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이라면,
반짝임만으로 환영받는 도시에는 내리지 않으리라.
인파의 발길에 밟히고,
자동차에 바퀴에 치이고,
염화칼슘에 녹아내리고,
쓰레기 더미 위에서 더럽혀질 내 운명을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도시의 눈은 순백으로 태어나
순식간에 짓밟혀 사라진다.
사람들은 환호하지만 금세 성가셔한다
차바퀴는 나를 귀찮아하고
속도, 효율,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에서
나는 그저 장애물일 뿐이니
그곳에는 머물지 않으리다.
내가 눈(雪)이라면
시골에 내리리라.
바람이 먼저 쓸어낸 들판,
벌거벗은 나무들이 겨울이야기 나누며 서 있는 산자락,
사람의 발길이 끊긴 오래된 신작로 위로
가만히, 그리고 수북이 내려 쌓이리라.
그곳에서는 누구도 나를 쓸어내지 않으며.
나의 흰빛을 누군가는 풍경이라 부르고,
나의 고요를 누군가는 위로라 여긴다.
나는 그 순간,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영혼이 맑은 나그네 하나
그 들판을 찾아온다면
나는 그의 눈(眼)에 머물고,
그의 발자국에 내 몸을 내어주리라.
그 한 걸음이 나를 존재하게 하리니,
나는 지워지는 흔적이 아니라
그에게 기억으로 남는 눈이 되리라.
나는 그렇게 존재하고 싶다
사람들에게 치워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발자국을 만들어주는
그에게 의미를 새겨주는 눈이고 싶다.
내가 눈이라면
그저 백색의 물질로 사라지지 않으리라.
누군가에게 스며들어
그의 길 위에, 그의 기억 속에,
작지만 소중한 한 조각의 겨울로 남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