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제주도 여행, 식당에 대한 혹평과 극찬
※ 이 글은 글쓴이가 제주도를 처음 다녀와서 쓴 글이라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뜬금없이 제주도에 다녀왔다. 원래 나에게 제주도는 진득하니 1주고 2주고 느긋하게 가서 지내고 싶은 곳이었는데, 직장인이 1주일 휴가 생기고 여유가 있으면 제주도보다 해외로 떠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나 역시 그 예외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더라. 그래서 결국 곁에 있는 분의 지름(?)에 상상도 못했던 주말 제주도 2박2일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여행이라는 취미가 사실 참 무서운게, 여행만 잘 다녀오는 게 취미라면 정말 좋으련만 최소한 2~3개의 취미를 같이 겸하는 경우가 생긴다. 일단 여행을 갔는데도 사진을 안 남기는 게 아쉬우면 사진촬영을 전문적으로 하진 않더라도 괜찮은 카메라 하나는 구비해놓게 되고, (+삼각대에 렌즈는 옵션) 평소에도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은 어디 괜찮은 맛집 없나 두리번두리번, 가끔은 예약을 한 뒤 그 예약에 맞추어 여행 일정을 바꾸기도 한다. 자전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전거에 돈을 쓰게 마련이고, 기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나라의 기차역 탐방에 열을 올리며, 심지어 뮤지컬과 콘서트 덕후, 그 나라에 가면 꼭 그 나라의 언어로 쓰여진 책을 봐야 하는 사람 등등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유형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본 기차를 좋아하는 분들은 일본 기차에서 파는 도시락 때문에 도시락 덕후가 되는 경우도 생기더라(...)
어찌됐든 직장인이 되면서 어떤 식으로든 경제적으로는 학생 때에 비해 여유가 생겼고, 그렇지 않아도 맛집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을 가게 되면 그 지역에서 좋은 식당 하나는 꼭 가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꼭 좋은 식당만 가려고 노력하지는 않는 것이, 매번 좋은 식당만 가면 정작 로컬푸드를 놓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내가 짜지는 않았지만 나의 곁에 있는 분께서 나의 취향을 굉장히 많이 고려(!) 수요미식회에 나온다는!!(두둥) 맛집과 함께 줄을 서야 하는 맛집 몇몇을 일정에 미리 넣어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J님께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바입니다♥)
지난 울릉도 여행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만족도 95%의 굉장한 식사들이어서, 제주도의 식사도 그만큼 기대를 했다. 물론 결론적으로 만족도가 90%는 되기 때문에 굉장히 좋았던 식사였으나 단점들이 너무 크게 보였기 때문에 단점을 안 쓰고 지나갈 수는 없을 것 같다.
- 인생에서 제일 맛있었던 한치튀김 때문에 상대적으로 너무 존재감 사라진 새우튀김
- 화장실의 보수공사가 시급함
첫날 점심에 갔던, 수요미식회의 맛집! 평대스낵이다. 이 곳은 J님이 너무나도 가고 싶어했던 곳이라고 하였고, 실제로 2시간동안 기다려서 먹을 수 있었던 그야말로 대단한 집이었다.
이 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점은 마을 옆에 이렇게 자그맣게 위치한 작은 가게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유명세를 탄 이후로는 마을에 계시는 분들은 튀김을 먹지 못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줄을 서려 할 때쯤 지나가던 할머니 몇 분께서 '이 집 덴뿌라 나도 몇번 사먹어 봤는데 맛있어'라고 하면서 지나가셨는데, 앞으로 그 할머님께서 이 튀김을 다시 드실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동네 어르신 우선 정책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 집은 J님의 추천 그리고 수요미식회에 나왔던 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대단한 한치튀김이 나왔다! 사실 이가 안좋아서 오징어 종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한치튀김이 이렇게 부드럽고 바깥이 바삭할 수 있구나 가르쳐준 것 같다. 다만.... 떡볶이의 양념이 너무 강하고 이것은 맛이 밍밍한 한치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은 보다 살려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새우튀김과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새우튀김은 재료 자체의 향을 살려주면서 비린 맛을 잡는 소스가 조금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무엇보다 한치튀김이 너무 맛있어서 사람들이 다들 새우튀김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우왕! 새우튀김!!'의 맛까지는 도달하지 않는 듯하다. 분명 새우튀김의 튀김 역시 아주 좋고 속도 잘 익었으며 껍찔째 먹기 아주 좋지만, 상대적 저평가라고 해야 할까...?
- 맛있는 돼지고기와 쫄면 뒤의 느끼한 볶음밥이 맛을 정리하기는 커녕 앞에 맛을 망침
- 친절함과 주위 마을에 대한 배려는 100점 만점에 100점!
제주도에 도착해서 제일 먹고 싶었던 것은 바로 삼겹살이었다. 그리고 월정리에 삼겹살집이 있어서 마침 이 곳에서 삼겹살을 먹기로 정했다. 우리가 먹었던 것은 A세트였는데, 위와 같이 고기+쫄면의 구성으로 볶음밥을 더 시키면 볶음밥이 나온다.
기대했던 만큼 삼겹살의 질은 괜찮았고 맛있었다. 특히 쫄면에 넣은 삼겹살이 신의 한 수였는데, 쫄면은 사실 매운데다가 채소만 엄청 많이 들어가 있어서 맛을 잡아주는 무거움이 조금 부족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 무거움을 삼겹살이 가지고 있다. 마치 고추장삼겹살을 먹은 것 같은 느낌?
문제는 볶음밥이었다. 삼겹살+김치볶음밥의 궁합이 잘 어울리는 이유는 기름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김치 때문인데... 오코노미야끼같이 만든 볶음밥의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정말 오코노미야끼였다는 것? 청량감을 더해주는 케이퍼, 혹은 백김치라도 같이 넣어서 볶았다면 조금 더 산뜻하게 식사를 마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곱들락은 늦게까지 영업하지 않는다. 원래 사람들이 사는 마을인 월정리의 주변 이웃들을 배려한 것이기도 하고. 제주도를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그것이 충돌에 의한 것이든 자발적인 것이든 어쨌든 서로 조금씩 내어놓는 양보를 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감귤이 들어간 잼은 정말 맛있어요!
- 고양이 인형이 진짜인줄 알고 놀랄 뻔 함...
위의 두 곳이 원래 제주에 가기 전부터 가려고 했던 곳이라면, 이 집은 우도에서 나와서 공항으로 돌아갈 때, 시간이 남아서(그런데 결론적으로 안 남았다) 들른 곳이다. 복분자빙수가 유명하다는데 나에게는 가운데 사진의 감귤잼 토스트가 훨씬 더 맛있었다.
이 집을 다녀와서 느낀 거지만, 제주도에서 유명하다고 일컬어지는 관광지 맛집들은 다들 한두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이 특징의 공통점은 결국 '실험'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분명히 이 음식들은 육지에서도 모두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긴 한데 조금 더 도전적인 음식을 먹는 듯한 것, 비록 그것이 혹평으로 끝난다 할지라도 말이다.
오래도록 제주를 다녔거나 제주에 살아서 이 지역에서는 어디를 가야 이 지역만의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혹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를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나는 제주 여행에 있어서만큼은 새내기 of the 새내기, 그러한 식당을 알 수도 없거니와 알아도 말을 얹는 것이 실례일지도 모른다.
첫 제주 여행은 굉장히 성공적이었고, 나는 아마 앞으로 국내여행을 계획할 때 제주도를 첫 번째 선택지로 놓고 고려할 것 같다. 그 때 들른 집에서도 위 세 집처럼 극찬을 받을 맛과 함께 실험정신이 가득한 요리, 때로는 혹평을 받으면서도 도전할 수 있는 요리를 먹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