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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지 Nov 16. 2023

구미호를 동경하는 토끼로 태어난 너에게,

우리 그저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언니,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 입장에선 내가 편의점 알바도 못하는 게 답답하겠지. 내가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 그렇지만, 나는 이제 내가 나를 알게 됐어. 내 깜냥이 아닌 일은, 나를 스스로 괴롭히는 일은 손도 대지 말아야 한다는 걸. 내가 진짜 많이 아프고 나서 깨달은 거야"


부끄러웠다.


네 시간 동안의 시범 알바를 마치고 통화하는 너의 목소리는 한결 경쾌했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는 그래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동생이 그 기회를 잡았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돌아오는 답은 "간만에 정말 좋은 경험이었고, 그냥 안 하기로 했어."였다.


순간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대답에 너무 화가 났다. 아니 이렇게 좋은 기회인데 일주일에 한 번 딱 6시간 하는 거고, 마침 집 근처 편의점인데 왜?? 요지는 편의점이 생각보다 컸고, 밖에 사람들이 술을 마실 수 있게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데, 자기는 그런 사람들을 상대할 만큼 깜냥이 안 돼서 괜히 욕심을 부려서 했다가 피해주기 싫다는 것이었다. 또 마침 자기가 고대 세종 캠퍼스 졸업했다고 말했을 때, 사장님은 안암 캠퍼스인데도 불구하고 동문이라고 했다며 더더욱 자기가 괜히 일을 망쳐서 학교 먹칠 하기 싫다고 했다. 그 대답을 듣고도, 나는 편의점 알바 자리를 가지고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속상해서, 눈이 건조한지 습관적으로 깜빡 거리는 동생한테 바보같이 보이니까 건조하면 안약을 넣던지 하라고.. 괜한 화풀이를 빽- 하고 전화를 끊은 터였다. 최악이다 정말. 그러고 나서 문자로, 언니가 속상해서 그랬어. 그렇게 못 되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문자를 한 참에, 법륜스님의 말씀이 적힌 그림 파일과 함께 저렇게 답장을 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말을 외모가 특출하게 예쁘다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 아름 이라는 명사의 어원은 15세기 석보상절에 보면 '나(私)'라는 뜻으로 쓰여있다고 한다. 즉 최고로 아름답다는 말은, 최고로 나답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답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다운 게 뭔데! 하고 반항하는 사춘기 학생들의 혼란스러움 만큼이나, 우리는 무엇이 나답다는 건지 잘 모른다. 거기에 대해 내가 경험한 바를 토대로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내가 만약, 내일 죽는다고 했을 때 오늘 내가 참고 있는 고통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 대답이 No 라면, 그건 나다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당장 그만두어야 하는 일이다. 그만두고 나서,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일을 환경을 찾는 것이 내 삶에 대한 내 책임이다.


그동안의 삶을 살면서, 나를 움직이게 했던 것은 "내가 간절히 되고 싶은 모습 (Why)"이었다. 나는 글로벌 인재,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었다. 왜냐고? 나는 글로벌 인재가 되어서 내가 어느 조직에서 일하든 내 말, 행동에 힘이 실리고 어떠한 부당함도, 누군가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내 삶의 주체가 나인 게 당연한 소신에 대가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이태원 클래스에 나오는 복수, 그 후에 대한 원하는 삶의 이야기인데, 난 꼭 그렇게 살고 싶다.) 나는 일찍이 그것이 한국 사회의 조직 문화, 경제, 인구 구조, 시장 규모에선 이루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글로벌 인재가 되는 데 있어 그나마 더 기회가 있어 보이는, 1인당 국민소득이 높고 여자들이 일하기에 안전한 싱가폴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까지,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설령 내가 내일 죽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오늘을 후회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끔 나에게 어떻게 조건에 휘둘리지 않는 당당함과 자존감을 가질 수 있냐고 묻는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인생을 살고 있고, 살았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었다. 가진 건 쥐뿔도 없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욕망하는 내 모습에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솔직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내 한 몸 부서져라 일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누가 너처럼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걸 알아줄 거 같냐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지만, 그건 오롯이 내가 나에게 떳떳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나에게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에 다음 이직하는 회사에서 연봉을 아주 높게 부를 베짱이 있었고 (면접 볼 때도 너네가 나 안 뽑으면 너네 손해라는 마인드였음), 실제로 내가 요구한 연봉을 받고 나서도 가면 증후군 없이 성과를 낼 수 있었으며, 그 후 이직을 할 때 한번 더 퀀텀 점프를 할 수 있었다. 아주 어려운 길이였지만, 나의 자존감은 나 스스로 너는 소중한 존재라고 최면을 건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고, 내가 나 스스로한테 증명한 그 행동과 결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내가 두려웠던 것은, 나는 원래 솔잎 먹고사는 송충이로 태어났는데, 내 깜냥도 안 되는 용이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점이었다. 그런 무수한 흔들림과 두려움을 지나고 나서, 깨달은 것은 실제로 해봐야 내가 송충이인지 용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나를 발견하는 일은, 무엇이든 해보기 전엔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까지가 한계이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세상이 요구하는 수준과 내공이 얼마나 깊은지. 세후 순수입 월 천만 원을 벌고 싶다면, 얼만큼의 내 영혼과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어야 되는지 한번 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깨닫는다. 아.. 월급 5백만 원 받는 일도 말도 안 되게 힘든 일이구나 라는 걸. 그리고 그 5백만 원 버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다음 단계인 천만 원은 어림없다는 걸. 그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내 한계에 부딪치고 병이 생길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이 되는 포인트가 있을 것인데, 그러면 그때 그만두고, 나의 영혼을 거스르지 않는 다른 길을 찾거나 그도 아니라면, 내가 여유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된다. 설령 처음에 내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래도 행복할 수 있다. 끝까지 자기 한계까지 가본 사람은, 내가 원했던 모습이 허상이었다는 것이 납득이 되므로.


그래서, 나쁜 남자를 내가 온갖 교태를 부려 꼬시고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는 여자 또한, 내가 아. 내 깜냥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구나를 처절하게 깨달을 때까지 고통스럽게 데어 보는 수밖에 없다. 내가 구미호가 아닌 토끼로 태어났는데, 그래도 구미호가 되고 싶다면 온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구미호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보라 (그 방법은 지난 글에 세 가지 썼었다.) 그래서 내가 알고 보니 진짜 구미호였다는 걸 알게 되면 좋고, 그렇지 않은 토끼임을 알게 되더라도 그에 걸맞는 짝을 만나 누구보다 사랑받으면서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자기에게 맞는 짝을 찾는 법도 글로 쓸 예정)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 책 내용을 통해 독자분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들을 전하고 싶다. 참고로 공지영 작가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님에겐 미안하지만) 세 명의 남자와 이혼을 하고, 세 명의 다른 성을 가진 아이를 키운 인생을 살아서이다. 인생의 그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느낀 여자가 그 고통 속에서 할 수 있는 처절한 자기 성찰 후 깨달은 삶의 지혜를 글로 옮겨서인지 구구절절 다 너무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잔인하지만, 인생에서 고통만이 우리를 좀 더 겸손하고, 사람답게 만든다.

이하 문장은 책의 내용에서 맘에 들었던 문장을 발췌, 글의 순서를 약간 편집하기도 하고 아주 조금, 이해가 쉽게 글을 추가 하기도 했다. 괄호 안에 초록색으로 적은 건 뽑은 문장에 대한 내 생각이다. (지난 글에 적었듯이 사람은 나의 내공과 경험한 걸 바탕으로 글을 이해하기에 함께 참고하시라고 적어봄.)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너는 소중하다고. 너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일을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 돼.

우리가 회피하고, 무시하고, 도망치고 싶어 하는 바로 그것이 실은 우리가 진정 풀어야 할 숙제이고 넘어야 할 언덕이며, 결국은 우리를 진정으로 성장시켜 주는 열쇠임을 말이야.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한다. 올챙이는 개구리가, 애벌레는 나비가, 상처받은 인간은 완전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인생이 쉽고 행복하기만 한 것이라고 누가 네게 말했더냐, 하지만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것 아는 순간, 인생길은 쉬워진다. - 인생은 불공평하니까 살기 쉬운 것. 고통이 없어야 한다는 게 더 고통스럽게 한다.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도 고통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 아이러니를 진심으로 이해할 때,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 우리가 서로에게 연민을 가질 수 있게 되니까.)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 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 있게. 그러니 그냥 그렇게 지금을 살면 되는 것.


어른이라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 그토록 부모에게 받고자 했던 그것을 스스로에게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애정이든 배려든 혹은 음식이든. 어느 날 이혼한 나를 비난하고 화를 내는 너에게 그랬지.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너를 키우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엄마가 너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엄마도 인생이 뭔지 잘 몰라서 그랬어. 엄마 인생도 네 인생만큼 충분히 골탕 먹은 인생이야 (와.. 진짜 책 읽다가 공지영 작가의 인생을 아는 독자로선 이 부분에서 빵 터지고 공지영 작가가 인간적으로 더 좋아졌다). 그러니 네가 화를 풀어줘. 이제는 내가 네 마음을 더 알 필요가 없는 것 같아. 그러니 네 마음 잘 아는 네가 널 달래며 살아." 어른이 되었다는 건, '그래서가'가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을 책임질 때 아닐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건, 나 보고 '뚱뚱하니까 살 좀 빼라' '너 얼굴이 왜 그렇게 크니?" "너 다리 굵어" 하는 친구랑 절교하는 거예요. 이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매일 면도를 하며 스스로의 존엄을 부여한 이야기를 말하며) 그 엄혹한 죽음의 순간에도 하늘이 그에게 부여한 스스로에 대한 존엄으로 빛나는 그를 해칠 사람이 누가 있었겠니?

 

생각은 원래 끝까지 하고 나면 절대로 복잡하지 않다. 고매하신 스승님이나 세상의 현자 혹은 성자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지. 너도 알잖아. 네가 정말 아는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있으나, 미처 다 파악하지 못한 것은 현학적으로밖에 묘사할 수 없는 걸 말이야.


(성경 속 인물 다윗은 자신의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가 사경을 헤매다 죽자, 단식하고 통곡하던 것을 바로 멈추고 맛있는 걸 차려오라고 하여 먹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이미 저지른 자신의 죄까지 어쩌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분명히 깨달은, 겸손한 인간의 가장 지혜로운 태도를 취한다. 그건 흘러버린 것에 용서를 빌고 지금 이 순간을 다시 시작하는 거지.


너는 네가 버는 돈보다, 네가 겨우 얻은 커리어보다 중요하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너 자신이야. 너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가끔은 네 자존심을 완전히 버릴 만큼 중요하단다. (와.. 이 표현은 진짜 미쳤다. 내 자존심을 버릴 만큼, 내가 중요하다는 말. 진짜 용기 있고 멋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대부분 남자를 위해 자존심을 버란다 어쩐다 그러는데, 진짜 자존심을 버려도 아깝지 않은 대상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고!! )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혹은 자신의 입장에서만 모든 것을 바라보는 자기 중심주의와는 아주 다른 거야. 나를 소중히 할 때 남도 소중히 할 수 있어. 실제로 남에게 해를 끼칠 만큼 이기적이라고 여겨지는 범죄자들은 자존감이 아주 낮은 사람들이거든.


절대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 중,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알아보는 법 중 그냥 막 선물을 주는 사람을 조심하게 좋다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물질로 상쇄하고 싶어 하는 것이랄까. (와.. 정말 이 미친 통찰. 맞는 말이다. 이 부분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시절 나를 도와주고, 돈 빌려달라고 했다가 때 먹은 친구가 꼭 이랬었다. 나는 그 친구가 내가 대학 갓 졸업하고 여행비자로 싱가폴 와서 구직하느라 돈이 없을 때, 생일날 비싼 밥도 사주고, 좋은 곳도 데려가주고 그랬어서 늘 갚아야겠다는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취직하고 나서 밥도 사고 그랬는데, 언젠가 돈을 2-3백만 원 빌려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했다. 이 친구가 설사 돈을 갚지 않아도, 앙심을 품지 않을 금액을. 그래서 50만 원 정도 그냥 준다는 생각으로 줬었고, 그 뒤로 만날 때마다 5만 원씩 갚더니 (만날 때마다 너무 쓸데없는 선물을 나에게 주었었다.) 25만 원 갚고, 내가 그냥 25만 원 더 이상 안 갚아도 되니까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 인 거 같다고 하고 인연을 끊은 적이 있다 (항상 SNS에 여행 다니는 사진은 꾸준히 올리면서도 돈은 갚지 않음) 그 당시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줬다는 부분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지 않고, 그 만큼의 돈만 빌려 준 건 진짜 잘한 일인 거 같다.)


네가 어떤 스펙을 쌓든 네가 어떤 유학을 하든 네가 어떤 고시에 합격하든, 네가 몸담고 있는 나라의 전체 수준이 높지 않으면 결코 너의 인생은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네가 몸담은 나라의 전체 수준이 높으면 실제 네가 그리 애쓰지 않아도 너의 생은 괜찮아. 이것은 슬프고도 엄중한 진실이란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법. 내가 평생을 싱글로 살지언정, 외국에서 커리어를 쌓겠다고 맘먹은 이유이고, 그동안 쌓은 경험과 내공으로 그 나라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돌아가고 싶은 이유이다.)


신비하게도 늘 베풀어 주던 모든 A는, 받기만 하는 모든 B에게 배신당한다. 나는 그걸 '굴욕으로부터의 비뚤어진 탈출'이라고 불러. 늘 받던 B들은 늘 주는 A에게 그토록 원하는 것을 받으면서 마음속의 분노를 더 키워 간다는 거야. 감사보다 굴욕을 느끼기 훨씬 쉬우니까. 받기만 하는 사람들에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고 싶은 동경이 숨어 있고, 인간에게 그것보다 더한 시련은 없어. 특히 여자들에게는 '주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단다. 마음도 시간도 물질도 말이야. 아주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 이 법칙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주는 것과 받는다는 것, 이것은 참 어려운 일이야. (와.. 이것도 미친 통찰이잖아. 참 맞는 말이고, 그래서 나 또한 내가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관계는 아예 맺지를 않는 편이다. 그리고 또한 내가 무언가를 주면서도, 뭘 받으려는 기대는커녕 이 사람이 나를 욕하지만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준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어떤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표상이다. (안젤름 그륀 신부님이 인용한 에픽테스의 이야기) 이 부분을 이야기한 마침 김창옥 교수님의 강의 내용이 너무나 좋아서 함께 유첨.

https://youtu.be/X1a_OSX0WUw?si=CL61jvCO3TQuFafx&t=358


남자는 변하지 않으며, 변할 생각이 없다. (이 소제목을 이 책의 제목으로 했으면 아마 몇십만 부 더 팔렸을 듯, 이 소제목에 적힌 내용들은 내가 결혼을 결심하게 한 남자에 대한 글을 쓸 때 참고할 예정이라 여기엔 적지 않겠다.)


실제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점을 타고났는지 잘 살펴보고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백합은 가시가 있을 수 없고 나팔꽃은 꼿꼿이 설 수가 없단다. 그것을 부러워하거나 고치려고 해서는 안 돼. 고치려고 하는 순간, 네 영혼은 네가 너를 거부하고 너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알아듣고 말 거야. 때로 영혼은 우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영혼은 자신을 싫어하는 혹은 미워하는 자아가 시키는 일에 복종하지 않아. 영혼은 진정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고 느낄 때만 자신을 변태 시키려고 한단다. 그것도 자신이 타고난 한도 내에서 말이야. (내 씅에 안 차는 일 못하는 주니어일지라도,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말하되 쥐잡듯이 잡지 말고, 조금 잘한 부분이더라도 꼭 우쭈쭈 칭찬해주고 의식적으로 인정해 주면서 일을 시켜야 하는 이유. 설사 그걸로 진짜 자기가 잘하는 줄 착각하더라도, 라떼 생각하면서 아니꼽게 보지 말고 귀엽게 여겨주자. 결국 그들도 나중에 선배가 되면 다 깨달을 것이다.)


 인생의 비책 중 하나, 물어본다.

성공한 이들의 인생 습관 중 하나는 물어본다였지. 잘 모르겠거든, 모호하거든, 헷갈리거든, 오해하는 게 아닌가 싶거든, 물어본다는 인생 비책 중에 하나인지 누가 알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오류를 저지르고, 관계를, 인생을 거짓으로 만들고 말았는지 말이야. 그냥 물어보면 될 것을.  (이건 아마 답을 진짜 아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한 두려움, 내가 바보 같이 보일 것이라는 오해로 대다수 사람들이 물음을 회피하기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그냥 자기가 그렇게 믿고 오해하는 게 더 쉬운 길이라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이거다. 내 무능함 바보 같은 모습도 개의치 않고, (설령 욕을 먹어도 된다는 각오로) 진짜 잘 물어보는 거)


헤어지려는 남자의 마음을 돌리는 단 한 가지 방법은 그를 보내주는 거야. 헤어지려는 남자는 어떻게든 간다. 힘들어서 안 된다면, 남자를 보내줄 수 없다면 강도 높은 심리 상담을 받아보기를 권한다. 이건 정말이야. 너무 사랑해서.라는 말은 거짓이야. 엄마들은 너무 사랑하기에 그 아이들을 떼어내서 학교에 보낸단다. 너무 사랑하기에 자신의 아이들을 다른 사람과 짝을 지어 멀리 보낸단다. 너무 사랑하는 것은 없어. 정말 사랑하는가. 집착일 뿐이지.


고통은 집착에서 온다. 그것으로부터 고통이 온다면 그건 집착인 거야. 세상에서 가장 나쁜 관계는 헤어지지도 못하는 관계란다. 만약 네게 계속 고통을 주는 사람과 (그게 누구든) 심리적 거리를 잘 유지하지 못하면 그게 집착이다. 정말 성실한 사람은 그냥 대화 속에 너에게 투명하게 그것을 내보일 거니까.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감사였어요.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내게 남은 것. 내게 아직도 주어지고 있는 것.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을 자각한 순간 고통은 힘을 잃었어요.


섬세하게 구분해 낼 줄 아는 사랑이 힘이 세다는 것을 말이야. 엄마가 화내는 것이 여전히 두렵고 무섭고 슬프지만,  내가 느껴야 할 것이 꼭 그게 다가 아님을 아는 거 말이야. 사랑하는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낼 때, 그게 정말 내게 화가 난 건지, 다른 사람에게 난 화를 내게 푸는 건지, 그도 아니면 자기 팔자를 못마땅해하며 그저 닥치는 대로 화내는 것인지 희미하게 알아가기 시작한다.


"아 그거요? 괜찮아요. 저에게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거든요" 순간 듣는 사람도, 말하던 엄마도 깜짝 놀랐어. 그래서 이렇게 덧붙였단다. "나빠 보이기도 하는 일이 일어나는데요. 그건 결국 좋은 이로 가는 모퉁이일 뿐이니까요."


돈은 내가 그것을 진정 의미 있게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그러니까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부모님께 선물을 사드리고 친구에게 밥을 사고 적은 금액이지만 의미 있는 기부를 하고) 할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그것. 대한민국 최고 부자들도 절대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그것. 돈으로 절대 그 일부도, 사기는커녕 맛보기도 할 수 없는 것. 그건 마음의 평화다. 이 불면의 밤에도 마음의 평화는 그것과는 별개로 네게 존재하는 것이다.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우리에게 품위를 부여해 줄 그것. 그 평화 말이다. (사실 내가 글을 쓸 때, 감히 내가 뭐라고 글을 쓰지? 세상에 대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라고 생각할 때, 나를 붙잡아 주는 대답은 내 마음 평화이다. 결국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 거니까.)


솔직히 쉰두 살에 내가 나를 보고 오늘이 살아온 날들 중에서 내가 가장 아름다운 날이다.라고 말할 줄 몰랐어.


남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실은 자기 자신에게도 무관심하다.


돌이켜보면 그때도 나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었어.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나 스스로가 누군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은 그러니까, 지금 혼자 있는 게 너무 좋은데 이 사람 하고라면 그 좋음도 양보할 수 있는 거 같다. 이럴 때 하는 거야. 이 사람하고 만나 일찍 헤어질 수도 있다 해도 (그것이 이혼이든 사별이든 혹은 어떤 일이든) 나는 함께 산 나날만큼 엄청 행복해질 것 같다. 이럴 때

 (실제로 나는, 그런 생각이 드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다. 내가 살면서 얻은 최고의 운은 남편을 만난 것이었다. 왜냐면, 나는 저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랑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어도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 일찍이 마음 먹었고,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도 알았기에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혼 도장찍기 직전까지 갔었는데, 그 이야기도 언젠가 글로 쓸 예정)


그러나 바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을 겸손이라고 할 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김은 진실로 진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실행하기 아주 어려워. 진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려면 평소에 자신을 잘 대하고 사랑하며 존중하고 있어야 해.


삶은 자기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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