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와 욕망에 잡아먹히다

by Simon de Cyrene

변호사가 하는 일의 성격을 잘 모르고 로스쿨에 입학했다. 학부를 졸업하고, 신입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선배들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일하는 지를 알게 됐으며, 같은 길을 가면 나도 같은 생각과 마음으로 일할 게 분명해서 여러 옵션을 고민하던 중 찾은 게 로스쿨이었다. 소송이나 자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돈을 많이 벌겠단 생각도, 안정적이고 싶단 마음도 없었다. 내가 보람, 의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나는 오직 국제기구에서 정책 만드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입학 직후에 혼란스러웠다. 나는 법을 만들고, 정책을 구상하는데 관심이 있었는데 로스쿨에서 그런 내용을 다루는 수업은 없는 것이 아닌가. 교수님들은 법조문 하나를 놓고 판례를 설명하고, 시험은 사례가 주어지면 법전을 뒤지고 암기한 판례를 적용해서 해결하는 방식으로 풀어내야 했다. 그게 변호사, 판사, 검사가 하는 일이기에 로스쿨에서 시험을 그렇게 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걸 몰랐던 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인턴을 나가기 시작했다. 로스쿨 학점이 탁월하진 않았지만 내 다른 이력들을 긍정적으로 봐주신 회사들이 있어서 대형, 중형, 소형 로펌에서 모두 인턴을 경험했다. 대형과 중형로펌의 경우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전제로 1, 2학년 때 '컨펌'이라고 불리는 사전채용을 진행했는데, 애초에 국제기구만 생각한 나는 로펌들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로스쿨이 도입되었던 초기에는 사시 출신들에 비해 로스쿨 출신들이 홀대받을 것이란 얘기가 많았고, 학생들은 인턴제도가 시작되자 졸업하기 전에 진로를 확정 짓고 싶은 마음에 일단 인턴을 하는 게 중요한 목표로 설정됐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엔 관심이 없었는데, 다들 인턴을 지원하는 분위기가 되자 가만히 있는 게 힘들어졌다. 그리고 한두 곳에 지원을 하고, 면접은 대부분 로펌들에서 볼 수 있게 되면서 조금씩 내가 로스쿨에 가기로 마음먹었던 이유가 잊혀지기 시작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취업과 졸업 후 진로의 불확실성에 불안해지면서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나는 양 눈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졸업하기 전에 진로를 확정 짓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동기들이 변호사시험 준비 때문에 포기한 3학년 여름방학에까지 소형 로펌에서 인턴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변호사시장은 계속 힘들어질 것이란 얘기를 들으며 나는 불안한 마음과 함께 로스쿨에 오기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받던 것보다 반드시 더 높은 연봉을 받아야 로스쿨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는 다른 것들을 보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망가져 가고 있고, 공부보다 진로와 돈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나는 그렇게, 조금씩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후회가 된다. 내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과 불안정해 보이는 미래로 인한 불안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법공부를 더 깊게 했으면 어땠을까? 박사학위를 받고, 내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이유들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백 번도 더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최소한 변호사가 되지 못한 로스쿨 졸업생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현실은 조금 다른데도 불구하고 당시에 나는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대형로펌에 컨펌을 받지 못하면, 졸업하기 전에 진로가 정해지지 않으면 나는 인생이 끝난다고 여긴 것 같다. 그러니까 목숨을 걸고 그 결과에 집착하고, 채용되지 못하게 되면 좌절을 했겠지. 그런데 변호사시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내 동기들 중에 대형로펌에 취업해 지분을 가진 파트너가 된 이들도 많지만, 중간에 나와서 본인 사무실을 차리거나 기업법무실에 취업을 한 사람들도 많다. 변호사의 가장 큰 장점은 자격증을 획득한 뒤 커리어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단 건데, 로스쿨생이었을 당시 나의 생각은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다.


그렇게 눈앞에 보이는 것에 매몰된 상태가 되고 나니 나는 눈이 멀기 시작했고, 작은 것에 매몰되면서 생각과 고민이 많아졌고 그 결과,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며 망가지면서 길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나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그렇게 어두운 터널에 들어간 뒤에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현실에 매몰되어 있다 보니 다른 건 보이지 않고, 내 눈앞에 있는 것에 집착하는데 목표한 바는 이루지 못하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로스쿨 재학생일 때는 취업과 진로, 그 뒤에는 변호사 자격증과 변호사시험에 집착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쓸모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만 보면 '변호사시험도 통과한 등신'으로 분류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 않더라. 로스쿨이라는 폐쇄적인 커뮤니티 안에서는 그게 전부인 것처럼 여겨졌고 사람들을 어디에 취업했고, 변호사가 되었는지 여부를 놓고 줄을 세우고 사람을 평가했다. 그런데 한 걸음만 밖으로 나와보니 누구도 내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것으로 나라는 사람을 평가하지 않더라. 그들이 모르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다. 드라마 일을 할 때는 오히려 내가 가졌고, 이룬 다른 것들을 보면서 능력치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있어서 오히려 적응이 안 되고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렇게 몇 년간 다양한 일을 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쓸모도 있고, 괜찮은 사람이란 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너무 훌륭한 사람들이 좋은 의도로 정치에 발을 들인 후 망가지는 것을 많이 본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일하겠단 마음으로 들어갔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권력과 명예의 노예가 되어 국민도, 국가도, 사회도 보지 못하고 권력투쟁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치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고, 한 발만 물러나서 생각해 보면 지금 집착하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남의 시선과 다른 사람이 말하는 기준에 매몰되어 스스로 자신을 어두운 터널로 밀어 넣는다.


대학, 직장, 진로, 연인 등 그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무엇인가가 없어서 죽을 것 같다면, 그것에 내가 집착하는 모습이 느껴진다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 한다. 내가 가던 길에서 잠시 옆으로 벗어나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갖지 못했을 때 진짜로 자신의 인생이 부정되는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완전히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자신과 세상을 보는 사람은 없다. 나는 때때로 자신만의 세상에 고립되고, 주위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며 자신을 코너로 몰아세우며 내가 목표로 설정한 무엇인가에 매몰되어 괴물이 되어갔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그랬던 건 내가 내 자신은 물론이고 그 목표로 설정한 것을 달성한 이후의 삶에 대해 너무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로부터 강제로 자유로워진 뒤에야 비로소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됐고, 이제는 내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내게 맞고 가치와 의미가 부여되고 즐거워하는 일들을 해왔다. 그리고 40대가 되어서 그 어느 때보다 꿈과 가능성, 희망을 가지고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매일, 매일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거나 과도하게 욕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면 한 걸음 물러나 내 상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내가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고 그 시간이 고마운 건,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내가 하루, 하루, 그리고 순간, 순간을 이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여전히 무엇인가에 집착하고 욕구하면서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