함시킨다. 하지만 성경은 그러지 않는다. 성경은 냉정할 정도로 현실적이고, 심지어 자신의 자아를 매일 십자가에 못 박고 자신의 뜻대로 살지 말라고 말한다. 만약 그런 내용을 몰랐다면, 그건 성경을 해석하는 목회자와 교회들이 사탕발림을 넘어서 혈당스파이크가 올 정도의 포장을 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고통을 즐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성경은 인간이 추구하는 성공, 바라는 목표, 욕구와 욕망이 충족된다고 해서 행복하고 즐거우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행복과 평안은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이룸으로 인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거할 때만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신이 우리에게 무엇을 줘야만 우리가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저 하나님 안에 거하면 그 모든 걸 누릴 수 있단 것이다. 다른 종교에도 비슷한 내용은 있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현상적으로는 비슷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종교와 달리 성경은 끝까지, 고집스럽게도 '인간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그것을 이룰 수 없다'라고 말한다.
개신교가 다른 종교와 가장 다른 지점은,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나누라고 하는 데 있다. 십계명 중 4개는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반면 그보다 많은 6개 계명은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종교들도 선을 베풀라고 하긴 한다. 하지만 다른 종교에서의 선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잘 되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성경은 서로 나누고, 사랑하는 것 자체를 목적과 목표로 설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안에 거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창조의 원리에서 벗어난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게 진리라면, 이 원리가 현실에서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위를 관찰했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터져 나온 나의 상처들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성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원리가 현실에서 그대로 작용되는 것을 발견했다.
내 노력으로 내 안에 있는 욕구와 욕망이 사라지지는 않더라. 사라진 것 같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내 마음이 그 방향으로 요동치는 것을 나는 수도 없이 발견했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비워냄으로써 어떠한 경지에 이를 수도 없지만 더 현실적으로는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비워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정 종교를 비하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기에 구체적인 예시를 들 수는 없지만 자신을 비워내기 위해 속세를 떠난 종교인들이 얼마나 자신을 비워내지 못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가? 겉으로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마음까지 완벽하게 비워지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내 주위에 있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족함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공허함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권력, 명예, 돈에 중독된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들은 우리가 사람들이 추구하고 욕구, 욕망하는 것으로 채운다고 해서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것을 분명히 알게 해준다.
이 지점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지점은 극악무도한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사람들과 가족에게만큼은 사랑받고,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정신질환들의 뿌리에는 인간의 욕구와 욕망, 이기심으로 인해 망가지고 왜곡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사랑이 얼마나 사랑이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적어도 나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보여주는 유일한 종교는 개신교였다. 어떤 이들은 진리로 가는 길이 여러 가지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사랑에 대한 문제를 개신교처럼 접근하고 설명하는 다른 종교는 없다. 이는 개신교와 다른 종교는 2차원적인 세계에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가는데, 어떻게 진리로 갈 수 있단 말인가. 산중턱에서 한 사람은 내려가고 한 사람은 올라가면, 정상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인 것처럼 진리에 이르는 길도 하나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말은 사실이거나 거짓말이거나 둘 중 한 가지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남지 않는다. 예수님은 구원자이면서 개신교가 진리이거나, 예수님이 사기꾼이면서 개신교는 거짓일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사회와 인간의 모습이 내가 아는 한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전자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