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

by 필석

미리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지난날에 대한 기록이다. 10년 차 직장인이 출근하기를 그만두었고, 지겹게도 자신을 돌보는 이야기. 큰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매일을 살아내며 꾸준하게 흐려진 자신의 경계선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어릴 적부터 꿈꾸던 직장이었다. 그 직장에 들어가 사회에서 한 명분의 몫을 해내고 싶었다. 운이 따라준 덕에 뜻하던 대로 됐고, 잔뜩 부푼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일들을 해냈다. 온 진심을 다해 나를 바친 탓일까, 좋아해서 선택한 일인데 마음을 다할수록 내가 사라져 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몇 년은 적응하느라, 몇 년은 나아지겠지 하며 보내다 보니 10년이 흘렀다. 분명 내가 원하던 일인데 무표정한 날들이 많아졌다. 돌이킬 수도, 머무를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었다.
나를 되찾고 싶었다. 그저 관성에 따라 지내다 보니 내가 흐려졌다. 알맹이가 없이 속 빈 강정이었다. 대체 나는 누구인지, 마음이 어떤지, 뭘 좋아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대답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했다. 맞다, 다들 그렇게 살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살기엔 내게 남은 삶이 너무 길었다. 주변에선 30년을 넘게 일하신 부모님이 퇴직을 했다. 직장이라는 껍데기를 벗고 자신과 마주한 부모님을 보며 나의 알맹이는 어떤 몫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어차피 언젠가 나도 부딪치게 될 상황이었다.

직장을 쉬며 좋아하는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쓰다 보면 흐릿해져 버린 나의 경계가 명확해지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에서였다. 이 글은 그렇게 쓰였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기억조차 못할 작은 선택과 틈새가 만들어 낸 균열이 모여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맞물려 있는 것이어서 대체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렇게 될 일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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