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에서 일어난 해프닝

by 비움과 채움


가끔 동네 사우나 찜질방을 찾는다.

때도 밀고, 이곳저곳 마련된 찜질방에 몸을 누이며 몸에 쌓인 노폐물을 청소하기 위해서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카운터 직원의 손놀림이 유난히 바쁘다.

이마 주인장의 입은 귀에 걸릴 듯.


키와 찜질복을 받아 들고 입장하자마자 사람들로 가득한 북새통이 펼쳐진다.

주변의 오래된 목욕탕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요즘,

그래도 이곳만은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고마울 뿐이다.


탈의를 하고 목욕탕 문을 열자

뽀얗게 김이 서린 공간 너머로 탕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탕 안에는 목만 내밀고 온욕에 빠진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아빠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

근육이 처지고 등이 굽은 노인들,

문신을 한 건장한 젊은이들,

그리고 이런저런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한국 목욕문화의 한 단면을 완성하고 있다.


습식·건식 사우나를 들락거리는 사람들,

세신장에서 분주하게 때를 미는 목욕관리사,

샤워기를 틀어놓고 구석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

앉은뱅이 의자에 걸터앉아 이태리타월로 때를 문지르는 사람들까지 그야말로 정겨운 목욕탕 풍경이다.


샤워를 마치고 습식 사우나를 넘나 들면서 한껏 땀을 빼고,

다시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니

열기가 세포 깊숙이 스며드는 듯한 기분에 빠지니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때를 밀고, 각질까지 벗겨내고,

찜질복으로 갈아입은 뒤 찜질방으로 들어가니

이곳 역시 북적북적하다.


부모 손에 이끌려온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크게 틀어놓은 TV에서는 노래대항전이 한창이다.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가 진동하고,

마사지기를 이용하는 사람들, 게임기에 빠진 아이들,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수다의 소음공해를 유발하는 아줌마 무리까지.

삶의 단면들이 찜질방 곳곳에서 너울거린다.


앞서 입장한 이들이 이미 명당자리는 다 차지한 터라, 남탕과 연결된 출입구 쪽 한편에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매점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돌아오던 그 순간

찜질방문을 열고 들어선 노인을 발견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완전 나체’로 찜질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주변에서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노인은 놀란 기색조차 없이

구부정한 허리로 서서 “탕은 어디 쪽에…” 하고 중얼거렸다.


순간

난 황급히 달려가 노인의 몸을 가로막고

급히 탈의실로 끌고 들어갔다.

“할아버지, 거긴 찜질방이에요! 찜질복 입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에요!”

“뭐요? 찜질방? 난 그 안에 목욕탕 있는 줄 알았지뮈요…”

노인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이 소동을 들은 사람들은 주위로 몰려들었다.

“어르신, 뉴스에 나올 뻔했네요!”

“할아버지, 일부러 그러신 거 아니시죠?”

농담 섞인 말들이 터지며 일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잠시 뒤, 지배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손님 중 누간가 112에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난감했다.


노인이 일부러 그랬을 리 만무하고,

잠시 판단이 흐릿한 상태에서 생긴 단순한 실수였음이 명백한데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신고부터 넣었다니,

세상이 참 각박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경찰관이 출동했다.

노인을 불러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목격자가 있느냐며 주위를 둘러보기에

내가 나섰다.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히 설명했고

경찰은 끄덕였다.

경찰들은 노인의 인적사항을 적고 간단한 조서를 작성한 후 돌아갔다.

“어르신, 내일 꼭 전화받으세요.”

경찰의 한 마디가 어딘가 씁쓸하게 들렸다.


사우나장을 나서며 카운터에 들러 당부했다.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절대 고의가 아니고, 그냥 실수로 잘못 들어온 겁니다.

혹시 경찰에서 조사 나오면 그렇게 잘 얘기해 주세요.”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을 올라오며 문득

뒷맛이 씁쓸하게 남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들면,

순간의 착오가 잦아질 수도 있다.


그 작은 실수 하나를

세상은 왜 이렇게도 빠르게

죄의 색깔로 덧칠하려 하는 걸까.


뜨거운 탕 안에서 잠시나마 몸이 녹았던 것과 달리,

밖으로 나오는 내 마음은

어쩐지 하늘 하게 식어 차갑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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