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어떤 작가는 '직업은 영혼을 좀먹는다'고 표현했는데, 회사에 다니는 사람 대부분이 회사 밖에서도 회사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나만 해도 출근 전 일요일이면 내일부터 새로 만들어야 할 보고서의 목차를 미리 머리 속으로 떠올리며 에버노트에 끄적여보고, 회사 사람이 했던 말에 숨은 맥락이 있었던 건 아닐지 곱씹어보곤 하니, 회사라는 공간은 한 인간의 영혼을 통째로 흡수할 듯이 덤벼든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매일 아침 해가 뜨면 자발적으로 그곳으로 기어들어간다. 그곳이 우리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회사 생활은 대개 '힘들다'는 형용사와 쉽게 어우러지는데, 내 생각에는 사람과의 문제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회사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도 시비를 건다거나, 어린 놈이 윗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고 불이익을 준다거나, 별것 아닌 실수에 화를 낸다거나 하는 일을 겪으면 회사 생활 자체에 회의가 들곤 한다. 마음만 같아서는 죽탱이를 날리고도 싶다만, 그런 야만성을 드러내봐야 손해를 보는 것은 내쪽이니, 조용히 입을 다물고 지내는 쪽을 택하는 게 현명하다. (사실 며칠 지나면 별 생각 없어지지 않는가.) 그런데 어쩐지 부조리하다. 같은 '회사원' 꼬리표 달고 사는 직원들끼리 으르렁거리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 왜 이렇게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인가. 이 바보 같은 패턴을 깰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은 없는 건가.
있다. 직장인 모두가 회사를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일을 하는 공간'인 바,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잘 하면 된다. 근태 관리 확실히 하고, 주어진 일을 100점은 아니어도 80점 정도로 수행해내면 된다. 그 결과로 월급을 받고(가장 중요하다), 최대 주52시간 근무하며, 나머지 시간을 각자 취향껏 밀도 있게 채워나가면 된다. 그렇게 회사를 이용하면 된다. 그게 끝이다.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은 회사에서 그 이상의 것을 찾기 때문이다. 회사 사람과 친구처럼 지내길 바라는 게 대표적인 경우인데, 회사 안에서 만들어진 관계는 이해관계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적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굳이 회사 사람에게 감정적인 친근함을 느껴야 할까?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예의범절만 갖춘 채 각자의 일에 전념하고, 근무시간 이외에는 각자의 생활과 취향을 존중해주는 태도가 작금의 시대에는 적절하지 않을까?
그저 '회사생활의 기본'에만 충실한 것이 더 노력이 필요하고, 더 에너지가 많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웃음을 팔고, 사람들에게 밉보이지 않을까 감정소비를 하는 게, 혹시 모를 불이익에 대처하는 가장 편한 방법이긴 하다. '사람 좋은 사람'이 불이익을 받으면 최소한 주변에서 감싸주는 척은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쩐지 비겁하다. 나는 회사 생활 3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지만, 이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이제 힘든 길을 가야만 한다. 회사의 의미를 훨씬 더 축소시켜야 한다. 회사를 아주 잘 이용하기만 할 것이다. 그래야 내 삶의 공간이, 내 삶의 시간이 생긴다. 시간이 지나면 조연은커녕 단역조차 주기 아까운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그저 회사를 이용하며, 내 영역을 확대해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