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은 보물창고

by 비움과 채움


친구의 가게는 서울 풍물시장 근처에 있다.

친구를 만나러 갈 때는 사람들이 흔히 도깨비시장 또는 벼룩시장이라 부르는 이 일대를 지나간다.

이름처럼 시장은 예고 없이 펼쳐지고,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으며,

순간의 눈길과 선택이 인연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노점 위에는 세월이 한꺼번에 쏟아져 있다.

낡은 라디오와 축음기, 긁힌 LP판,

빛이 바랜 흑백사진과 누군가의 필기가 남은 헌 책,

손때 묻은 공구와 중고 가구,

한 시대를 통과해 온 군용품과 주방용품들까지.

한때는 누군가의 일상이었고,

지금은 역할을 내려놓은 물건들이

다시 불려 나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내가 버렸던 물건들 또한

이곳 어딘가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내겐 쓸모없어졌던 물건이

누군가에겐 여전히 필요한 물건일 수 있다는 사실.

무용지물처럼 보였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유용지용으로 다시 숨을 쉰다.

벼룩시장은 ‘버림’의 종착지가 아니라

‘재발견’의 출발점이다.


눈이 닿는 곳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유행이 지나간 디자인,

시간에 닳아 반질해진 손잡이,

말없이 이야기를 품은 물건들.

이 시장은 물건을 고르는 곳이 아니라

사연을 만나는 곳에 가깝다.


70~80년대,

이 일대는 골동품 상점들이 밀집해 전성기를 누렸던 곳이다.

그 시절의 기운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앤티크 한 상점들의 표정 속에 남아 있다.

과거의 물건들이 현재의 취향과 만나

새로운 쓰임을 얻는 풍경은

이 시장이 단순한 중고시장이 아님을 증명한다.

벼룩시장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다.


사람들의 얼굴도 다채롭다.

학생들, 젊은 연인들,

공간을 꾸미려는 사람들,

빈티지를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이국의 언어를 쓰는 외국인들까지.

누군가는 희귀한 물건을 찾고,

누군가는 이곳의 공기를 즐긴다.

어깨가 스칠 만큼 붐비는 골목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고른다.


친구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벼룩시장은 보물찾기 명소라고.

수많은 물건들 사이에서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는 곳이라고.

정해진 답은 없고,

보물은 늘 우연처럼 나타난다고.


커다란 뻥튀기 한 봉지를 들고

친구 가게의 문을 열었을 때,

처음 보는 도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벼룩시장에서 건져 올린 보물이라 했다.

값이나 희소성보다

먼저 눈길을 붙잡는 존재감,

보기만 해도 보물스러웠다.


벼룩시장은

과거를 박제해 두는 곳이 아니다.

과거를 현재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장소다.

물건은 오래되었지만

이야기는 계속 만들어지고,

취향은 새 주인을 기다린다.


그래서 이 시장은 늘 현재형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자신도 몰랐던 기억과 마주하고,

자신만의 보물을 만나기 위해

벼룩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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