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점이 있다면 무언가를 소비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고 또 다듬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살면서 조금만 주변에 눈길을 돌려도 좋아 보이는 물건이나 라이프스타일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곤 한다.
나는 주위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물욕이나 집착이 적다고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온갖 것들의 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취향을 발휘하게 될 여지도 커져 버렸다. 다만 소극적인 태도는 어쩐지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가능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기꺼이 그것을 좋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그 좋음의 정도가 아무리 크고 선명할지라도 결국에는 조금씩 줄어들고 만다는 사실이다. 온 마음, 온 정성을 다해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새로 들인 식물은 어쩐지 생기를 잃고 있다는 이유로 관심에서 멀어져만 갔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마음에 드는 향수를 찾아서 열심히 써보겠다고 결심한다고 해도 이윽고 다른 브랜드의 신상품에 이내 관심이 돌아가곤 했다. 고심 끝에 고르고 골랐던 처음의 마음가짐과는 달리 뜨거웠던 열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쉽사리 흐려져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좀처럼 질리지 않는 것들도 있긴 하다. 그다지 반짝이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 잘 달라붙어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고 지속하는 데 드는 노력이 만만치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최근에 구입했던 파자마를 통해 나는 아무리 좁은 방이라도 파자마를 갖춰서 입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의 상태로 오랫동안 입기 위해서는 세탁에 신경을 쓰면서도 여러 벌을 바꿔가며 입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점차적으로 나는 엄청난 열정을 부러워하거나 오히려 그런 걸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대신에 꾸준히, 어찌 됐든 좋아하는 마음을 변치 않고 지켜나가는 태도나 끈기에 더 높은 점수를 주기 시작했다. 한 번에 얼마나 큰마음을 쏟을 수 있는지. 그것보다는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는지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크게 낙담하며 쉽게 지쳐버리는 사람이 반복되는 일상과 매일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 은근한 마음가짐, 끈기와 지속력이 중요했다. 특히 물건 자체에 대한 애착보다는, 나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순간이나 성취감을 주는 일을 향한 애정이 압도적으로 오래간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고 더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돈된 방에서 생활해야 우울함이 덜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눈에 보이는 책상과 테이블 위는 바로바로 치워야 한다. 마른 빨래도 제때 정리해야 한다. 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은근히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필요로 하는 일상의 작지만 커다란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활동하는 취미나 오래 앉아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또 체력도 관리해야 한다. 몸의 근육과 마음의 근육을 모두 키워야 하는 것이다.
오래 신경써서 선택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오랫동안 가꿔나갈 수 있다면 언젠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어떤 모습의 내가 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무언가를 꾸준히 좋아하는 일은, 실은 나를 조금 더 좋아해 주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이번 포스팅은 문예지 <월간 에세이>의 11월 호에 게재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