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늘 지나치듯 타던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커다란 노란 안내판 하나 터억하니 서있다.
“수리 중.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문구 위로, 너무나 길게 뻗어 있는 계단이 오늘따라 더 높아 보였다.
계단 앞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서 있었다.
특히 지팡이를 짚은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의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 분은 계단 꼭대기를 바라보더니 툭 내뱉듯 말했다.
“이놈의 에스컬레이터는… 고장도 잘 나.”
불만과 체념이 섞인 그 말이 찬바람처럼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기계는 고장 난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고장이 누군가에게는
‘견뎌야 하는 현실’이 되고,
‘포기해야 할 일’이 되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키는 순간’이 될 것이다.
계단 앞에서 당황해 서성이는 그 모습을 보며
상황 앞에서 깊이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계단은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장애물’ 일 것이라고.
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첫 발을 디딛자, 내 두 다리가 생각보다 힘차게 올라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 세 번째 계단,
허벅지가 밀어 올려주고, 종아리가 탄력 있게 반응했다.
심장 박동이 약간 빨라지면서도
몸은 묵묵히 나를 위로 끌어올렸다.
그 순간 아주 사실적으로, 아주 현실적으로 깨달았다.
건강한 두 다리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매일 단련한 결과를 증명해 주는 것, 이라고,
평소엔 몰랐다.
평소엔 너무 당연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가 서 있는 이 아침,
계단 위에서 나는 참 선명하게 내 몸에 대해 느꼈다.
걷는다는 건 축복이다.
거뜬히 오를 수 있는 체력이 있어 감사한 일이다.
멀리서 “어휴, 어떻게 오르지…”하며 발걸음을 멈추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목소리를 뒤로한 채
한 계단, 또 한 계단 올라가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내 두 다리야, 고맙다.
오늘도 네 덕분에 나는 주저함이 없다.
고장 나지 않은 내 몸이 얼마나 큰 능력인가,
오늘은 더욱 깊이 감사하는구나.”
마지막 계단을 올라섰다
힘들이지 않고 올라온 그 순간,
나는 다짐했다.
더 건강해야 한다고.
더 단련해야 한다고.
나를 움직이는 이 두 다리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나는 걷는다.
당당하게, 또 자신 있게
오늘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내 몸의 능력을 확인하고 증명한
소중한 계기가 됨에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