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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onechoi Dec 28. 2021

동무, 초코파이 먹으면서 개성시간 안 가지고 싶소?

우리 아기의 교복 만들어 주시지 않으시겠습네까?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2021년 평화 공단 교육 후기 공모전' 개성공업 지구 지원 재단 이사장상 수상작  



우리 집에는 이상한 전통이라 할지 문화라고 소개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암묵적인 룰처럼 거행되던 하나의 관례 같은 것이 있다. 바로 아이들의 교복 금액은 꼭 친척들이 주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나의 교복 비용을 삼촌에게 받았다면 삼촌의 아이에게 교복비를 지원하고 삼촌의 아이는 내가 키우고 있는 아기에게 미래의 교복비를 주는 형식이다.


일종의 계라고 하면 이해하시기가 쉬우실지도 모르겠다. 내가 마지막으로 교복비를 주었던 때를 또렷이 기억한다. 때는 2016년 1월이었다. 이때를 정확히 기억하게 된 이유와 계기가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개성 공단 폐쇄로 인해서 내가 큰 일화를 하나 겪게 되었었기 때문이었다. 

월급날을 기억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않으시는 직장인이 있을까? 별반 나도 그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빠듯한 월급을 받으며 서울에서 홀로 자취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그때의 나였기에 이 월급날과 월급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월급은 통장을 스쳐간다라는 말을 절감했던 시기였음을 고백한다. 그런 이유로 삼촌의 셋째인 막내에게 주어야 하는 교복값은 지난해 11월과 12월 이렇게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연말이니 연초니 해서 지출이 많아진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말이다. 하지만 이번 달은 달랐다. 1월 전에는 교복비를 주어야 아이가 교복을 맞출 수 있으니 이번 달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이번 달, 1월에는 꼭 주어야 했다. 

당시 월급날은 10일이었다. 당일에 어김없이 월급을 받았다. 위에 말했듯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돈을 보내야 했다. 거금인 30만 원을 이체하며 '아 이제 빚 아닌 빚을 갚는구나'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후련하면서도 '아 오늘부터 신용카드의 빚 아닌 빚이 더 늘어 나는 처지가 되겠구나'하는 슬픈 마음도 들었다. 미리 받아 두었던 삼촌의 계좌로 막내의 교복비를 이체하고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촌. 미안해요. 더 일찍 넣어줬어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더라고... 암튼 막내의 중학교 입학을 축하해요. 아이에게도 그렇게 전해 주세요. 그리고 교복 예쁘게 맞춰주세요. 교복은 매우 신중하게 맞춰야 해요. 3년을 입을 건데 중요하잖아요. 잘 알아보고 맞춰주세요. 교복 맞추면 입은 모습 꼭 보여주세요. 궁금하니까. 꼭 연락 주세요."  

 "그래. 고맙다. 혼자 서울 살이 빡빡할 텐데 애 교복비 챙겨서 넣는다고 고생한 거 아닌지 모르겠네. 안 그래도 교복 맞추려던 참인데 잘 됐구나. 세월 빠르다. 막내가 중학생이 될 줄이야. 잘 알아보고 맞춘 다음에 꼭 연락 줄게. 꼭 보여줄게. 기다려."

그렇게 이 사건을 잊고 지냈다. 시간이 지나 입학시기가 왔을 때쯤인 2월이 돼도 삼촌 막내의 교복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집 근처 학교 앞의 교복 집을 지나가다 문득 삼촌 아들의 교복이 생각이 났다. '아직 교복을 맞추지 않았다면 안 될 텐데... 교복을 맞췄으면 연락을 안 줄 분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심하다 전화기를 들었다. 기다렸던 교복의 소식이 매우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삼촌 대책 없이 아이 교복 아직 안 맞추신 건 아니죠? 에이... 연락 주신다면서 왜 연락이 없어요? 무심하게 이러시기예요? 서운하게... "

삼촌은 한숨부터 쉬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어휴. 여기가 난리가 났어. 너는 모를 수도 있겠구나. 개성공단이라고 너 들어봤는지 모르겠는데 거기서 애들 교복을 많이 만들었었나 봐. 나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인데 이번에 진짜 제대로 체감하게 되네. 거기가 닫히면서 애들 교복을 만들 수가 없나 봐. 여기서는 이일을 대란이라 할 정도야. 아휴... 미치겠다. 소식 기다렸을 텐데 미안하다. 이를 어찌해야겠나 싶다. 개성공단에서 교복을 못 만들어서 애들 교복을 구할 수가 없대. 다른 애들도 교복을 못 구하고 있고 우리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 미치겠어. 진짜. 답답하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개성공단이라... 뉴스에서 보기는 했다. 그렇지만 멀리 있는 일이라 생각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아이들 교복까지 북녘에서 동포들이 만들어 주시고 계셨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충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생활에 개성공단이 개성과 내가 있는 서울의 거리만큼 가까이 있었구나, 생활 속에서 개성공단이 중요한 일, 꼭 필요한 일을 해 주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이 일을 겪으며 개성공단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부끄러움도 살며시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2021년 10월, 6여 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나는 다시 개성공단을 만났다. 바로 지금 수강하고 있는 남북경제협력 전문가 과정의 수업으로 말이다. 6년 전에 겪었던 이 교복의 사건이 개성공단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작점이 되어 주었음을 고백한다. 이 수업을 듣게 하는데에 있어서도 큰 계기가 되었음도 함께 고백하는 바이다. 수업을 들으며 그때의 기억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개성공단에 대해 알아가면서 다시 한번 그때의 경험을 깊게 생각해 볼 수가 있었다.



북한에서 금기어인 자유라는 단어 때문에 자유시간에서 개성시간으로 이름이 바뀐 개성 시간 




수업을 들으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 내용은 초코파이와 자유시간이라는 과자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기를 낳아 기르고 있으니 과자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게 들렸던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자유시간이라는 과자가 이름의 자유라는 단어 때문에 개성 시간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수업을 듣는 나에게 매우 인상이 깊게 다가왔다. 북녘의 동포들은 지금 이 시간에 이 초코파이와 개성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며 추억하고 있을까가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이유다.

나는 요즘, 수업을 들으며 언젠가 북한의 개성공단으로 가서 북녘의 동무들과 초코파이와 개성시간을 함께 먹는 것을 상상하는 꿈을 꾸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 아이와 함께 개성공단에 함께 갈 수 있다면 더 황홀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한 가지의 더 황홀할 꿈을 꾸고 싶다, 바로 개성공단에서 우리 아이가 입을 교복들을 다시 만들어 주는 일이다. 이 일은 머지않았으면 좋겠고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오늘도 자라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이 꿈들을 꾼다. 꿈을 꾸면서 개성에 계신 동포들께 여쭙고 싶어졌다. 6년 전 삼촌 막내의 교복비용을 주던 회사원이었을 때, 손꼽아 기다리던 월급날과 월급처럼 간절하게 다시 열릴 개성공단을 기다리며 동무들께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동무들은 그동안 우리들이 안 그리웠습네까? 그간 일없이 잘 지내셨디요? 동무, 다시 한번 개성공단을 활짝 열어제끼고 초코파이 먹으면서 우리 아이 교복 만들어 주시는 개성 시간을 다시 한번 가지시지 않으시겠습네까?"      



개성공단에서 만들던 교복을 일러스트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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