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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 죽일 놈의 운전

울면서 하는 운전연수

by heize



얼마 전부터 남편에게 운전연수를 받기 시작했다. 나는 번번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의 몰골을 한다. 자의로 따라나서는 일임에도, 벌렁거리는 가슴은 어쩔 도리가 없는 탓이다. 공포감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은 물론, 일 년 내내 따듯했던 손발마저 차가워진다.


한 번은 클락션 '빵' 소리 한 번에 나잇값 못 하고 엉엉 울어 버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며, 아이처럼 구는 나를 다독이는 남편이 어느 때보다 고마웠다. 난 언제쯤 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십여 년 간, 잃어버린 주민등록증을 대신했던 운전면허였다. 운전도 노동이라며 최선을 다해 피해 다녔을 뿐만 아니라, '운전으로 출퇴근 시간을 줄여 보라'는 제안에도 유지관리비 명분의 (내 기준)불필요 비용이 야기할 스트레스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효율과 비용절감이 중요한 나였던 것이다.


입사 후에야 알게 됐다. 운전은 사실상 필수였고, 자주 동료를 붙잡고 부탁해야 했으며, 심지어는 상무님이 나를 대신해 외근을 나가시기도 했다. 민폐였다. 절대 강요는 아니라고 했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는 법인차량을 어렵지 않게 몰았다. 심지어 꽤 자주 몰았다. 아니, 몰아야만 했다. 불편한 마음은 가실 길이 없었고, 난생처음 업무 부적응까지 겹쳤다. 더 이상의 민폐는 나를 갉아먹을 일이었다.



나의 목표는 명확하다. 올해 안에 내 운전을 하는 것. 자존감을 찾는 것. 내 손으로 당장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뾰족하고 날 선, 그리고 믿음직스런 자아실현의 수단이라는 믿음을 직접 증명해 내는 것이다.


P.s : 남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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