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그릇

by 비움과 채움

엊그제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주 한 잔 하자.”

목소리가 평소보다 무거웠다.


선배는 마음이 답답할 때 술잔을 앞에 두고 속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었다.

약속 장소에 가보니 한 분이 더 와 있었다.

선배의 고향 친구란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자란 깨복쟁이 친구라고 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내가 물었다.

“선배님,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배의 이야기가 풀려 나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두 사람의 길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선배는 집안 형편이 넉넉해 서울의 대학에 진학을 했고 어려움 없이 공부했단다.

그러나 친구는 대학에 갈 형편이 되지 못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단다.


세월이 흐르며 두 사람의 삶의 모습도 달라졌다고.

친구는 군 제대 후 일찍 결혼해 딸을 낳았고,

선배는 무역회사에 취직해 해외 근무를 오가며 바쁘게 살다가 결혼을 했고 역시 딸을 낳았다고 한다.


자식들의 삶도 다른 길을 걸었다고.


친구의 딸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은행에 취직했을 했고,

직장 동료와 결혼을 하여 두 아이를 낳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한다.


선배의 딸은 넉넉한 환경 속에서 사립학교를 다녔고 음악에 재능이 있다 하여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배웠고, 소질을 인정받아 원하던 예고에 진학을 했고, 대학은 음대에 들어갔고, 재학 중 유학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선배의 삶도 흔들렸다고.

프랑스로 유학을 보내느라 집까지 팔았다며,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밀알이 되는데 대해 열심히 뒷바라지를 했었다고.


하지만 유학이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귀국을 권했고, 그 과정에서 아내와의 갈등도 깊어졌단다.

결국 딸은 귀국했지만 그때부터 딸과의 관계도 조금씩 멀어졌다고.


어느 날 딸과 마주 앉은자리에서 선배가 물었단다.

“넌 언제 결혼할 거니?”


딸은 단호하게

“아빠, 저는 이미 첼로와 결혼했어요.”


선배는 그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고 했다.

결혼을 안 하고 살겠다는 말로 들렸다고.


현재 딸은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개인연주도 하고 합동무대에도 선다고 한다.

하지만 예술가의 삶은 넉넉하지 않은지?

씀씀이가 큰 딸은 무대 의상비와 활동비 등으로 받는 페이로는 늘 부족했고, 결국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선배 부부는 연금으로 사는데

그 연금마저 딸의 생활비로 들어가는 날이 많다고 했다.


선배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요즘 공원에 가면 손주 손 잡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


그리고 친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성공한 인생이다. 네가 행복해, 네가 부럽다.”


친구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난 아직도 딸을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게 가슴에 못이 박힌 듯 늘 아프다. 넌 네 딸을 원 없이 공부시키고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 줬잖니.”


두 사람의 말이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


한 사람은 가난해서 딸을 대학에 보내지 못했지만 그의 딸은 일찍 사회생활을 했고 가정도 일찍 꾸려 손주를 둘씩이나 안겨주었고,


한 사람은 딸을 최고로 공부시켰다.

그러나 그 딸은 아직도 부모의 품을 떠나지 못하고 의존하고 제 앞가림도 못하고 있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앉아 조용히 생각했다.


행복은 무엇일까

성공한 자식일까

안정된 가정일까


어쩌면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손주 손을 잡고 공원을 걷는 저녁,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는 자식, 자식에게 원망을 품지 않는 부모.


그 평범한 순간들이

사람이 평생 찾는 행복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그날 술자리에서 나는 깨달았다.


행복이란

성공의 크기로 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자리의 평온함으로 채워지는

보이지 않는 그릇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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