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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일럿대디 Dec 05. 2018

주부 우울증, 얼마나 위험할까?

메르스와 주부 우울증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주말을 이용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방에 있던 터라, 예고도 없이 찾아온 시끄러운 구급차와 군중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참아보려 노력했지만 컴퓨터 게임을 방해하는 소음들이 점점 더 커지자, 짜증과 호기심이 적절히 섞인 감정을 가진 채 문 밖으로 나왔다. 소리는 저 멀리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무심코 바라본 창가에는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순간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혼비백산하여 창밖을 쳐다본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물어보는 사치를 부릴 여유도 없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나의 곁을 떠났다는 사실’과 오롯이 마주하면서.

신문의 한 지면을 떠들썩하게 한 기사를 재연해 보았습니다. 절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이 사건의 원인은 ‘우울증’이었죠. 그녀는 혼자 감당하기 벅찬 가사와 육아 속에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그 결과 극단적 행동을 선택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도, 아이도 그리고 그이마저 변했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하루가 일 년 보다 길게 느껴지고,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도 이쯤 되면 슬슬 육아로 힘들어질 법도 하죠.


그런데 이제부터 설명할 이야기에 비하면, 앞서 말한 어려움들은 그 원인 정도에 불과합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다음 주제의 ‘전주곡’ 정도로 보아도 무방해요. 문제의 해결법도 ‘서로 도와야 한다’, ‘이해해야 한다’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죠. 이제부터, 물러 설 곳 없는 ‘주부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한때 의학드라마에 푹 빠져 지낸 적이 있습니다.

다소 괴짜인 주인공이 천재적인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모습에 매료되었죠. 그리고 이런 의학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세동기예요.

심장이 멎은 사람 위로 의사가 뛰어 올라갑니다. 몇 번의 심장마사지를 한 뒤 환자의 가슴에 반짝이는 금속으로 된 두 개의 판을 가져다 대죠. 이후 다급히 ‘clear’라고 외치자 삐~하는 소리와 함께 환자의 몸이 공중에 떠오릅니다.

여기서 의사가 환자에게 사용한 의료기구가, 바로 제세동기입니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심장을 다시 만들어 뇌로 혈액을 공급하는데 기여하죠. 그러나, 이 멋진 장면은 꽤나 위험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세동기가 작동할 때 최대 출력 전압은 5000v입니다. 가정용 전류가 220v란 점을 감안할 때, 상상할 수도 없이 높은 수치죠. 물론 자극의 시간이 지극히 짧은 건 사실이지만, 제세동기로 전기자극을 가할 땐 시술자는 환자와 반드시 떨어져야 할 만큼 주의를 요합니다. 그만큼 위험한 물건이죠.

그러나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전기자극을 환자에게 가하는 것은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함입니다. 위험이 큰 만큼 생명이라는 귀중한 결과를 얻었어요. 그래서 전, 다소 어렵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다음의 말은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올까요?


‘주부 우울증’은 ‘메르스’만큼 위험하다.


무척이나 선정적인 문구임이 분명합니다. 이 정도 제목이라면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요. 만약 조금이라도 우리의 관심을 돌릴 수 있다면, 저는 이보다 더한 표현도 쓸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한편, 메르스란 말을 듣자마자 “이건 말도 안 되는 비교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작가로서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나 이 꽤나 모험적이고 어려운 작업을, 한번 시작하려 합니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 ‘주부 우울증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여러분에게 ‘충격’ 요법을 사용하겠습니다. 메르스에 비교하면서 말이죠. 다만 이 충격 너무 세면 위험하고, 약하면 효과가 없을 수 있죠. 그래서 아주 어렵고 주의를 요하는 작업이지만, 작가로서 여러분에게 긍정적 결과가 있으리라 장담합니다. 그럼 이제 시작하죠.

힘들겠지만, 지금부터 ‘메르스’를 떠올려 볼게요. 2015년 5월 20일 첫 확진환자의 발생으로 처음 언급된 메르스를 말이죠.

거리에는 전 국민이 때 아닌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으며, 사람 간 전염을 두려워한 나머지 평소에 붐비던 도심의 장소는 한산했습니다.

세계 보건기구(WHO)가 2015년 12월 24일 00시를 기준으로 메르스의 종식을 선언할 때까지 우리나라에서만 186명이 확진을 받아 38명이 사망하였으며, 20.4퍼센트에 달하는 치명률은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무서운 질병이 주부 우울증과 비교가 될까요? 단순히 치명률로만 보더라도 조금 의아합니다.


비교를 위해 주부 우울증의 시작 격인 ‘산후우울증’을 살펴보도록 하죠. 미국 국립 보건원(NIH)에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출산 후 60퍼센트가량이 산후 우울증(Baby's blue)을 겪습니다. 이중 15퍼센트가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으로 전이되며, 이는 산모 100명 중 9명의 비율이죠.

여기서 우울증이 극단적인 결과로 나타났을 때의 치명률을 알기 위해 ‘자살’과 연결되는 통계자료를 대입해보겠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 중 2/3은 자살을 생각하며, 그중 10~15퍼센트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합니다.

앞서 언급한 산후우울증에서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으로 전이되는 비율 9명의 2/3은 6명, 그중 15퍼센트는 약 1명이 되겠죠. 다시 말해 ‘100명당 1명의 비율로 자살을 시도한다’라는 결론을 산출해 낼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무슨 생각으로 메르스와 우울증을 비교하기 시작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물론, 100명중 1명이라는 수치는 분명 위험하지만 위험도가 20배가 넘는 메르스와 비교하다니,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아요. 그러나 여기서 메르스의 치명률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메르스 관련 사망자는 안타깝게도 지병이 있으셨던 고위험군에서 대부분 발생하였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메르스의 피해를 가장 많았으며, 면역력 저하가 일어나지 않았던 50세 미만 집단의 사망률은 비교적 적었죠.

따라서, 정확한 비교를 위해, 가임기간을 15~40세로 설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메르스의 경우 해당 나이 때에서의 감염자는 총 69명이었고 그중 사망자는 2명이었습니다.

비율로 보면 약 100명당 2.8명의 사망률입니다. 여기까지 오니 주부 우울증의 100명당 1명의 비율과 약 3배 차이로 좁혀졌어요. 우울증으로 인한 극단적 시도자체만으로 충분히 위험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라고 볼 때, 이쯤 되면 ‘주부 우울증의 위험도’에 관한 여러분의 견해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위의 논리 전개가 단순한 ‘숫자놀이’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역학조사의 한계를 지적할 수도 있고, 다른 요인을 배재한 채 통계에만 의존하는 것이 불만인 사람도 분명 있겠죠.

그러나 메르스와 주부 우울증 이 두 가지가 모두 위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암 중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을 가진 폐암의 경우도 인구 10만 명당 40명이 채 되지 않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예요. 그런데 이에 관한 대처는 사뭇 다릅니다.

메르스는 국민적 관심 속에 범정부 대책이 수립되었습니다. 암에 관해서도, 수많은 보험상품이 나와있고 많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그 위험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다른 하나는 여전히 수면 밑의 문제로 남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주부 우울증을 남의 이야기 다루듯 하지 말았으면 해요. 이는 우리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생기는 우울한 감정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따듯한 한마디로 '소중한 가정'을 지킬 수 있다면, 더 이상 지체할 이유는 없겠죠. 늦기 전에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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