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와 박진영

무엇이 문제일까?

by Simon de Cyrene
가슴이 갑갑해졌다

난 박진영의 노래를 특별히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난 박진영이란 사람은 존중한다. 그의 순수함, 그의 진실함을 믿기 때문이다. 때로는 너무나도 나이브할 정도로 솔직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지만, 연예계에서 그만큼 투명하고 솔직하게 살면서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 있을까 싶기에, 그를 존중한다.


그의 앨범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반복해서 들은 건 대중적으로는 가장 인기가 없었던 'halftime'이란 앨범이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그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면서 열광했지만, 사실 그 노래는 자신이 성경이 진리임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믿어지지 않는, 즉 기독교인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몸부림치는 외침이었다. 그의 노래를 듣고 그가 기독교인이라며 환호한 사람들은 어떤 상황도 아전인수할 수 있는 사람들 이리라. 그의 그런 솔직함이 좋았고, 당시에 나도 신앙적으로 흔들림이 큰 상황이었기에 공감이 되어서 몇 달 동안 그의 앨범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으면서 인터넷을 하려고, NBA결과를 찾아보려고 포털에 들어가서 검색 1위에 박진영 2위에 구원파를 보고 가슴이 갑갑해졌다. '아... 결국...' 그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다만 가슴이 아팠다.


그의 잘못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다시 포털에 들어가 보니 박진영이 분노한 SNS 글,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그의 간증문이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박진영의 SNS에 들어가서 비난과 분노를 뿜어내는 소위 말하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그가 구원파인지는 변론으로 하고, 우선 그가 과연 잘못한 것이 있는지 여부부터 따져보자. 그는 성경공부를 했고, 성경공부를 위한 비용을 댔으며, 그 안에 구원파인 사람들이 있었다. 디스패치의 기사들은 구원파와 유병언 일가가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하나 가득 설명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박진영이 그 안에서 특정한 직위를 갖고 있다거나 구원파에 속한 사람들의 사업에 도움을 줬다는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짓을 한 것은 없는 게 맞다. 그 기사는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기 위해서 세월호를 끌어들였는데 사실 나는 그 부분에 더 분노했다. 박진영이란 사람이 이단적인 성경해석과 성경공부를 진행했는지는 사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어도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기사를 처음 보도한 언론사는 마치 박진영이라는 사람이 세월호와 관련되어 있는 듯한 느낌으로 기사를 썼는데, 그 기사를 꼼꼼하게 읽어보면 그 연결고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세월호를 이렇게 이용하는 언론이 더 죄질이 나쁜건 아닐까?


그래서 박진영이 SNS에서 항변한 <나는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잘못된 행위를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은, 최소한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들에 비춰봤을 때는 타당하다. 나중에 혹시라도 JYP가 사내식당에 식자재를 공급받는 데 있어서 구원파 계열 회사들의 물건을 일방적으로 납풉받도록 하는 등의 조치가 있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그가 개인적으로 먹는 것들이 구원파 계열 회사 제품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어도 그게 죄인인 것은 아니다. 기사는 교묘하게 구원파 집회에서 일어난 일들이 박진영의 성경공부 현장에서도 일어난 것처럼 사실관계들을 섞어놨지만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박진영이 주도한 성경공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박진영의 행위

그런데 박진영 씨 SNS에 달린 댓글들 중에서 '목사님 없이 성경 공부하는 게 이단이래요'라는 얘기가 있더라. 사실 그 논리는 이단으로 분류되는 일부 집단이 기성교회에 침투해서 교인에게 성경공부를 하자면서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하려는 시도들을 차단하기 위해서 교계에서 '성경공부는 교회 안에서 해라'라고 방어막처럼 가이드라인을 준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사실 정말 근본으로 돌아가 보면 이 땅에서 목사 안수를 하는 행위는 이 땅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실 목사님이랑만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율법처럼 꼭 준수해야 하는 원칙은 아니다. 다만, '신학교에서 제대로 훈련과 교육을 받고 계속해서 성경을 연구했다는 전제하에' 교회 안에서 검증된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안전'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단이 이 땅에서 생기는 이유에 대한 내 생각을 쓴 글에서도 썼지만, 사람들이 교회 밖에서 성경공부를 찾는 것은 교회가 성경에 대한 가르침을 충분히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박진영이 성경공부를 이끈 것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도들이 선교여행을 다닐 때 안수를 주는 게 어디 있었겠나?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이 안수를 받아서 사도로서 자격이 있었나? 제도 밖에서, 기본원리로, 기초로 돌아간다면 박진영의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솔직하게 인정하자. 기성교회, 교단에 속해 있는 교회의 목회자들 중에서 성경을 왜곡해서 전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십일조를 내야 천국을 간다는 건 종교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에 천주교 신부들이 돈을 주고 면죄부를 팔던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얘기 아닌가? 그런 설교를 하는 '정통'교파에 속한 목사들은 정통의 탈을 쓴 이단이 아닌가?


구원파의 주요 교리 및 이에 대한 비판

그래서 종교적인 측면에서 박진영의 행위가 잘못된 것인지 여부는 그가 성경공부를 진행했다는 것 자체를 놓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가 거기에서 성경을 어떻게 가르쳤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박진영은 본인이 구원파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건 자신의 사업이 구원파를 지원하고 구원파가 유지되는 데 사용되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관계에 의하면) 맞지만, 만약 그의 신앙이 구원파와 같은 선상에 서 있다면 그가 구원파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구원파의 교리 중에 이단적인 성격을 갖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구원을 받은 사람은 지옥에 가지 않으며, 구원받은 사람이 제대로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이 있을 뿐 하늘에 상급이 이미 예비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구원파는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있지만 복음을 배척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구원에는 영혼, 생활, 몸의 구원이라는 단계가 있다는 등의 교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구원파는 생활 중에서 구원을 이뤄나가서 사후에 하나님을 뵈었을 때 부끄럽지 않고 칭찬을 받기 위해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렇듯 구원파는 '구원'에 강조점을 두고, 구원파 안에서도 특정한 정파는 구원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은 일시를 알고 있다는 입장에 서 있고 그 일시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이러한 교리가 잘못된 것은 성경은 '구원'이라는 표현을 그렇게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구원을 받은 사람은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해석 자체가 성경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성경에서 구원은 '자유함', 즉 '세상 것들에서 구속되었던 것에서 자유로워짐'의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데 구원파에서 말하는 '구원'은 오히려 하나님께 한번 구원받으면 다시는 벗어나지지 않는 것처럼 구속되고, 사후 세계를 위해서 이 땅에서 잘 살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교리가 흐른다. 그런데 이전에 다른 글에서도 설명해놨지만 성경은 사후세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러한 해석은 해석일 뿐 그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은 아니다. 성경에서 전제하는 인간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로 그 안에 구속되는 것이지 한번 구원을 받았으면 무조건 영원히 그 안에 거하게 되는 구속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원파의 해석이 문제가 있는 것은 그러한 교리로 인해 자신들은 '선택받은 자'로서의 지위에 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해석에 의하면 '이 땅의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해석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구원을 받았다는 기준을 누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자신은 구원을 받았다고 믿었는데 그 이후에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면, 그건 본인의 잘못이 아니고 사탄의 시험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 것이란 말인가? 이렇듯 구원파의 교리는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고 모든 것을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몰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무슨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그렇게 하나님께 '구원으로 구속된 것'과 '자유의지'는 모순된 것이 아닌가?


사실 구원파뿐 아니라 대부분 이단 교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만약 그들이 말한 것처럼 미시적으로 성경을 분석하고 한 구절, 한 구절을 논리적으로 붙여서 해석해야 하는 방식으로 성경이 쓰이고 그 안에 그렇게 비밀이 있다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모두의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은 왜 그렇게 비밀스럽게 암호를 성경 안에 숨겨 놓으셨나? 그렇다면 성경을 아무나 읽지 못하던 시기에 성경을 읽지 못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버린 자들인가?


이단의 교리는 하나의 목적을 놓고 성경을 그 목적에 맞춰서 해석을 하는데, 구원파를 포함한 이단의 교리에는 그 과정에 정통적인 성경해석이 일부 교묘하게 가미되어 있다. 그래서 이단의 교리를 접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점부터가 왜곡된 해석이고, 어디까지가 괜찮은 해석인지를 분별하기가 어렵게 된다. 교계에서 성경공부는 교회 안에서 하라는 것은 그런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박진영은 구원파인가?

그렇다면 다시 박진영의 문제로 돌아가자. 디스패치에서 단독으로 보도한 기사에서 박진영이 성경에 대한 해석 등에 대한 내용을 설명한 것은 학설이 대립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인 성경 배경 주석에서도 설명되어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 내용들 중 대부분은 사실 성경을 깊게 공부한 사람이면 정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도 받아들여지는 해석들이다. 다만 <나는 지옥에 가고 싶어도 못 가요>라는 부분, 삶의 목적으로 <죽고 나서 예수를 만나서 칭찬을 받고 싶어서>라고 하는 해석은 사실 한국교회의 기복신앙과 구원파의 해석 중간 어디 즈음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그래서 박진영이 공개한 자신의 간증문의 내용을 살펴봤다. 그 안에서 박진영은 '구원'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난 구원을 거의 포기하게 됐다' 라던지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 죄가 모두 해결되어 있기에 지옥은 가지 않지만 하나님 자녀로서 상과 벌(살아있는 동안), 칭찬과 부끄러움(죽고 나서)이 있다고..."라는 부분들에서 보인다. 그런데 그런 해석 역시 성경을 바라보는 소위 말하는 '정통'교리와 부합하는 것은 아니고 인위적인 해석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어느 순간 갑자기 자신은 구원을 받았고 모든 것이 믿어졌다고 말한다. 이는 구원파의 교리와 같은 선상에 있는 고백임은 분명하다.


그러면서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상 잘못 살 때마다 아버지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라고 설명한다. 이 역시 성경에서 말하는 한번 회개한 것은 용서하시고 기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모순되는 내용이다.(댓글에서도 설명한 내용을 첨언하자면, 여기에서 '회개'라 함은 입으로 잘못했다고 말하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회개는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깨달아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분이시지 징계하시는 분이 아니다. 아니, 징계로 보이는 것들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경에서 나오는 징계와 벌하심의 내용은 궁극적으로는 그 개인이나 공동체가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셨지 징계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계시록 등은 7년 대환란에 복음을 전할 유대인 144,000들을 주수 신자로 쓴 글>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잘못된 해석이다. 계시록에 나오는 144,000라는 숫자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완전체를 의미하는 12를 12와 곱하고 거기에 완전체를 의미하는 10을 반복해서 곱함으로써 완전함을 의미하는 숫자로 사용되는 것이지 문자적으로 사람을 의미하는 방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그는 또 히브리서, 베드로 전후서, 야고보서, 요한일서, 요한계시록을 모두 <예수님의 아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쓴 글이 아니고 구원에 관한 한 우리는 사도바울의 편지를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경 일부를 본인의 해석에 따라 도려내는데, 누가 그에게 그런 해석을 할 권한을 부여했나?


구원이라는 것이 기독교에서 중요한 부분인 건 맞지만 서신서들이 쓰인 맥락, 의미, 당시의 사회적 배경, 수신자들의 상황과 무관하게 신비주의적으로, 암호가 담겨 있는 것처럼 <구원>만을 중심으로 성경을 마음대로 재구성하고 해석하는 것은 이단적인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성경에 있는 내용들을 미시적으로 편집해서 자신의 논리에 합당하게 끼워 맞추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건 그가 '뭔가 성경 안에 내밀한 비밀이, 암호 같은 것이 숨겨져 있을 거야'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성경해석론은... 위험한 면이 많다. 그리고 그가 구원에 대해서 갖는 관점도, 디스패치의 기사 몇 줄과 그의 간증문만으로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일면 구원파의 교리와 굉장히 유사한 면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기독교의 핵심

사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기독교 바로잡기] 매거진은 앞으로 글을 두 개만 더 쓰고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중에 마지막 글로 남겨놓은 것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박진영의 간증문을 읽으면서 사실 개인적으로는 가슴이 아팠다. 그가 얼마나 치열하고 고민하고 자신과 싸웠는지가 느껴졌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은 소위 말하는 [정통] 교파에 속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그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고 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씀과 달리 자유롭지 못하고, 기독교라는 종교적 틀에 구속되어 있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과연 그렇게 많은 것에 무겁게 구속되어 있는 그의 삶이 기독교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자유'일까?


그런데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그의 잘못은 아니다. 사실 그는 모든 것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이 세상의 또 하나의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사실 진리는 간단하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 않나? 사실을 말하는 사람은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없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말을 복잡하게 해야 한다. 논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성경의 진리도 사실 간단하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만드셨다면, 가장 부족한 사람도 성경의 원리를 깨달아 알게 만드시지 않았겠나? 박진영도, 다른 이단들도 말씀을 복잡하게 해석하는 것은 사실 그들이 진리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독교가, 성경이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씀이 사실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성경은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말하고 있으며, 사랑하기 위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진리가 그렇게 간단할 수가 있어?'라는 생각에 뭔가 더 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논리와 틀을 만든다. 물론 그 뒤에 뭔가가 더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 뒤에 있는 것은 인간이 길어야 100년이 조금 넘는 삶 속에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더라. 그래서 성경은 간단하게 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 끝에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그리고 사람은 사랑하면 자유로워진다고 말이다.


모르겠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있을지도. 그런데 분명한 건 박진영이 스스로 말했듯이 디스패치가 캐낸 것만으로는 그가 종교적으로 이단의 교리를 따른다는 측면에서 잘못됐다고 할 수는 있어도, 그가 윤리적, 도덕적, 법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단 사실이다. 그래서 그에게 지금 이 시점에 돌을 던질 이유는 없다.


그가 유기농 음식을 지인들에게 강권하듯이,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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