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영화 '김 군'

김 군,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이름.

by 분홍색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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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빨간 점들로 정의됐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은 빨간 점이 아니었다고 증언하는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 영화 '김 군'이다.


5.18 민주화 운동, 교과서에서 처음 봤던 이야기다. 그 당시에 교과서에서는 그렇게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 강풀 만화 '26년'을 봤고, 관련 영화들을 봤고, 단순히 텍스트가 아닌 어떠한 영상 매체로 다가왔을 때의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 본 영화는 충격을 극적으로 보여주기보다 '전달'에 초점을 맞췄다.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전달되는 그날의 이야기, 우리는 그날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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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지만원 씨의 주장에서 시작된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북한군 600명이 일으킨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등장하는 논리는 하나다. 5.18 민주화 운동의 사진 속 사람들이 실제로 북한 사람들이며, 북한 고위 관리들의 얼굴과 비교하여 '과학적으로' 증명해냈다고 말이다. (지만원 씨가 사용한 프로그램은 윈도우 그림판이었다.) 그렇게 그가 사진 속 사람들에게 번호를 매기기 시작했다. 제1광수부터 제600 광수까지. 북한 특수군이라는 뜻의 광수 번호는 광주 시민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기 충분했고, 이에 사진 속 인물들을 찾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하나 둘 지만원 씨가 지목한 사람이 본인이거나 자신의 가족임을 확인하는 일을 진행했다. 그러나 39년이 지난 지금 등장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지만원 씨가 처음으로 지목한 제1 광수, 바로 위 사진의 사람이다. 그는 어디에 있을까?


영화는 4년이라는 추적기간 동안 그 당시의 시민군이었거나 시민군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그렇게 제1 광수의 흔적을 쫓아간다. 이 과정 속에서 영화는 차분하게 인터뷰를 듣는다. 그들의 이야기가 전달된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이기도 했지만 본 영화에서 가장 좋게 느낀 부분이 여기서 드러난다. 자극적인 영상물이 없다. 과한 폭행이나, 직접적인 싸움의 모습을 영상으로 다루지 않고 사진으로 다룬다. 유일하게 스톱모션처럼 사진을 연속으로 보여주며 폭행의 모습을 전달하는 것 외에 영화는 그 당시의 폭력성을 언어로만, 그리고 그 당시를 회상하는 사람들의 눈빛으로 대체한다. 본 영화에서 과하게 과거의 폭력성을 다뤘다면 더욱 심정이 힘들었겠지만 아쉬웠을 것이다. 단순히 이 사건을 소재로만 사용하지 않은 태도가 다큐멘터리 영화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보여준다. 소재를 존중해야, 주제와 메시지를 바로 전달할 수 있지 않은가. 이 작품은 그것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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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광수가 등장한 사진들을 쫓아, 그 사진 속 같이 찍힌 사람들을 추적한다. 그렇게 추적해가며 사람들은 하나 둘 그 사람을 '김 군'이라고 칭한다. 다리 밑에서 지내던 넝마주이 '김 군', 고아였고 넉넉하게 살지 않았던, 부족한 삶을 살았던, 그럼에도 시민군으로서 전방에서 싸웠던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 당시 시민군들의 인터뷰를 보면 정치 상황에 대한 관심이 크게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 분도 계신다. 정치도 모르겠고, 이념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던 그분이 시민군이 된 이유, 가장 크게 분노했던 이유는 군인이 민간인을 폭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 자체로 무언가가 잘못된 것임을 알았기에 시민군이 되었고, 시민군을 하면서, 또는 지나고 나서야 어떤 상황 속에 처했었는지를 깨달은 분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운동을 주도한 것이다.


영화 제목 '김 군',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흔한 이름인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성씨, 그 호칭이 주는 평범함, 그 평범함이 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말이다. 고아에 넝마주이였으며 다리 밑에서 살았다는 '김 군', 그는 정말 평범한 삶이었으며, 오히려 사회적으로 하층민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 평범한, 그저 옆집의 친구, 단골 술집에 자주 오던, 청년들이 그 시대를 살아가며 목소리를 내었다. 목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던 시대에, 총을 들이밀던 시대에, 그들은 당당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쳤다. 지금의 삶이 그 시대가 없었으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러니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런 평범한 영웅들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용기로 목소리로 외쳤다고, 그리고 그때는 총으로, 지금은 초로 그러한 용기와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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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 이후 '김 군'의 행적을 추적해나간다. 끝내 '김 군'과 같은 군용차에 탑승해 도청을 출발했다는 사람을 찾게 되는데... '김 군'은 어디에 있을까.


영화는 총 2번 닫힌다. '김 군'의 추적이 끝날 때, 그리고 도청의 문이 열리며 한 번 더 끝난다.

영화가 종료된 후 이어진 GV에서 인터뷰를 응해주신 분들 중에서 '왜 27일 이후는 안 물어봅니까?'라는 질문을 하셨다고 한다. 그것은 감독님께도 내게도 인상적으로 남았다. 5.18 민주화 운동의 종료 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사람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술을 마시며 고통스러운 39년을 살아온 그분들에게 우리는 이후에 어땠느냐고 왜 묻지 않았을까. 그날의 진실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도 중요하다. 영화가 도청의 문을 열며, 평온해 보이는 광주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을 내린 이유는 이 때문이다. 5.18 민주화 운동은 39년 전에 끝났지만 그 고통, 그 아픔은 지금까지 이어온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는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군인이 민간인을 폭행하고, 조준 사격을 했던,

7200여 명의 피해자(2001년 조사 기준)가 발생한,

최악의 사건에 대해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화 '김 군'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차곡차곡 그 감정을 쌓아온다.

본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아닌, 그 이후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겨있다.

그렇기에 본 영화의 상영관이 전국 3000여 개 중 80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퍼졌다.

찾아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영화가 됨에 아쉽다.


우리는 모두 김 군이 될 수 있다.

평범한 우리의 목소리가 사회를 바꿀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