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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당현경 Jun 12. 2021

셋째가 만삭인 나는 교자상을 폈다

마음이 있다면 이미 준비 완료

 “아직도 자리 없어요?”   

 벌써 세 번째 걸려온 전화이다. 어느새 나는 10년 차 논술 선생님이 되었다.  

  그해 12월의 겨울은 매우 추웠다. 강의실에는 정장 차림의 수강생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가운데 만삭의 배에 커다란 티셔츠를 걸치고 임산부 청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한껏 멋을 낸 선생님들이 커리우먼처럼 보여서 부러운 눈으로 한참을 바라본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뿐인가? ‘엄마~시져 시져’하면서 강의실 문을 두드리는 3세 아들까지......  

 당시 여성문화센터에서 독서논술 지도 강의를 들었다. 막내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독서지도사 공부를 한다고 등록을 한 것이다. 첫째와 둘째 때는 입덧이 심해서 방에만 누워있었던 경험이 있기에 나에게는 큰 용기이며 도전이었다. 당시 5세였던 큰 아이는 유치원에 갔고, 3세였던 둘째가 문제였다. 그래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임산부가 유모차를 끌고 문화센터에 출근을 하다시피 다니기 시작했다. 문화센터 놀이방에 아들을 맡기고 수업을 듣고 있으면 아들의 울음소리가 한참 들리곤 했다. 어쩔 때는 하도 울어서 놀이방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강의실로 데리고 오시기도 했다. 아이의 우는 소리는 멀리서도 알아채는 것이 엄마 아닌가? 그럴 때마다 마음도 얼마나 아프던지.  

 그렇게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자마자 우리 집 가장 작은 방에 교자상 하나를 폈다. 독서지도사 수업을 소개해 준 동네 언니의 4학년 아들이 첫 제자였다. 그리고 그 단짝 친구와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두 아이를 지도하기 위해서 일 년의 계획표를 짜고 교재를 알아보고 수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막내를 출산하게 되었다.  
  
 막내를 출산하고 딱 한 달이 되어서 위기가 찾아왔다. 신생아를 봐줄 사람이 없는데 수업을 해야 하니 말이다. 친정 엄마는 시골에 계셔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신생아가 있어도 6세, 4세가 된 두 아이가 있으니 산후조리도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다.  
  “선생님, 저희가 돌아가면서 아기 봐드릴게요”  
어머나! 그 무렵 5학년이 된 3명의 어머님들께서 먼저 말씀을 해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작은 방에서 교자상에 세 아이를 두고 열강을 했고, 어머님들은 돌아가면서 막내를 봐주셨다.  
신생아인 아기가 울면 우유를 타 주시고 기저귀도 갈아주시면서...... 그렇게 두 달을 매주 봐주셨다.  
  
 10년 전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이자 만삭인 내가 교자상 하나를 펴고 수업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상상이 될 것이다.
 “안정적인 회사원인 남편이 있는데 왜 힘들게 살려고 해?”라며 걱정하시는  친정 부모님.  
 “ 아이들 잘 키우는 게 도와주는 거야”라는 남편.  
 “어머. 생각한 것보다 너무 젊으시네요”라고 상담 오신 어머님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의 만삭인 나는 10년 뒤에, 딱 50배가 성장한 논술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결심을 했을 때의 환경이 좋지 않았다. 또 시작하기에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과연 아이를 보낼까? 하는 생각에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 마음은 어떤 시작을 하기 전에 드는 생각일 것이다. 비록 두렵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일단 행동으로 옮겨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과 행동을 하는 것은 참으로 다르니까. 행동을 하는 순간, 우리가 고민하던 것들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주변에 전달이 되어 오히려 엉킨 실이 술술 풀리듯 풀리기도 한다.  

 독서 지도 강의를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말이 ‘아직 준비가 안 되어서 더 배우고 시작할게요’이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이미 준비는 된 것이다. 그리고 경험에서 얻는 실패와 성공이 실력이 될 것이다.  


 혹시 지금 하고 싶은데 ‘과연 될까? 난 못하겠지’라고 생각이 든다면? 모두 안 될 거라고 말하는 상황이라면?  
 일단 뭐라도 시작해 보자. 10년 뒤에는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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