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선배에게서 카톡이 왔다.
이 선배는 졸업한 호주 대학의 끈을 가지고 알게 된 좀 특별한 인연이다.
나는 호주에서 학사 취득을 위한 유학생활을 했다. 재학 시절 생존을 위한 온갖 대내, 외 활동을 있는 대로 찾아다니며 모조리 다 했었는데 (호주 CPA 학생 홍보대사, 대학 멘토링 프로그램의 멘토, 호주 원주민의 학업 보조를 위한 정부 지원 프로그램의 조교, 재학 중이던 학교 내의 국제마케팅팀에서 인턴 등등 - 정말 닥치는 대로 다했다) 국제 마케팅팀 인턴 시절 내가 재학 중인 대학교를 한국 유학원 (에이전시)에 홍보해 한국 학생을 유치하는 일을 했고, 유학 박람회와 콘퍼런스 그리고 워크숍 등 행사를 통해 유학원 대표 - 마케팅 인턴의 관계로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호주 주정부 교육청 프로젝트 인턴으로 입사를 했고 완전히 같은 바닥에서 눈만 돌리면 서로 아는 겹치는 지인들 (Mutual friends) 이야기로 밤을 새울 수 있는 친해지기 아주 좋은 상황에서 종종 우연히 행사에서 얼굴을 보면 아주 반갑게 인사하던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선배님은 글로벌한 교육 사업체를 운영하는 멋진 롤모델로, 아마 선배님께서는 호주 현지에서 드물게 생존한 자랑스러운 후배님(?)으로 남겨졌지만 따로 특별히 이야기를 나눌일은 없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올해 유독 나의 직장생활과 인생이 고되고 힘들어 이직과 이민 등 굵직한 고민 중에 종종 업무상 한국에 오시는 일정에 맞추어 인생 조언을 구했다. 그때마다 세상이 이렇게 넓고 할게 얼마나 많은데! 하고 말씀하시는 내 인생의 가장 대빵 응원단장님께서는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로 유튜버 전향을 강력하게 밀고 계셨고, 그러던 중
"후배님, 청년 해외 취업 정책 토론회에서 호주 취업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는답니다. 유튜버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을 국회에서!"
라는 장난 섞인 카톡으로 시작된 일이 정말 현실이 된 게 아닌가? 오늘 국회에 가서 호주 대표 해외 취업자로 우리나라 취업 정책을 위한 토론을 했고 (이게 말이 됨?), 3시간 동안 행사장에서 긴장 타느라 연신 들이킨 물 때문에 끝나자마자 뛰어간 화장실에서 한 여학생분이 오셔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언니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데 더 해주세요!!"는 말을 세상 처음 듣고 충격받았다. (볼일 보고 나오던 길이었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다시 들어가고 싶..) 그래도 뭐라고 대답은 해야 되는데 머리가 하얘져서 떨리는 목소리로 "저도 10년 전 김수영 언니(대표님, 언니 해주세요)의 책을 보고 그 언니처럼 되고 싶었어서 그분의 책 읽고 꿈을 가지고 대학생활했었어요. 제가 이런 말씀드리기에 너무 부족하지만 지금 학생분의 젊음으로 원하는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꼭꼭 현실에 지쳐서 포기하지 마시고 파이팅하세요!! :)"라고 말하고 티 안 나게 애쓰며 도망치듯 화장실을 빠져나가는데..........
아, 저기요! 혹시 블로그 같은 거 안 하세요? 해외 취업 이야기가 있는?
그래서 난 "아? 엄. 음. 아... (일시정지) 아니요. 안 해요. 근데, 오늘부터 당장 해야겠네요. 블로그 이름은 어.. 어.. 음...(내면의 소리: 에씨 뭐라도 빨리 말해 이 좌식아) 삼십춘기!!! 삼십춘기예요. 제가 지금 삼십춘기거든요. (진정 제대로 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거니?) 시간이 걸리겠지만 하나씩 써서 올릴게요. 그리고 생각하시는 꿈, 하고 싶으신 일 꼭 도전하세요.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하고 대차게 질러버렸다. 그리고 어리벙벙한 채로 행사 이후 오찬 자리가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기 위해 국회를 빠져나갔다.
난 아직 삼십춘기 중인데... 여전히 내 인생도 모르겠고, 매일 넘어지고 다시 세우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나처럼 살고 싶다고? 내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내가 자격이 될까..? 해외 취업, 한국의 교육문제, 그리고 청년의 미래. (정책토론회에서 울분을 통해내는 대학생들의 절박한 눈빛과 목소리)
식사는 시작되었고 각 정부부처에서 청년실업을 낮추고 취업을 돕기 위해 진행되는 다양한 소식을 들었다.
청년의 해외취업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돕는 나라가 어디에 또 있을까? 정부지원금이 나가고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그래도 결국 핵심은 '사람'을 통한 도움이라는 것.
그래,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도 없을 거야. 카페에서 노트북과 함께 하루 8시간씩 이력서에 매달리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버티는 청년들에게 너희가 보지 못한 더 큰 세상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실패할지언정 무너질지언정) 무엇이든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 인사를 건네는 문자에서 "(실제로) 글로벌 노매드가 된 OO님이 앞으로도 직접 청년들의 해외 진출에 관심 계속 꼭 써주세요"라고 다시 한번 산업인력공단의 본부장님께서 힘을 주셨다. 어쩌다 나는 글로벌 노매드로 불리게 되었고, 그렇게 국회 화장실 문지방 코너에서 정해진 '삼십춘기'라는 직관적인(!) 이름으로 오늘 첫 블로그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