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이란 두려움
‘똑똑’
철컥, 열리는 문소리를 뒤로 나를 맞이한 것은 예상치도 못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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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을 많이 가린다.’ 나의 성격을 단점을 뽑으라면 제일 먼저 뽑는 단점이다. 이를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말이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먼저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것을 정말 못한다. 그걸 고치려고 노력한 모습이 지금의 모습이지만 신입생 O.T 축하공연을 하는 내내 옆에 있던 친구와 4시간 동안 말을 섞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낯가림의 정도를 알려주는 이야기 중 하나다. (그 옆에 앉았던 친구와는 현재 굉장히 친한 사이다.)
‘낯가린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어떻게 새로운 곳, 새로운 얼굴들에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겠는가. (물론 또 다른 나의 친구 중엔 처음 보는 친구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친구도 있다. 처음 보는 친구에게 입가심용 사탕을 달라고 했을 정도니 말이다. 내 친구의 경우는 예외이지 않을까? 내 주변에 이런 친구는 한 명뿐이니 말이다.) 누구나 갖는 ‘새로움’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요즘엔 그 두려움이 약점이 되는 시대인 것 같다. 적극성과 활발함, 처음 보는 곳에서의 적응력,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그것이 강점이 된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여실히 느꼈다.
우리 중학교에서 그 고등학교를 간 학생은 나뿐이었다. 유독 회색빛이던 학교는 내게 정말 어둡고 칙칙하게 다가왔다. 우리 고등학교는 학기를 일찍 시작해서 1월 겨울방학부터 자습과 방과 후 수업시간이 존재했었다. 그런 일정을 따라가면 점심시간이 그 사이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난 같이 먹을 친구를 못 만난 상태였다. 지금이야 혼밥도 할 수 있는 그런 용기를 가졌지만 그때는 혼밥이라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사실 지금도 혼밥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누구와 함께 먹는 밥이 좋다.) 스스로 원해서 혼밥을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따돌림을 당했던 것은 아니다. 입학 전 그 방학 기간은 반이 정해지지 않아 같은 반 친구가 없었고 끼리끼리 이미 뭉쳐버린 아이들의 타이밍 속에 못 끼어들었을 뿐이었다. 그저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급식 줄을 기다리고 있던 나의 뒤에서 들린 목소리가 있었다.
“쟤, 혼자 밥 먹으러 왔나봐.”
비웃는 듯한 어느 남학생의 목소리였다. 자격지심에 그렇게 들린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17세의 나는 상처받았다. 이를 적응기인 3월이 지나고 이제 모여 다니는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 그 친구들은 같이 화를 내며 누구냐고 물었다. 그런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남학생을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그 때 알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구라도 먼저 손 내밀어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먼저 손을 내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많이 용기를 키웠다. 17세, 변해야겠다고 생각한 나였다.
20세의 나는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사람이 어찌 쉽게 바뀌겠는가. 대화를 할 때, 그냥 좀 더 리액션을 크게 하고 나의 본래 성격을 좀 더 빨리 보여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바뀌었다. 아직도 나의 본 모습은 무엇일까 헷갈리지만 마냥 가만히 있는 것은 내 본래 모습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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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 항상 무서운 나에게 기숙사 생활은 또 하나의 도전이 되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일종의 독립이라니, 심지어 무작위로 배정된 새로운 룸메이트라니, 나이는, 전공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이들끼리 단체 톡방에서 처음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첫 만남,
두 명의 룸메이트 중 한 명의 룸메이트가 먼저 도착해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에게 보인 것은 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이라 속옷 차림인 룸메이트였다. 화들짝 놀란 나는 당황한 마음에 열었던 문을 다시 닫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룸메이트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안녕...”
그리고 둘 다 어이없는 웃음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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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있던 벽은 생각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부서진다.
그 방법은 생각보다 사소하고 큰 용기를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
먼저 문을 열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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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거절당하기 연습’ 중
‘모든 이들도 언젠가 거절당할 것이다. 하지만 물어보지도 않는 것은 자기자신을 거절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기회를 잃는다.(p.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