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그 경력의 단절과 국민의 의무 사이.
미국의 영웅 베이브 루스가 말한다. "전장에 나간 모든 병사들이 영웅이다. 그들에 의해 우리의 깃발이 퍽럴일 수 있다. 그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어 우리가 이 자리에 있다. " 의역? 하면 이런 뉘앙스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폭격했다. 태평양 전쟁의 시작이었다. 미국은 대공황(1932~1939)을 막 벗어나고 있었다. 미국 의회는 3일 뒤 전쟁을 선포했다. 국가적 혼란이 찾아왔다. 국민 모두의 일상, 메이저리그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당시 커미셔너 케네소 랜디스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메이저리그의 진행 여부를 묻는 서신을 보냈다. 대통령이 답했다. "어려울 수록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장치가 필요하다. 메이저리그가 우리에게 그 기능을 해 주고 있다. 야구는 계속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컨티뉴!" 라고 도장을 찍어 주었다.
대통령이 야구는 계속된다고 했고 그들의 직업이 야구지만, 누군가는 어떤 선택을 통해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준다. 가지 않아도 되는 험한 길을 자처하는 인물이다. 그런 '선뜻 나섬'을 통해 자신이 속한 곳의 품격을 세워주는 행동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선수가 행크 그린버그- 밥 펠러-테드 윌리엄스다.
1935년, 1940년 AL MVP 행크 그린버그(사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메이저리거 가운데 가장 먼저 자원입대한다. 30년대 베이브 루스, 조 디마지오, 루 게릭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적인 강타자다. 그는 이미 1년의 복무를 마치고 12월 5일 명예 제대 했으나 일본의 공격 소식을 듣고 육군 항공대로 다시 입대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동안 중국-버마-인도에서 복무했다. 그린버그는 1941년부터 전쟁이 끝나는 1945년 여름까지 군 복무를 했고 7월에 타이거스에 돌아왔다. 그리고 1947년말 은퇴했다. 그는 1956뇬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1983년 그의 등번호 5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22살의 혈기 왕성한 나이, 그 시즌에 25승을 거둔 투수가 전쟁 소식에 유니폼 대신 입대를 택했다. 아마 지금 우리 야구선수들은 상상하기 힘든 가치관이라고 할지 모른다. 밥 펠러가 그랬다. 꿈의 구장의 무대 아이오아 옥수수밭 출신의 펠러는 17살때부터 메이저리그(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던졌다. 전쟁이 나던 그해 25승을 거뒀고 징집 대상자가 아니었는데도 자원입대했다. 그리고 4년동안 최전선에서 복무했다. 그는 전함 앨러배마호의 대공포 사수로서 마셜섬전투, 괌 상률작전에 도쿄 공습에서 참가했다. 그리고 1945년 8개의 무공훈장을 달고 제대했다. 펠러는 1956년 시즌 뒤 은퇴했고 그의 등번호 19번은 이듬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최초의 영구결번이 됐다. 펠러는 1962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마지막 4할타자(1946년) 테드 윌리엄스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윌리엄스는 타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전설적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1942년 자신의 나이 24세에 첫 입대한 뒤, 두 번에 걸쳐 5년이나 군 복무를 했다는 것은 그의 야구 기록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특히 두 번째 입대한 1952년에는 한국전쟁에 참가해 전투기를 몰고 평양을 공습비행에 나서기도 했다. 그 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대공포를 맞아 수원비행장에 동체착륙 한 뒤 별일 없다는 듯 툭툭 털고 나왔다는 얘기는 그의 또 다른 전설이다. 전성기 시절을 포함 5시즌을 군복무로 제대로 뛰지 못한 윌리엄스는 통산 0.344의 타율에 '그래도' 2,654 안타, 521홈런을 기록했다. 은퇴뒤 1966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고 1969년 워싱턴 세네터스의 감독을 맡아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화려한 야구 경력과 국가에 대한 공헌까지 훌륭한 시민으로 인정받은 윌리엄스는 친정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우승을 보지 못하고 2002년 세상을 떠났다.
윌리엄스의 타격 라이벌이자 뉴욕 양키스의 상징, 마릴린 먼로를 사랑한 낭만파 레전드 조 디마지오(사진) 역시 그 시기에 군 복무를 했다. 하지만 디마지오는 전투 일선에 나서기 보다는 사병들에게 야구를 알리고 보여주며 사기를 북돋우는 '위문 공연단' 형태의 사병이었다.
이 글에 등장한 메이저리거는 야구의 전설이다. 그들은 뛰어난 야구 기록만을 남긴 것이 아니라 본 받을 만한 행동을 통해 야구인이기 이전에 시민, 국민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더 존경하고 롤 모델로 삼는다. 사회를 인식하고, 국가를 존중하는 그들의 행동은 메이저리그를 더 훌륭하게 만들었다. 메이저리그는 야구의 무대가 아닌 인생의 무대가 됐다. 그 길을 따르는 요즘의 메이저리거는 야구의 메이저리거뿐 아니라 인생의 메이저리거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많은 야구팬,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 본다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그래서 나는 사회의 '본보기(example)' 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정서는 선순환하며 품위있는 리그를 만들고 야구의 품격을 끌어올린다.
대한민국의 야구선수들, 야구인들이 차별적으로 가져야 할 관점은 야구 기능에 대한 우월성으로 그 울타리를 만들고 살아남겠다는 이기적인 자세 이전에, '본보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타적인 태도다. 메이저리그를 그렇게 추앙한다면, 그 레전드들이 절박한 전쟁의 시대에 사회와 국가를 위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먼저 추앙해야 하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