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집 옆 1분 거리에 다양한 취미를 배울 수 있는 문화원이 있다.
집 뒤, 1분 거리에는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있고 도서관이 있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곳은 도서관이 전부다.
매주 남편의 도움을 받아 두 시간여 차를 타고 숲 행을 하지만 1분 거리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운동과 취미를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지척에 두고도 다니지 않은 이유는 심리적 이유가 크다.
산책을 하고 나서 아플 무릎이 걱정이 되었고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까지 해야만 한다는 강박도 한몫을 했다. 그러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건강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마음, 그 두려움이 1분 거리의 장벽이었다.
걱정과 두려움..
그것은 자꾸 나를 움츠려 들게 했고 눕게 했다.
용기를 내서 산책을 하면 어김없이 무릎이 아파오고 오래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는 일을 하면 시야가 흐려지고 몸 곳곳의 극심한 통증으로 학습된 나의 방어였다.
어제도 누워있고 오늘도 눕는다.
맑고 푸른 가을하늘과 선선해진 공기는 가을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느끼려는 찰나 몸 구석구석에서 탈을 내며 통증을 견디는 몸이 먼저 가을을 반긴다.
나를 움츠려 들게 하는 걱정과 두려움,
그 안에 나의 존재가치를 어떠한 성과로 가늠하려는 마음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이루지 못한 것들의 아쉬움이나 이루고 싶은 것들의 목표를 두고 망설이게 되는 두려움은 단지 마음이 만든 허상일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느리고 제한된 삶이지만 그 안에는 행복도 함께 공존한다.
나의 성과로 존재가치를 매기지 않는 것, 그 마음은 걱정과 두려움을 뒤로하고 앞으로 갈 수 있는 힘과 또 다른 도전 앞에 용기를 건넨다.
오늘 나는 1분 거리의 장벽을 넘어 요가를 신청했다.
그깟 운동하나 신청하는 게 무슨 대수겠냐만은 대수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중 나도 그렇다.
한때 인간이 노력해서 안 되는 게 없다라 생각하며 교만한 적이 있었다.
그러했던 나에게 하느님은 깊은 겸손을 알려주기 위해 인간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도 있음을 알려주었고 순리에 따르는 귀한 가르침도 주었다.
요가라는 사소한 것에도 나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욕심내지 않고 내게 주어진 역량만큼만 해내야 하는 삶의 지혜도 깨닫는다.
느리고 제한된 나의 삶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삶에도 필요한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요가 동작을 따라 한다.
펴지지 않는 무릎과 땅을 짚을 수 없는 손목으로도 요가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있음에 오늘도 내게 삶은 즐거움이 되고 감사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