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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 Nov 19. 2023

혼자가 되는 게 두려운가요?

제 2화 남 편 같은 남편

하고 싶은 얘기를 먼저 해 봐요. 음..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나요?


결혼 20년 차..

고2딸과 중3 아들을 둔 엄마이자 아내.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속앓이 심한 시집살이 하다가

분가하며 사이가 나아졌지만

결혼 초 남편의 지지가 필요했고 두 아이 낳아 키우며

응원이 필요했던데

남편은 돈 번다는 이유로 냉대하고 현실적인 사람이라

결론만 내세우고.. 그저 빈말이라도 수고가 많다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아니 이것도 못해? 이 정도가 뭐가 힘들어? 남들도 다 이 정도는 한다

너무 유난 떨지 마라..

그렇게 믿고 싶고 의지하고 싶던 남편 등만 바라보다

자식들에게 눈을 돌로 집착 아니 집착으로 나름 어디 내놔도 부족하지 않다 소리 들을 만큼

잘 키웠고,

엄마가 최우선인 큰 딸과

사춘기가 와서 조금은 왔다 갔다 하지만 애교쟁이인 아들..

남들이 보기엔 아주 화목하고 좋아 보인다는데..


남편과 한 번씩 다투다 보면 서로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고

남편은 집에서 제가 집에서 청소, 요리, 살림, 육아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길 바랐고

저는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와 인정하는 말과 지지하는 말이 필요했는데

서로가 원하는 게 달랐지요.

전 육아만 완벽했고, 청소나 요리나 살림은 남편기준에 많이 부족했어요..

이 일로 십수 년 싸움이 무한반복..


남편은 좀 까다롭고 말을 세게 하고 가끔 욱하지만 나름 다정하고 가정적이며 가족을 최우선으로 여겨요.

물론 둘 다 젊은 나이에 결혼했을 당시엔 남편이 사회초년생이다 보니 회사가 더 우선이었고. 독박육아로 혼자 힘든 시간을 오래 보내다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 중학생이 되면서 가정 참여도가 높아졌고요.

그런데 그동안의 힘듦과 설움 이런 복합적인 감정과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부부의 다른 가치관으로 마찰이 잦았고, 점점 이 사람과 이렇게 사소한 대화조차 제대로 나눌 수 없고 답답함을 죽을 때까지 느껴야 한다면 과연 난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숨조차 잘 안 쉬어집니다..

제 상황이 엄청 배부른 상황일까요? 싸울 때마다 지난 과거의 부족한 행동들을 곱씹고 자기의 논리는 정당하고 타당하고 어리숙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거란 거예요.

어리숙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자긴 무척 현실적인 사람이라 감상적인 저를 이해 못 하겠고 어렵다.. 제가 원하는 게 이혼이라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하네요


지병이 있어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하는 약들과 일할 수 없는 컨디션..

만약 이혼한다면..

재산을 더 많이 떼어줄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막상 이혼하면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여리디 여린 고3딸과 겉은 아무렇지 않은 척 센 척하는 마음 약한 중3아들이 눈에 밟혀요..

경제 능력이 없어 남편이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길지 않은 시간 잘 보낼 수 있을지..

나도 진짜 이혼을 바라는 건지..

한평생 이렇게 속앓이만 하다가 접점이 없이 무조건적인 평행선만 되어 서로 다른 곳을 보고 달려갈 것을 생각하면 이혼이 맞는 건지..

폭언까진 아니어도 늘 제 가슴엔 상처로 남는 말들 때문에 남편의 모든 행동들이 자꾸 부정적으로 보이게 되고 미운맘이 점점 커지고 입을 닫게 만드는 거 같아요.

폭언, 폭행, 도박, 바람도 아닌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걸까요?

저는 배부른 투정을 하는 걸까요..?


누구나 때론 사는 게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을 때가 있죠.

매일 아침 일하러 나가는 남편, 공부하러 가는 아이들..

언제나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현재의 모습은 마치 누가 일정하게 그려놓은 패턴 같을 뿐이어서

어떤 재미도 기쁨도 흥미도 느끼지 못해 무료하고, 세상 모든 일이 부질없이 느껴지는 거예요.

거기에 덧붙여 내 편 아닌 남 편 같은 남편.

남편에게 정서적인 유대감을 얻지 못하고 계신 것이 상처의 큰 이유라는 걸 어렴풋이 알겠어요.

어렸을 때 결혼하면서 살아가면서 서로 맞춰보려고 많은 애를 쓰셨고요.

님 마음도 굉장히 여리시잖아요.

엄마라고 생각하니 희생이 앞서서 지금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에 날개가 꺾이는 거 같아 안타까워요.

님, 우선 현실에서 이혼을 선택한다고 가정할 경우 생활고로 더 힘들어지실 게 보여요. 마음 편할 수 있어도 현실을 무시할 수 없이니 감상적인 이유로 자존감에 상처입지 마시고 

아내역할을 '직업'이다, 직업을 수행해 낸다고 생각하시면 어려워도 요령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희생해 이 가정을 유지한다란 생각을 버리시고 남편, 자녀들을 본인 직장에서 자기 할 일만 잘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이 직장에서 퇴사는 언제든 마음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때가 언제이냐의 문제일 뿐. 남편의 용도를 제한해 보세요. 일거수일투족에 의미 부여하지 마시고 난 내 할 일만 열심히 한다.. 이렇게 마음먹는 거죠.

남편과 관련된 의식이 자꾸 주입되면 밀어내세요.

지금 당장 남편이 바뀌기는 어려워요. 상담도 좋은 방법이지만 상담은 남이 아니라 내가 바뀌려고 조언 듣는 곳이거든요. 

우리 냉철해져요. 님이 먼저 살아야 돼요. 그래야 애들도 지키고 맘 추슬러 새로운 방향으로 더 나아가게 될 거라고 믿어요.

내 문제의 중심축을 만들고 그 중심축에서 파생되는 다른 문제들을 둘러본 다음 더 중요한 게 뭔지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게 뭔지 모르고 현실의 문제만 바라보고 감상적인 결론을 내린다면 뒤늦게 후회하며 감당 못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돌이킬 수가 없게 돼 버리거든요..

지금은 남편보다도 님이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야해요.

위로와 격려의 말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독이며 따뜻하게 안아줄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진심 어린 말이 이리저리 우왕좌왕 헤매지 않고 똑바로 전달될 수 있는 두 분만의 진솔한 시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많이 상했겠어요. 고생도 많았겠고요. 

하지만, 님은 무조건 지금보다 더 행복해져야 될 사람이란 걸 잊지 마세요. 

이렇게 아름다운 강변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면서 얘기할 사람이 있다는 것도 

님이 행복한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요.

혼자인게 두려운가요? 아뇨,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두려워하지 말고 큰 파도를 같이 넘어가봐요.

지금 이 순간도 지나고나면 저기 저  강물처럼 흘러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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