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4의 두 번째 영화이자 첫번째 오리지널(본편)이다. 이전 작품인 '블랙 위도우'가 프리퀄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인피니티 사가가 끝난 후의 첫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제목에선 '닥터 스트레인지와 대혼돈의 멀티버스'와의 유사성이 눈에 띄는데 앞으로의 MCU 영화들의 특징이 될지는 모르겠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감상 후 MCU에 대한 모든 기대를 내려놓은 필자도 그렇듯 많은 이들이 페이즈 4부터의 MCU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시기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역시 실질적 첫 작품으로서 그 눈총을 온몸으로 받아낸 영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나 국내에선 극심했던 반중정서와 무협 판타지란 장르 자체에서 느껴지는 올드한 감각이 더욱 더 이 영화에 불리한 환경을 조성했다고 생각된다. 오늘의 리뷰는 지나치게 저평가됐다 여기는 이 영화에 대해 소소하게 변호해보기 위해서이다.
어느 국가에나 있는 이야기지만, 권위주의적이며 근대화가 더뎠던 동아시아에선 특히 신구세대의 갈등이 주된 화두였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내가 본 영화로 치면 '해운대', '은밀하게 위대하게', 들은 영화 중엔 '국제시장', '신과 함께' 등의 영화에서 부모 혹은 부모에 대한 감정을 주요히 다루고 있는 건 한국의 다양한 세대에 있어 부모 혹은 부모 세대에 대한 밉고도 사랑스런 애처로운 정서가 보편적이란 반증이라 생각한다. 신파를 위한 도구가 아니었나 반박할 수 있지만, 부모에 대한 감정이 신파라는 하나의 클리셰가 될만큼 자주, 효과적으로 다뤄져 왔단 건 결국 우리의 문화가 실제로 그렇단 게 아닌가 사료된다.
일본계 어머니를 둔 미국인으로서 데스틴 대니얼 크레튼 감독도 이런 주제에 익숙했으리라 생각한다. 영화 내에서도 이민 2세대인 '케이티'의 가정이 잠시 묘사되는데, 결혼이나 제사를 언급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무뚝뚝하게 받아치는 케이티의 모습이 눈에 띈다. 이러한 묘사가 단발적으로, 그리고 산발적으로 흩뿌려져만 있었다면 나 역시 '샹치'의 깊이를 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샹치'는 구(舊)와 신(新)의 융화를 액션 영화의 어법으로 훌륭하게 담아낸 영화로 다가왔다.
샹치의 주제이자 전반적인 테마는 '온고지신'이다. 즉 옛 것을 받아들이되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를 이 영화는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샹치의 안팎으로 일어나는 두 가지 온고지신이 있는데, 하난 외적 온고지신이고 나머지 하난 내적 온고지신이다.
외적 온고지신은 말할 것도 없이 샹치와 샹치의 아버지인 웬우 간의 갈등과 그 흐름이다. 작중 웬우는 죽은 아내, 즉 샹치의 어머니를 부활시키기 위해 자신을 막아서는 아들 샹치와 맞선다. 이미 죽은 이에 대한 집착으로 산 자식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구세대' 웬우의 모습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고인물'과 같은 인상을 준다. 웬우가 그릇된 선택을 하는 데 역시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이고 하나는 경험적 차이 때문이다. 천 년 넘게 잔혹한 폭군으로 산 웬우가 30여년 정도 가정을 가졌다고 극적으로 변할 리없으며, 10대에 미국으로 떠나 새로운 문화를 접하며 자란 샹치와 달리 웬우는 아내가 죽은 후로 원래 살던 곳에 틀어박혔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의 차이로 생기는 신구세대의 갈등은 앞서 말한 이민 2세대들의 보편적 경험이기도 하다.
둘의 갈등은 모든 사건의 배후 다크 드웰러(국내 번역은 '어둠의 드웰러')의 둥지 앞에서 결투를 벌이며 절정에 달한다. 이 결투에서 샹치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타격 중심의 강권으로 맞서나 결국 열세에 몰린다. 그러나 그가 어릴 적 어머니와의 시간을 되뇌며 어머니께 배운 부드러운 유권을 구사하자, 웬우의 자세를 무너트리고 그의 권위를 상징하는 텐 링즈마저 빼았을 수 있게 된다. 이는 웬우와 같은 마초적이고 수직적인 태도는 부인인 잉리와 같은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가짐을 이길 수 없다는 견해를 자신을 억누르던 아버지 웬우를 극복하는 샹치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한편 다크 드웰러가 풀려나고 죽음 앞에서 자신의 손으로 자식에게 텐 링즈를 물려주는 웬우의 모습은 이 영화가 아시아의 부모들이 갖고 있는 완강한 애정의 장점 역시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샹치는 다크 드웰러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유권과 아버지의 강권을 모두 써서 싸우는데, 두 부모님의 장점만을 물려받아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샹치의 모습은 치열하고 혼란스런 사회를 살고 있는 아시아의 청년들에게 건내는 힘찬 응원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자신의 안에서 그릇된 악을 버리고 정제된 부드러움과 강함만을 남기는 내적 갈등의 해소가 바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내적 온고지신이다.
내가 가장 감탄한 부분은 이러한 샹치의 성장을 액션으로 표현한 방식이다. 웬우가 텐 링즈를 사용해 싸우는 방식은 대부분 폭력적으로 링을 쏘거나 휘두르는 것으로 연출되며, 방어를 위해 쓸 때조차 링을 마구 휘둘러 자신만을 보호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샹치는 링으로 동생 샤링의 팔을 묶어 구조하거나 붙잡고 버티는 지지대로 쓰는 등 같은 무기라도 비교적 비폭력적인 분위기의 기술들을 구사함으로써 아버지와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이 중 하이라이트는 링을 던져 발받침으로 삼는 장면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지배하기 위해 링을 쓴 웬우와 다르게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링으로 활로를 여는 주인공의 모습은 온고지신의 삶을 은유한 액션이며 영화의 테마를 액션으로 승화시킨 훌륭한 예라고 생각된다.
"어머니가 죽고, 우린 아버지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우리 대신 텐 링즈를 택했죠!"
마무리하며 정리하자면 필자가 본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책임과 권리의 불균형 사이에서 신음하는 청년 세대(특히 아시안)에 대한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이자 직설적인 우화였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나쁜 부모를 극복하고, 돌보지 못했던 후대(동생)에 대한 속죄를 하며 영웅으로 거듭나는 샹치의 서사는 잘 짜여진 영웅서사이자 현실에 대한 이상적인 가정이였다.
어쩌면 필자의 가정환경이, 혹은 장남이라는 가정 내 위치가, 이 서사에 더 몰입하게 만들고 더 호평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사실 액션의 스케일을 뒷받침하기 위해 투입된 괴수물적 요소나, CG로 구현된 전설 속 동물들 혹은 복장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촌스러운 감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MCU의 전성기인 '인피니티 사가'의 작품들을 아우르는 '힘의 상실에 의한 내적 성장'이란 테마가 살아있는가 하면 이 역시 다르긴 하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필자가 파악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단점 대부분은 피상적 요소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진심을 파악했을 때 생각보다 깊은 울림을-특히 따스한 느낌을 받을지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