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날의 단상

by 비움과 채움

11월의 마지막 날, 인근 공원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달력은 분명 겨울의 문턱에 와 있는데, 공원의 풍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짙은 색을 품은 단풍 한 잎이 서릿발을 뒤집어쓴 채 바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내에게 속삭였습니다.

“오늘까지는 가을이야.

봐, 내가 이렇게 화려하게 가을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잖아.”


정말 그랬습니다.

가을은 떠날 생각을 미루고 있었고,

나무들은 마지막 자태를 최대한 길게 펼쳐 보이며 마치 ‘조금만 더 머물러도 되지 않겠냐’고 묻는 듯했습니다.


단풍은 이어 또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해마다 가을은 끈질기게 겨울에게 바통을 넘기지 않으려고 버티지.

올해도 둘러봐, 국화꽃도, 맨드라미도 다들 아직 가을을 붙들고 있잖아.

겨울을 좀 애타게 하는 중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자연도 계절도, 떠나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겠지요.

헤어짐을 서두르지 않는 마음은 언제나 사람을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오늘, 12월의 첫날.

달력은 분명 겨울을 가리키지만

밖의 풍경은 아직도 가을의 기운을 품고 있습니다.

겨울도 어쩌지 못한 채,

가을이 마치 문지방에 한 발 걸치고 몽니를 부리고 있는 그냥 지켜볼 뿐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가을은 조금 더 미련을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차가운 눈꽃보다

따뜻한 단풍빛이 조금 더 오래 피어 있어 준다면,

올해의 마지막 달은 더 부드럽고 더 온화한 얼굴로 흐르지 않을까.


12월 내내

겨울의 흰 그림자보다

가을의 붉은 숨결이 살아 있었으면,

가끔은 계절도 우리 마음처럼

머뭇머뭇 머무르고 미련 한껏 부려줬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12월이 11월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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