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문장을 훔치고 싶었다
곰은 엄지가 없는데 유독 판다만 엄지가 있다. 죽순을 벗기기 위해서는 먼저 대나무를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붙들어 잡아야 한다는 필요가 손목뼈에서 손가락을 돋게 했다고 한다. 시는 무엇인가에 대한 어떤 간절함으로 몸에서 손가락을 돋아나게 하는 행위와 같다.
-손택수 시인 <처음 내게 온 시> 중에서
인간에게 손가락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것도 열 개나 있는 데다 필요에 따라 각기의 손가락을 따로따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이따금 안도하곤 한다. 피아노를 처음 배웠던 일곱 살 무렵엔 손가락이 퍽 유연해서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곧잘 연주했더랬다. 하지만 언젠가부턴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리는 일보다 연필을 잡는 데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나는 딱히 쓸 말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날마다 공책에 무언가를 적는 아이로 성장했다.
적어 내려 간 낙서는 때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하고, 어떤 날이면 의미를 알 수 없는 암호문으로 남기도 했다. 지금은 수중에 없지만 스무 살 때까지만 하더라도 수십 권에 달하는 공책과 일기장을 한 권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론 이사를 가면서 버린 게 대부분이고, 몇 권은 불에 태웠던 것도 같다.
이제 와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일 테지만, 변명을 보태자면 당시의 난 지독한 방황기를 겪는 청년이었고 암울한 내용이 잔뜩 적힌 일기장 따위는 없애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물론 술김에 그랬을 게 뻔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기막힌 사실은 그 이후로도 낙서를 '끊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글쓰기에 중독되었다는 걸 깨달은 결정적인 계기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적지 않으면 불안하고, 나라는 존재가 지구 밖으로 내던져지는 기분이 드는 날이면 더욱 다급하게 펜을 붙들었다. 쓸 말이 생각나지 않거나 적을 내용이 마땅치 않은 날엔 필사를 했다. 시도 좋고, 소설도 좋고, 칼럼이든 에세이든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을 종이 위에 꾹꾹 눌러쓰며 내 몸에 각인시켰다.
터트리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은 감정의 고름을 남몰래 짜내며 읽어 내려간 시편들. 내가 처음 필사를 한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바로, 이 시다!"라고 외치며 온몸에 전율을 느낀 시라면 선명하게 기억난다.
등단 직후 태국으로 날아간 나는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외로움을 혼자서 다 겪느라 적지 않은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 세월을 버티게 해 준 시가 바로 고경숙 시인의 <모텔 캘리포니아>였다. 지금도 이 시를 읽으면, 바다 냄새가 아련한 추억처럼 어김없이 코끝을 스치던 라용의 고속도로를 지나, 무일푼 신세로 방콕으로 돌아와 힘겹게 짐가방을 풀어놓았던 '나사베가스 호텔'에서의 첫날밤이 오버랩된다.
'모텔 캘리포니아'는 시의 영역을 넘어 외로움에 흠뻑 젖어 달달 떨고 있던 나에게 '밍크 이불' 같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호텔 방 창가에 앉아 휘황찬란한 네온간판을 바라보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어제보다 1바트가 비싸진 생수 가격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지질한 순간에도 좀처럼 내 머릿속에서 떠날 줄 모르던 그녀의 문장들.
그리하여 시작된 필사. 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감정과 생각까지도 훔치고 싶단 심정으로 읽고 쓰기를 반복하던 나였으나,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치기 탓에 홱 노트를 덮어버린 날도 많았다. 동경과 질투 사이 어디쯤에서 길을 잃어버린 나는 "내가 과연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도 소망이 깊으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경험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벌써 몇 해 전 일이지만,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어 교류를 이어가다 내 첫 시집의 추천사까지 써주신 선생님. 내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고경숙 시인께서 추천사를 써주신 것도 믿기지 않는 일인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니... 선생님과 만나게 된 것이다!
부천 송내어울마당에서 열린 문학 강연에서 <모텔 캘리포니아>를 낭독하는 선생님을 보는 순간, 나는 그녀의 육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심이 방향을 잃지 않고 단번에 내 가슴으로 날아와 박히는 듯한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충격을 경험했다. 제아무리 유려한 문장일지라도 진심이 없는 시는 한낱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믿는 나이기에 더욱 감개무량한 찰나가 아닐 수 없었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안녕하세요? 제리안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자,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푸근하고 친근한 미소로 반겨주시던 선생님. 비록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던 짧은 만남이었지만, 전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꿈만 같다'는 표현 밖엔 떠오르지 않아 가는 길 내내 속으로 '이거 실화냐?'라고 중얼거렸던 나였다.
어느덧 등단 14년 차. 여전히 시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시는 문장을 적는 일이 아니라, 삶을 통째로 옮기는 작업이라는 것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잘게 부수고 해체하여 껍데기로 둘러싸인 자아를 벗어던지고 가장 연약한 내면을 조심스럽게 행간에 안착시키는 일. 그 행위로 말미암아 행간을 뛰노는 또 다른 자아를 끝없이 발견하며 새로운 세상 속의 나로 살아가는 일.
다시 펜을 쥐어야겠다. 문맹이 되어 폐곡선으로 갇힌 내 안의 길을 더듬듯이-.
글. 제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