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남자가 무리하게 뛰다 넘어진 사고를 목격했다.
비상스위치를 눌러준 누군가 덕분에 큰 사고는 피했지만,
그 순간의 아찔함은 내게 오래 남았다.
사고는 한 사람의 실수로 끝났지만,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불안과 혼란, 그리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남겼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바쁘지 않은데도, 에스컬레이터만 오르면
왠지 모르게 걷기의 본능에 빠져든다.
오른쪽에 서있지 못하고
걸음이 빨라지는 내 모습에 가끔 놀라기도 했다.
왼쪽 줄에 멈춰 서 있는 사람을 보면
‘왜 안 가고 서있지’ 하고 속으로 비난하던 나 또한 그 문화의 일부였다.
언제부터 우리는
‘걷지 말라’는 기본 안전수칙보다
‘왼쪽은 비켜줘야 한다’는 규칙 아닌 규칙을 더 우선하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한때 ‘한 줄 서기’ 문화가 있었다.
왼쪽은 급한 사람의 통로, 오른쪽은 서서 가는 줄로, 이것은 ‘매너’로 포장되어 빠르게 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정작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거나 뛰지 않는 것이, 원래의 정석은 두 줄로 서서 손잡이를 잡는 것이 전 세계적 안전원칙이다.
하지만 우리는 ‘속도’를 우선했고,
결국 안전보다 매너가 더 강한 규범이 되어버렸다.
정부와 지자체 역시 “걷지 말라”라고 권고는 하지만, 그저 권고일 뿐이고,
법적 처벌이나 강제 규정이 없어
현장의 혼란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애매함은 늘 가장 위험한 행동을 불러온다.
나는 출근길 사고를 보고 “다신 걷지 않겠다”라고 다짐했지만
퇴근길의 나는 또 바삐 걷고 있었다.
습관은 이렇게 무섭다.
몸에 밴 익숙함은 더 무섭다.
그래서 생각했다.
'개인의 선의나 매너에만 의존해서는 안전을 지킬 수 없다'라고.
'이제는 더욱 명확하고 강력한 제도가 필요해야겠다'라고.
걷지 않기, 두 줄 서기, 손잡이 잡기.
이 단순한 원칙들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부탁드립니다”가 아니라
분명한 기준과 책임 있는 관리가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
강제 규정은 불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공동 안전망이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질수록
개인의 자유와 속도보다
공동체의 안전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에스컬레이터 위의 혼란은
우리가 가진 안전불감증의 축소판이다.
이번 사고가 단순한 우연한 사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마지막 사고가 되기를 바랐다.
누구나 급한 길 위에 서 있지만
한 걸음 멈출 줄 아는 여유,
그리고 그 여유를 지켜주는 사회적 제도가 마련될 때, 우리의 일상은 더욱 안전하고 성숙한 문화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