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린 눈은 도시를 하얀 장식품처럼 덮어놓았습니다.
이른 아침 창가에 서면 마음이 먼저 반짝입니다.
세상이 잠시 더 깨끗해진 듯, 사람들의 발자국조차 그림처럼 남아있으니까요.
눈은 늘 그런 설렘을 데려옵니다.
어릴 적 눈싸움의 추억, 첫사랑과 함께 걷던 눈길의 온기,
겨울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기분.
그 순간만큼은 누구나 아이가 됩니다.
그러나 그 낭만의 막이 걷히면, 눈은 또 다른 얼굴을 내밉니다.
쌓인 눈은 치웠지만 바닥은 꽝꽝 얼어 살얼음판.
운동화를 신고 조심조심 내려가던 길,
바로 앞에서 아가씨 한 명이 꽈당—
엉덩방아를 찍고 맙니다.
일어나려다 또 미끄러지는 모습이 안쓰럽고도 어찌 보면 우습고…
웃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억지로 삼켰습니다.
그녀는 길가에 앉아 고개를 파묻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픈 것보다 무너진 체면이 더 아플 테지요.
조심스레 내려가다 보니 다른 사람도 미끄러져 넘어집니다.
밤새 제설은 됐지만 염화칼슘조차 힘을 잃은 반들반들한 길 위에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걸음을 내딛는 발바닥마저 긴장으로 간질간질해집니다.
겨우 평지에 도착해 뒤돌아보니
아까 넘어진 아가씨가 아직도 앉아 있습니다.
크게 다치지 않았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안도의 숨을 보냅니다.
눈은 내릴 때 사람들의 감성을 흔듭니다.
그러나 내리고 난 뒤에는 걱정, 불편, 그리고 작은 사고들까지도 가져옵니다.
낭만과 불편이 하나의 풍경 속에서 공존하는 계절, 겨울.
눈의 두 얼굴이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와 닮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위험과 함께 오고,
기쁨은 늘 책임을 동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눈이 내리면 창문을 열어 바라보고,
하얀 세상 앞에서 마음이 기댑니다.
넘어지는 사람을 보며 걱정하면서도,
다음 눈을 은근히 기다리는 우리들—
눈의 두 얼굴은 사실 우리의 두 마음을 비추는 거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내릴 때도, 녹을 때도
눈은 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오늘 그 하얀 이야기 속에
누군가의 아픔과 우리의 따뜻한 걱정이 함께 쌓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