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모바일 청첩장

by 비움과 채움

스마트폰으로 친구 아들의 결혼 소식을 받았다.

문자나 전화가 아닌 모바일 청첩장이었다.


청첩장을 열자마자 음악과 함께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사람, 그 사람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합니다.”


어릴 적 동네 골목을 뛰어다니던 모습만 떠오르던 아이가

어느새 턱시도를 차려입은 신랑이 되어 있었다.

옆에는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서 있었다.


사진은 자동으로 넘어가고

영상이 흐르고

예식일까지 남은 시간이

며칠 몇 시간 몇 분 몇 초로 카운트되고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짧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예전 우리의 청첩장은 이와 달랐다.

인쇄소에 의뢰해 종이 청첩장을 만들고

봉투에 넣어 친지와 지인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건넸다.


청첩장을 전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었고

관계의 예의였다.


하지만 지금은

카카오톡이나 문자 메시지로

영상과 사진, 예식장 위치 지도까지

한 번에 전달된다.

경제적이고 환경 친화적이며

디자인도 훨씬 세련됐다.


특히 무빙 포토나

AI 기술이 적용된 영상은

청첩장을 하나의 디지털 콘텐츠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여기까지는

시대가 변했구나 싶어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청첩장을 끝까지 내려보다가

나는 잠시 멈칫했다.


축의금 안내였다.

계좌번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카오페이 결제 버튼이 함께 연결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예식장에 와서 축의금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모바일로 바로 송금해 달라는 구조였다.

이 장면에서

묘한 씁쓸함이 올라왔다.


우리 세대에게

축의금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예식장에 가서

신랑이나 부모에게 손을 잡고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건네며

봉투를 건네는 행위가 관례였다.

그 안에는

관계와 정성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과정이

스마트폰 화면 안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누군가 예전에 이런 말을 했다.

“요즘은 결혼식장에 오는 것보다

통장으로 축의금을 보내주는 걸

더 좋아한다더라.”

식사비를 정산하고 보면

축의금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덧붙였다.


그때는

그 말을 흘려 들었는데

오늘 그 말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온라인 송금이 더 실리적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교통비도 들지 않고

시간도 들지 않는다.

예식장도 복잡하지 않을 테니깐.

신랑신부 입장에서도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어떤 관습의 균열이 느껴졌다.

결혼식이라는 의식이

사람들이 모여 축하하는 공동체의 행사에서

점점 이해타산만 따지는

금전적 이해타산이 계산된

디지털 절차로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기획은

과연 누가 만든 것일까.

친구의 생각이었을까.

아들의 아이디어였을까.

아니면 시대가 만들어 낸 변화일까.


모바일 청첩장을 다시 바라보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예식장에 가야 할까,

아니면 모바일로 축의금을 보내야 할까.


아마도 이 고민 자체는

지금 우리가 겪고 안고 가야 하는

세대 전환의 풍경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예식장엘 가서 축하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예식날을 달력에 동그라미 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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