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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 May 27. 2024

주일아침에 필요한 말 한마디

하나님의 위로방법

자고 일어났는데 머리가 지끈거리는 두통이 왔다.

주일 아침이라 교회에 갈 준비를 서두르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때마침 남편은 서울에 장례가 생겨 곧 출발해야 했다. 둘째를 데리고 내가 운전해서 교회를 가야 했고, 예배가 끝난 뒤 오후에 또 다른 교회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일정과 친구를 만난다는 둘째를 서둘러 데리고 교회를 빠져나오는 길이었다.

골목을 나와 안쪽 차선으로 유턴을 하기 위해서 천천히 이동한 다음에 앞쪽에 차가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천천히 유턴을 하던 중이었다. 깜짝할 사이 택시한 대가 다가와 있어 부딪힐 뻔한 상황. 당황한 마음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택시가 먼저 지나가길 기다리던 참인데

택시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다짜고짜 내뱉는 말이 "이 ㄴ아!!" 

그 뒤로 폭언에 가까운 욕설과 반말이 난무하면서 도로 위에 유턴하려다 멈춘 내 차를 향해 수없이 밀려든 차들과 뒤섞여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다.

"아니 그런데 왜 욕을 하세요, 아저씨!"라고 외치자

"이 ㄴ아! 너 내가 신고 안한걸 다행으로 알아라 빨리 차 뒤로 빼! "하면서 입으로 호루라기를 불고 도로 위에 다른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 차를 뒤로 빼자, 방금 도로 위에서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폭언과 고성으로 윽박지르던 택시기사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도 욕을 하며 유유히 지나갔다. 


뒤에 둘째가 타고 있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를 친구들과 약속장소에 내려준 뒤 집으로 돌아와 주차장에서 집으로 올라가지 않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대로 위에서 남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심한 욕설과 고성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는 것 같다. 

상시 유턴이 되는 장소여서 앞에 차가 없다고 보고 유턴을 했는데 내가 큰 잘못을 했나..?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본인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도로 위에 차를 멈춘 채 끊임없이 욕을 내뱉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호루라기까지 불어대다니.. 

택시기사의 울그락불그락 화난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턱 무너지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에 서울로 올라가고 있을 남편에게 전화하고 상황을 설명했더니 저녁에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자고 했다. 경찰에 전화해 물어보니 모욕죄로 고소하고 싶으면 경찰서로 와서 고소장을 작성하라고 알려주었다. 일요일 주일 아침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오던 길에 무방비 상태로 당한 택시기사의 폭언과 욕설에 대해 당장에라도 경찰서에 달려가 고소장을 작성하고 내가 신호위반을 한 거면 벌금을 내더라고 그 택시기사에게  욕설을 들었던 부분만큼은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흔히 하는 말로 아침부터 쌍욕을 열 됫박쯤은 들은 아줌마의 마음은 한없이 비참해지고 우울해졌다.

오후에 있을 교회 체육행사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내가 맡은 역할이 있으니 외면하기도 어렵고 아는 권사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겪은 일을 말씀드렸더니 본인 일인 것 마냥 같이 공감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또 경찰공문원인 장로님께도 상황을 여쭤보니 마음의 기운을 차리고 하루만 더 고민해 보고 고소를 할지 말 지 고민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예수님을 믿고 바르게 살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는 나 그리스도인도 아무리 화나는 상황이라도 면전에 대고 그렇게 심한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에게는 분노의 감정과 미움의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일단 이 상황에 더 몰입하지 말고, 마침 체육행사 중이니 몸을 좀 움직여보면서 기운을 차려보자.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있으니, 그리고 3월부터 매일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던 중이고 이제 막 3개월을 넘어가던 참이었는데 이런 일로 그간 쌓아온 기도의 탑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기도 했다.


릴레이가 끝나고 막바지에 이른 체육행사의 끝은 경품추첨이었다.

내 번호는 237번.

세제 티슈 롤휴지와 김이며 각종 생활용품에 커피와 치킨 교환권까지 잔뜩 쌓여있는 경품을 보면서 저 중 하나라도 당첨되면 오늘 아침의 그 당혹스럽고 참담했던 기분이 좀 무마될까..? 그래 뭐라도 쫌 하나 좀 받아보자 하면서 사회자가 번호를 부를 때마다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던 순간이었다.

이제 그 많던 경품이 다 나가고 남은 건 1등 상품뿐. 10만 원짜리 상품권 3장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한 명 한 명 주인공이 발표되고 남은 상품권의 주인공을 호명하는 순간

"2백, 삼십.." 여기까지 듣고 어 뭐지?! 하는 순간 앗!! "칠십 번!" 다시 봐도 내 번호였다.

스멀스멀 기어가듯 걸어가 상품권을 받고 돌아오는 내게 권사님도 장로님도

"거 봐! 하나님이 위로하셨네!"

그 쌓여있는 경품들 중 아무거 나라도 받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제일 좋은 1등 경품에 떡하니 당첨이라니.. 

놀랍다. 원래 이런 거 당첨 잘 안 되는 사람인데 1.. 등?? 내가? 하... 주여!


하루종일 그 택시기사의 무자비한 욕설로 우울했던 마음과 그 마음을 위로해 주던 교회분들이 

"자 이제 상황 끝!"이라면서 웃으시길래 나도 덩달아 웃으면서 환하게 마무리 됐던 해프닝 같은 하루.

1등 당첨에 돈 10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그때 그 분위기와 상황이 참으로 묘한 느낌인 게.. 

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기분이 들었던 건 정말이지 사실이다.


택시기사가 혹여 아줌마가 실수했다 치더라도 폭언과 욕설대신 위험하니까 다음부터 조심하란 말 한마디만 건네주었더라면, 그 바람에 정신이 나간 채로 우울하게 하루를 시작했던 그날 1등은 내가 아닐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고소건은 접어두어야겠다. 그래, 혹여 내 잘못으로 그 기사가 욕설을 뱉게 된 거라면 다음번에는 내가 더 조심해야겠다. 그 택시기사아저씨가 내게 욕은 했지만 나는 그 기사에게 욕을 하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사람의 영혼을 죽이고 살린다는 걸 이렇게 온 몸으로 찐하게 체험했으니 

앞으로 나는 사람을 죽이는 말 대신 사람을 살리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는 사람이 돼야지..

영글어 알알이 맺히는 영혼의 열매처럼 좋은 사랑의 말들을

뜻 밖의 상황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위로해 주신 하나님, 그 힘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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