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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보안관 Aug 12. 2020

별안간 집없는 거지가 되었다

폭주기관차에 탑승했을 때 벌어지는 일

내 나이 삼십대 중반, 정확히 서른넷.

2014년에 결혼을 했고, 허니문 베이비인 내 아이는 여섯살.

어지간히 꿀리지 않는(?) 동네에서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5년의 연애생활 마침표를 찍고, 결혼할 땐 양가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양가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말은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와 남편은 그런 상황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당시 우리 계산으로는 둘 연봉이면 어지간한 이 동네에서 6~7년 뒤 쯤엔 집을 살 수 있을거라 믿었다.


원래 신혼집은 내가 자취하던 넓은(?) 원룸에서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결혼을 앞둔 3개월 전쯤 우리집 공동복도에서 새벽에 남자들이 크게 시비가 붙는 일이 있었고, 그 일로 경찰까지 왔었다. 혼자사는 처녀가 새벽에 익명의 남자들의 싸움소리를 듣는 건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전세 만기가 한참 남았음에도 부랴부랴 아파트를 알아봤고,

우리동네 15평짜리 주공아파트를 1억 4천에 계약했다. 물론 은행의 힘을 입어.

그렇게 우리의 신혼은 시작됐다.


2016년,전세 만기가 다가왔고, 아이가 커가면서 자연스레 조금 더 넓은 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역에서는 조금 멀어졌지만, 아빠의 지인이었던 부동산아저씨 덕분에 쾌적한 동네의 복도식 20평 아파트 전세를 찾았었다. 그리고, 부동산아저씨는 우리에게 말했다.

"이거 오천만원만 더 주면 살 수 있는데, 안살거야?"

"네. 오천이 어디있어요 아저씨~ 조금 더 모아서 다음번에 사려구요."

"다음엔 더 올라서 못사. 지금 사야되는데. 내가 오천 빌려줄께. 지금 안사면 집 못사. 지금 사야되."

"에이. 아저씨한테 돈을 어떻게 빌려요. 그래도 남편하고 이야기는 해 볼께요."

돌이 갓 지난 딸아이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남편한테 부동산 아저씨의 이야기를 했다.

"여보, 부동산 아저씨가 오천 빌려준다고 지금 집 사야된다고 그러는데. 좀 사고 싶기도 하고. 어쩔까?"

"부동산에 오천을 빌린다고? 뭘믿고 빌려. 말도 안돼. 그리고 오천을 우리가 어떻게 갚아."

"그치? 아무래도 오천은 좀 무리겠지?. 그래 알았어."


그리고는 부동산아저씨의 엄청난 아쉬움을 뒤로한 채, 20평짜리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고, 2년 동안 부지런히 돈을 모으고 굴렸다. 공교롭게 나와 비슷한 시점에 신혼생활을 시작한 내 친구는 금수저와 결혼한 덕분에 같은해 3억3천짜리 아파트에서 대출을 왕창끼고 5억 7천짜리 아파트를 샀었다.

'그때만 해도' 친구와 나는 시작이 다를뿐이라 생각했고,  '나도 천천히 내집마련을 할 수 있을거야'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우리 집없어서 어쩌지? 라는 생각보다는 '곧 집을 살거니까 머리를 더 잘굴려보자.' 라는 생각이 컸었다.


2018년으로 들어설 때 즈음, 회사 여기저기에서 갭투자를 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 남편이 돈과 투자에 막 눈을 뜨기 시작한 상태였고, 우리는 돈을 다른 곳에서 굴리는(?) 중이라 갭투자할 만한 종잣돈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때만해도 부동산이 이렇게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아 서열화될 줄은 몰랐다.

옆집 아줌마가 주식 이야기 하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와야 할 때라고 했던가.

너도나도 갭투자에 재미를 볼 무렵, 정부에서 '부동산 투기꾼'을 때려잡겠다며 강력한 정책을 발표했다.

내가 살던 지역은 주택담보대출이 단박에 기존 매매가 대비 80%의 대출비율에서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우린 점점 초조해졌다.

그리고 우리의 초조한 마음은 부동산 시장가격에 그대로 반영되어 하루가 멀다하고 우상향 그래프를 만들었다.

집값이 계속 오르고, 대출금은 줄어들어 집을 사기가 계속 어려워지는 상황이 벌어지니

처음으로 우리가족의 어두운 미래가 그려졌다.

"우리 이러다 집 못사는거 아니야?"

"이제 집사기는 글렀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2020년이 된 지금, 내가 3억에 살 수 있었던 우리 아파트의 20평짜리 물건은 정확히 두배를 넘겨, 6억 3천이 되었다. 그리고 내친구네 아파트는 실거래가가 12억을 넘었다.

 게다가 요즘은 소위 '패닉바잉'중이라 안그래도 없는 물건이 나오면 족족 팔리고, 이 때문에 인테리어 업자들이 2월까지 공사가 잡혀있다는 말도 들린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까지 오게됐을까.


1. 돈을 몰랐던 우리를 탓해야지뭐.  

정부의 정책은 그렇다치더라도, 양가 부모님께서 재산증식에는 거리가 먼 삶을 사신 분들이라 우리도 투자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년전쯤부터 투자를 하기 시작한 우리는 그게 조금만 더 빨랐어야 했는데. 라며 요즘 웃픈 건배를 한다.  


2. 그래도 부동산 정책은 너무하는거 아니야.

아무리 소시민이 투자를 몰랐다기로 할지어늘, 이삼년만에 집값이 두배가 되는 건 소시민의 '정서불안'에 안성맞춤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어떤 프레임을 갖고 움직인다.

가령, 보수쪽은 '시장경제'를 표방하고, 진보쪽은 '정의와 평등'을 표방하는 식이다.

보수가 정권을 두번이나 잡았을 무렵, 전세계사에 치명적인 아픔으로 기록될 '세월호 사건'이 벌어졌고, 이후 대통령의 분야별 불공정 비위가 맞물려 대통령은 탄핵됐다.

헌정사상 처음있는 일이었고, 정세는 극도의 불안감에 빠졌다.

국민들은 안정적이고 공정한 사회를 염원했고, '정의로운 나라'를 외치며 이번 정권이 등장했다.


'정의로운 나라'라는 프레임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사상을 조종할 수 있는 강력한 사회구도가 필요했고, 그 강력한 사회구도는 '가진자'와 '못가진자'로 표현됐다.

나는 처음부터 '가진 자'도 '못가진 자'도 아닌, '가지려는 자'였다.

이만한 노력을 해서 치열한 경쟁끝에 안정적인(?)삶에 안착했다고 생각했고,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별안간 '정의로운 나라'를 위해 '가지려는 자'였던 나는 '못가진 자'로 강제 분류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살 수 있었는데, '집없는 거지'가 됐고,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도 없어졌다.

정부는 집도 희망도 없는 '거지'인 너희를 위해 임대주택을 많이 늘려주겠다고 한다.  

나는 애초에 임대주택에 들어갈 마음도 없었고, 우리동네는 심지어 임대주택 공급 예정지도 아닌데 말이다.


폭주기관차에 탑승했을 때 벌어지는 일

적어도 내가 살면서, 이번 정부는 등장때부터 유래없는 환영을 받았다.

10년동안 해먹었던 전 정권을 제대로 날려주리라는 기대감과 정권이 표방하는 '정의사회'구현이 목전에 왔다는 설렘에서다.

그래서 이번 정권은 시작부터 잘나가는 기관차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역시 경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잘나가는 기관차'를 그저 믿으며  초기 부동산 정책은 (아무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적절한 효과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마 정부도 그랬겠지.)


하지만 전 대통령과 그 이전 대통령까지 감방에 집어넣으면서 환호하는 대중들을 보며 '잘나가는 기관차'는 탄력받았고, 급기야 앞만보며 돌진하는 폭주기관차가 돼버렸다.

반대정권 출신의 대통령 2명을 감방에 넣은 현 정권의 결말은 무엇일까.

내가 가진 생각의 한계로는 연임 또는 정치 사망선고. 양자택일이다.

그럼 사람인 이상 목표는 연임일테고, 연임을 위해서는 '가진 자'를 더욱 더 맹비난하고, '가지려는 자'는 줄어들어야 한다.


부국강대를 위해서는 '가진 자'가 무엇을 어떻게 가졌고, '갖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 사회적인 공론이 형성되야 한다. 그래야 가진자가 많아지는 부유한 나라가 될테니까.

그렇지만, '가진 자와 가지려는 자'가 많아질수록 비난해야할 덩어리가 커지니 힘에 부치고, '못 가진 자'에게는 조금만 나누어줘도 '고맙다'며 환호하는 절호의 찬스를 왜하필 이번 정권에서 놓치고 싶겠는가.


그래서 어느 시점에선가부터 '투기수요 근절'과 '주택시장 안정화'라는 본래의 목적은 '연임'으로 대체되었고, 대체된 목적을 위해 폭주기관차는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바로잡자니 엄두도 안나고, 바로잡을 수도 없는 채로.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고, 이런 패러다임이 이번 정부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모든 정권이 늘 그랬던 것처럼,

 '연임'을 위해 정권 말미에는 각종 규제가 어느정도 완화될 것이고,

국민들 역시 매 번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나라를 기대하며 매력적인 마케팅에 휩쓸려 소중한 한표를 행사할 것이다.

표에 대한 대가는 정권 깊숙히 들어가봐야 비로소 가시화 될 것이고...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삼십대가 되어 부동산을 비롯한 수많은 정책으로 피해와 이익(?)을 반복해서 맛보며 살아가는 요즘.

민주적인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온 몸으로 깨닫고 있다.


비록, 별안간 집없는 거지가 되기는 했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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