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으로 화장실은 보내줘!
내가 주로 공부하는 컴퓨터방에는 바퀴 달린 의자 2개가 있다. 하나는 엄마가 고른 시디즈 의자, 다른 하나는 자동차 좌석처럼 생긴 의자. 외동이라서 마음대로 하나씩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건 고양이들이 우리 집으로 오기 전 얘기이다. 이 녀석들이 교대근무를 하면서 레이싱 의자를 점령하고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살아있는 냥CCTV는 나한테만 애착이 심한 첫째냥이로부터 시작했다. 공부할 때, 샤워할 때, 잘 때… 언제나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다른 고양이들도 첫째를 보고 배웠다. 의자에, 책상 위에, 가끔 집사의 무릎 위에 앉아서 공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영리한 동물이다. 집사가 잠깐 음료수를 가지러 가려고 의자에서 몸을 떼면, 바로 바닥으로 폴짝- 내려온다. 잠깐이니까 그냥 앉아있으라고 말해도 따라온다.
내가 집에서 N수 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 약속 있는 날을 제외하곤 24시간 집에만 있기 때문일까? 우리 세 마리한테 나는 ‘그냥 이 집사는 항상 집에 있는 집사’로 자리 잡아, 내가 없을 때 사고를 많이 친다. 샤워할 때 꽤 오랜 시간 욕실에 있으면, 첫째는 사냥감을 물어왔다는 울음소리와 함께 휴지를 물어뜯어 놓는다! 부모님이 출근하셨을 때는 괜찮지만, 주말에 엄마가 보고 있을 때 저러면 바로 잔소리가 날아온다.
그래도 집사를 위한 낭비 선물이니까 혼내면 안 되고, 사냥 잘해왔다고 궁디팡팡 칭찬해줘야 한다.
‘펫캠’이 언제부터 ‘집사캠’이 되었는가?
집사, 공부해. 빨리 돈 많이 벌어서 츄르 사줘.
나는 고양이라서 공부 안 해도 된다. 부럽지? 이제 창문 앞에 보초 근무하러 갈게.
야, 너는 나 공부하는 거 지켜본다면서 자고 있냐?
방해할 거면 그냥 자라…
순공 시간이 떨어져서 걱정되시는가? 그럴 때마다 첫째가 쓰는 특단의 조치가 있다. 의자 바퀴 뒤에 누워서 집사가 의자를 빼고 일어서지 못하게 버티는 것이다. 부작용은… 집사가 화장실도 못 간다.
그냥 의자를 빼면서 뒤를 돌았는데 진상 고양이가 떡하니 뻐기고 있어서 이 붕어머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의자 몸체만 살짝 돌리고 팔을 뻗어 고양이를 조금씩 밀어내도, 어느 순간부터 팔이 안 닿아서 화장실을 갈 수 없다.
고양이는 정말 몰라서 집사의 일상을 방해하는 걸까? 다 알면서 집사의 순공 시간을 지켜주는 걸까?
인간적으로 나 화장실은 보내주면 안 될까?
나는 고양이야. 집사는 고양이법을 따라야지.
귀여우니까 용서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