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집냥이들 잊었어?
우리 부모님이 새로 이사한 공장은 준공연도가 당신들 또래일 만큼 노후했으니, 그 동네 공냥이의 역사도 오래되었다. 옛날부터 고양이들이 몰래 들어와서 배설물로 공장을 어지럽히고 가는 바람에, 이전 주인분께서는 공장 틈틈이 자리한 개구멍도 막고, 높은 층고를 지탱하는 벽체 옆 철골에도 못 올라가도록 그곳과 연결되는 계단도 막아두셨다.
아빠도 이사하기 전에 그 사실을 알고 들어갔는데, ‘우리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이고 집에서도 기르고 있으니까, 아무리 막아도 어차피 공장 영업할 때 문 열면 들어올 애들, 편하게 있다 가도록 모르는 척해주자’라는 뜻이었다. (우리 양가 어른들은 ‘고양이는 요물이라서 함부로 대하면 해코지하니, 집에 들어오면 좋은 뜻으로 생각하고 내버려두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만약 식품 제조업이었으면 상당히 난감했겠지만, 건축 자재 가공업이라 고양이 때문에 제품에 생기는 문제는 없어서 가능했다.
우리 신입, 초바, 요뜨를 집으로 데려오고, 원래 공장에서 먹이다가 남은 사료를 엄마가 새 공장으로 챙겨 오면서 제2대 공냥이의 존재가 드러났다.
“엄마, 아빠, 공냥이한테 자꾸 정 주지 마. ㅇㅇ삼촌(외삼촌 No.4, 16살 장수 고양이를 키웠다.)도 그렇게 말했잖아. 끝까지 책임질 거 아니면 시작도 하지 말라고.”
“우리가 물 안 챙겨주면 공장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서 변기물 먹더라. 바닥이랑 변기에 고양이 발자국이 얼마나 많던지. 깨끗한 정수기 물 챙겨주는 김에 사료도 챙겨주고 그런 거지 뭐. 똥도 우리 공장에 다 싸드라만. 맨날 아빠랑 ㅇㅇ아저씨가 출근해서 치우고~”
“공냥이 똥이 있제, 우리가 밥 주기 전에는 설사처럼 하다가, 이제는 막 똥글똥글해~”
”음식물 쓰레기 같은 거 주워 먹다가, 자기 몸에 맞는 염분만 들어간 사료 먹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것 같더라. 얼마나 잘 먹는지~”
“공냥이 몇 마린데?”
“적게 잡아도 2~3마리는 공장에서 자고 가는 것 같던데? 얼굴 아는 건 딱 하나밖에 없다. 젖소처럼 생겼는데 얼굴이 넙대대해가 수컷 같더라.”
“만약에 걔도 신입이처럼 눌러앉으면 어떡하려고?”
“야! 공냥이는 지게차 위에서 얌전히 잠만 자고 가더라. 저 양심 없는 신입이 가스나처럼 ‘키워라’ 그카지도 않고. 응? 얌전히~ 주는 밥만 먹고~ 우리 공장 열어서 일할 때는 산책 갔다 오고, 공장 어딘가에 숨어 있고 그카더라~”
“엄마는 맨날 신입이만 뭐라 해…”
“원인 제공을 신입이가 했다이가! 가스나가 집에 침대, 커튼, 소파, 벽지 다 베려놓고. 가스나 때문에 내 집에 내 맘대로 가구도 못 놓고! 내 맨날 밥 먹을 때 바닥에 앉아가 허리 아파 죽겠구만. 털 때문에 거실에 앉아 있으면 허벅지가 얼마나 가렵던지. 자다가도 가려워가 깬다이가.”
“안방 침대랑 커튼은 신입이가 이사 스트레스 때문에 설사 폭탄 뿌려서 그렇다 쳐도, 소파랑 벽지는 초바랑 요뜨도 같이 긁었거든?”
“몰라! 생각만 해도 화난다. 지금 공냥이가 백번 낫지. 으휴~”
때마침 부모님 공장 근처에 내 볼일이 생겨서 아침에 같이 출근했다. 나는 공장 사무실에서 자라서 그런지 여기가 꼭 집처럼 편하고, 가끔 와서 힐링하고 그런다. 초봄에 두터운 작업복 재킷을 걸치고 있으니, 아기 요뜨는 지퍼 사이가 숨숨집인 줄 알고 폭 파고들어서, 아기띠 맨 엄마처럼 재킷 밑을 단단히 받치고 현장을 빙빙 둘러 산책하기도 했다. 그때 지퍼 사이로 세상을 구경하는 요뜨의 눈빛이 얼마나 예뻤는지… 독특하지만 내 태생이 그래서 이 또한 나로 자리 잡은 것을 어쩌겠는가? 나도 4살부터 옛날 공장에서 자랐고, 우리 세 마리도 그 공장에서 자랐다.
“ㅇㅇㅇ(필명25), 배고프면 냉장고에서 비타 한 병 마시라.”
“예, 어머니~”
“엄마, 나 다 마셨는데, 지금 공장에서는 병 어디다 모아?”
“저저, 사무실 밖에, 분리수거하는 옆에다가 모으는데, 손님들 드신 거랑 한꺼번에 버리게 내한테 도.”
“아냐, 내가 나갔다 올게.”
내가 병을 내려두는 쨍그랑- 소리에 오른쪽 구석에서 노란 덩어리 하나가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우와~ 세상에~ 엄마, 아빠, 빨리 나와봐! 공냥이야! 공냥이! 완전 애기다…”
“엄매야, 쟈는 처음 보는데?”
“엄마, 빨리 사진 찍어줘. 너무 귀여워…”
“ㅇㅇ아빠, 이거 보소. 엄청 귀엽제?“
“어디…”
“아빠, 어때? 완전 귀엽지? 어떻게 보면 치즈냥인데, 자세히 보면 갈색 털이 있어서 신입이 닮은 삼색이더라.”
”집에 있는 세 마리랑 바꿔치기해서 쟈를 집에다 키울까?”
“엄마!!!”
“왜? 쟈가 더 안 귀엽나? 내가 사실을 얘기하잖아.”
“엄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애들도 얼마나 귀여운데! 그럴 수가 있어?”
“응.”
“…”
“집에 있는 고새끼들도 얼마나 좋겠니~ 옛날처럼 밖에 산책 다니고~ 애기 한 마리만 키우면 아무래도 집에 털도 덜 날리고~ 아빠 기침도 덜 할 거고~”
“엄마는 항상 새끼만 편애하고.”
“당연하지~ 사람 새끼도 쪼끄만 할 때나 잠깐 귀엽지~ 실컷 키워놨더니 집에서 밥만 축내고~ 고새끼랑 세트로 그렇고~”
“끄응…”
“나는 사실만 얘기했다~ 쟈 하나 딱 데려가갖고 무릎냥이로 잘 길들이면 얼마나 좋노. 집에 있는 아새끼들처럼 함 안아볼라면 까칠하지도 않겠구만.”
금요일에 엄마가 퇴근 후에도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잔업을 하면서 말했다.
“아, 맞다! 그 아기고양이 그대로 있더라.”
“응? 오늘 봤어?”
“어. 그동안 한 번도 못 봤는데, 오늘 내가 1시간 늦게 퇴근했다이가. 그래서 아빠랑 나랑 벌써 간 줄 알고 현장에 돌아다녔나 보대? 화장실 청소하고 나올라니까 도망가서 봤다.”
“저번처럼 큰 고양이한테 들킬까 봐 화장실에 숨은 거야?”
“아니, 나만 화장실에서 나왔고, 애기는 선반에 올라가 있다가 내려온 것 같은데? 우리가 하루종일 공장에 있는데도 애가 겁이 많아서 보기 힘들다. 오늘 보자… 집에서 7시에 나갔으니까, 공장에만 11시간 있었네.”
“와… 둘이 그때 나가면 공장에 8시 전에 도착하니까 거의 하루의 절반 정도는 공장에 있었네.”
“출근하니까 아침에 졸려 죽는 줄 알았다. 비 안 오는 날에 거래처 현장에 출고시켜 줘야 되니까 일이 몰려 갖고. 아… 정리가 안 된다.”
“그게 다 우리 신입이가 행운의 삼색 고양이라서 그렇지요~”
“야, 허구한 날 에어컨 틀고 뻗어 자는 쟈들이 뭘 한다고.”
(무풍으로 26도 밖에 안 했는데 춥다고 이불을 파고들어 자는 ‘신입’)
(같은 이유로 언니의 무릎냥이가 된 ‘신입’ / 집사가 종아리에 쥐 나도록 앉아있는 ‘요뜨’)
(이불 개어 놓으면 항상 그 위를 차지하고 자는 요뜨)
(에어컨을 피해 텐트 안에서 사이좋게 붙어 자는 형제 ‘초바’와 ‘요뜨’)
“으으응~ 우리 애들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도 다 하는 일이 있지요~ 근데 걔를 처음 본 것도 벌써 한 달 반은 넘었을 건데? 많이 컸어?”
“아직 그대로더라. 밥은 잘 먹던데 쪼마내. 그리고 처음 본 애도 있는데, 내 폰에 사진 몇 장 찍어왔다. 이거 봐리.”
“삼색이네? 애가 완전 크다.”
“츄르 짜주니까 가까이 오더라.”
“츄르가 뭔지 알아서 그래?”
“알긴 뭘 아냐. 뭐라도 더 줄까 싶어서 가까이 와보는 거지. 우리 집 고새끼들처럼 가려 먹는 게 아이고, 야는 음식 소중한 걸 안다이가.”
그리고 큰 공냥이 중 하나는 월세로 쥐를 잡아줬다고 한다. 우리 엄마의 바람대로 공냥이라도 밥값을 하나보다.
(쥐를 보기 불편하신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좀 가렸습니다.)
다들 여름은 잘 보내셨나요? 원래 이번 편은 저희 세 마리의 동물병원 진료를 담을 예정이었으나, 초바의 구토가 며칠간 멎었다가 다시 시작되는 바람에 아직 치료 중이라 새 공냥이부터 올립니다. 제가 우울함을 견디는 데는 딱 세 가지만 있으면 되더라고요. 맛있는 거, 시원한 거,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귀여운 거’. 힘든 시기에 귀여운 고양이 사진으로 잠깐이라도 웃으셨다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저희 고양이들 예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