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영화 '체실비치에서'는 결혼 첫날 헤어진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스물셋, 어렸던 두 남녀는 뜨겁게 사랑했다. 그 두 남녀가 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결혼 첫날에.
영화의 마지막 부분 내가 바랐던 결말이 아니어서 좌절했다. 설마, 설마 했던 그 결말로 향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분명, 저 둘은 이야기를 하고 풀어내고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싶었다. 분명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던 둘의 추억은 참 따뜻했다. 남자는 여자의 꿈을 지지해줬으며, 여자는 남자의 아픔을 보듬어줬다. 갓 대학을 졸업한 두 남녀는 학과도, 관심사도, 거주지도, 살아온 배경도 달랐으나 서로가 시선을 맞물리게 되었고 사랑에 빠졌다. 그 과정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10km를 걸어 의 아르바이트 장소로 달려가던 플로렌스의 모습이, 플로렌스가 자신의 어머니를 웃게 하는 모습에 남모르게 울던, 플로렌스을 공연하고 싶다는 그 장소에서 브라보를 외치겠다는 에드워드의 모습이 이 둘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살아온 배경의 차이, 나아가고자 했던 진로 역시 달랐으나 함께 하고 싶었던 두 젊은 남녀는 '성관계'라는 장벽에 막혀 버린다. 영화 초반 어색한 분위기와 불안해 보이던 두 남녀의 사정은 '첫날밤'이었다.
그래서 여기까지는 아, 서로에게 '숨겨왔던 것들을 보여준다'라는 것을 이렇게 보여주는구나. 이 둘은 진정한 소통을 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결말은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역사학과였으며, 역사책을 쓰고 싶어 했다. 플로렌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으며, 그의 엄마는 과거 사고로 인한 뇌손상으로 상식에서 벗어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가진 아픔 중 하나다. 그는 클래식보다는 척 베리, 로큰롤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플로렌스는 바이올린 전공자며, 사중주로 연주회를 열고 싶어 했다. 넉넉한 형편의 가정에서 자랐고, 그녀의 아버지는 공장 사장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가진 성적인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존재다. 그녀는 로큰롤보다는 클래식을 좋아한다.
본 영화는 에드워드와 플로렌스의 결혼 첫 날로 시작해서, 그 둘이 성관계를 맺기 전까지 긴장감을 덜어내기 위해 그 둘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과거들이 나열된다. 각자 해방된 기분을 느꼈던 첫 순간, 둘이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그들이 어떻게 사랑했는지, 그리고 결혼 전에 어떤 것들을 걱정했는지.
에드워드는 돈 때문에 플로렌스 아버지가 하시는 공장에 취업을 했다. 책상도 없는 작은 공간을 명 받았다. 집도 플로렌스 집의 쪽방에서 지내기로 했다. 이는 에드워드가 하려고 했던 역사에 대한 공부를 접었다는 의미와, 그에게 플로렌스가 그러한 것을 모두 포기할 만큼의 사람이었다. 사실 회상 장면에서는 에드워드의 불쾌감을 볼 수는 없지만 영화 후반 둘의 다툼에서 알 수 있다. 에드워드는 플로렌스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고,
그의 시작을 부족한 돈이 아니냐는 언급을 했다. 이는 에드워드의 마음속에 플로렌스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게 된 것이 그리 달갑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플로렌스는 에드워드와의 성관계를 걱정했다. 심지어 책을 읽을 정도로. 그런 그녀의 불안감은 어릴 적 아버지와의 추억이 부서지며 등장하는데, 구체적으로 화면 상이나 대사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연애 초기 에드워드가 손을 잡는 것을 피할 정도로 스킨십에 조심스러웠던 것으로 보아 아마 아버지에 의해 성적 학대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플로렌스가 성관계 도중 뛰쳐나가기 직전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이 바로 그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말로 자신의 감정을 다 이야기하던 에드워드와 달리 자신의 마음을 숨겨왔던 플로렌스의 감정선을 대사에 집중해야 더 잘 알 수 있다. 플로렌스는 계속 묻는다. '나 진짜로 사랑하지?' 그리고 '미안해, 내 탓이야.', '내가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 플로렌스는 남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신이 충족시키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을까 봐, 오히려 다른 여자와 자고 와도 되니 같이 하자고 말한다. 이 제안이 에드워드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지만.
이 두 남녀의 이야기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참 다른 사람들이 한 평생 같이 한다는 것은 어렵구나. 그리고 이 둘은 결혼을 선택하기 전에 과연 충분히 서로를 알았는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게 했다. 영화 초반부에 플로렌스의 대사를 보면 이렇다. '아, 우리 처음 싸우네.' 이에 에드워드는 '이런 게 뭐 싸우는 거야. 아니야.'라고 말한다.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썼던 그 둘도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이는 첫 싸움, 갈등에 대해서 이 둘이 미숙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끝내 둘은 결혼 첫 날밤에 헤어졌다. 에드워드는 플로렌스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플로렌스는 에드워드에게 자신의 불안감을 말하지 않았다. 이 결말을 보며, 좌절스러웠다. 끝내 결국. 어린 연인은 서로 이해하지 못했구나.
그리고 영화는 체실비치 이후의 두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주로 에드워드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중년의 에드워드는 플로렌스가 낳은 것으로 예상 가능한 여학생을 만나고, 노년의 에드워드는 플로렌스가 그렇게 공연하길 꿈꿔왔던 공연장에, 앉기로 약속했던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그리고 서로가 알지 못했던 사랑의 비밀이 오랜 기다림 끝에 밝혀지는데…"
이는 그 둘이 진짜로 서로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 오랜 기다림 후에야, 중년의 에드워드는 이야기한다. 자신과 첫날밤을 거부했던 그녀지만 진짜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그리고 에드워드 자신도 노년까지 홀로 살며 플로렌스를 잊지 못한다. 서로 상처만 주고 헤어졌지만, 그 어린 연인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본 영화는 1960년대가 주 배경이다. 그렇다 보니 플로렌스가 선뜻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해가 갔다. 그 시대에는 그러한 비밀이, 상처가 흠이 되는 시대였으니까. 자신이 잘 보이고 싶었던 한 사람에게 선뜻 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에드워드는 플로렌스가 자신을 거부했다고 생각했고, 그의 자존심을 구겨졌다. 감정적인 에드워드에게는 그 거부가 상처가 됐다. 미숙하고 어렸던 두 남녀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우리가 어떻게 서로 소통을 해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자기 자신의 갇혀서는 서로를 이해할 수가 없다. 클래식만 듣던 플로렌스가 척 베리의 노래만은 듣는 것처럼, 지루하더라도 클래식 노래를 같이 들어주던 에드워드처럼. 각자의 세계에 갇혀있어서는 안 된다.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던 두 남녀가 결정적인 순간, 서로를 헤아리지 못해 헤어지니 참 안타까웠고, 이러한 갈등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결국 끝내 두 남녀는 결혼을 유지했다고 해도 불행했을까 싶었다. 그러니 본 영화는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이 되지 않았을 때의 불행을 보여준다. 불통은 자기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마음은 계속 아릴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다 싶었는데 이렇게 다시 떠올리며 글을 적고 있으려니 좋은 장면들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샤얼사 로넌이란 배우와 어톤먼트의 작가라는 말에 시사회를 신청했다. 최근에 본 <레이디 버드>와 <어톤먼트>는 내게 명작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작가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어톤먼트를 떠올리니 더욱 그렇다. 영상미는 정말 예뻤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클래식은 플로렌스의 감정선을, 로큰롤은 에드워드의 감정선을, 음악으로 분위기가 아닌 감정선을 표현하는 방식의 연출이 참 좋았다. 선뜻 꼭 봐야 한다고 권하기에 어려운 영화다. 취향을 많이 탈 것 같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조건에 있어서는 추천한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영화관에서 펑펑 울고 나올지도 모르겠다.
p.s. 이번이 첫 시사회 참석이어서 영화 시사 후, 무비톡이 있는 줄도 몰랐다. 분명 관객석에 김형석 작곡가님이 계시길래. 혼자서 신기해했고, 영화 시작 후 키위미디어라는 자막이 나오자 아 영화를 보러 오셨구나 싶었다. 그런데 무비톡이 있었다니, 아무 생각 없이 자리를 뜬 순간이 아쉽다. 다음엔 표를 받을 때, 꼭 여쭤봐야겠다. 혹시 끝나고 다른 행사가 있냐고 말이다.
영화와 어울린다고 생각한 노래
Charlie Puth&Selena Gomez - we don't talk any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