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
건초염을 앓은 적이 있다.
손목에 중앙, 내측, 외측에 있는 여러 개의 힘줄을 감싸고 있는 막을 '건초'라 하는데, 과도하게 손을 사용하게 되면 손목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힘줄과 이 힘줄을 감싸고 있는 건초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면서 염증이 생기게 된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물었다. 혹시 피아니스트냐고. 아니요, 작가인데요, 하니까 의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작가는 피아니스트만큼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사실 건초염이 생긴 이유는 키보드 탓이 아니라, '필사' 때문이었지만.
미친 듯이 볼펜을 움켜쥐고 닥치는 대로 단편소설을 필사했다. 그 과정에서 손목이 좀 뻐근하다 싶은 감은 있었는데 그냥 무시했다. 결국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나서야 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 결과는 참담했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양치질, 세수, 숟가락을 드는 것마저 불가능했다. 주먹을 동그랗게 말아 쥐는 것조차 무리였다. 그 통증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모를 거다. 손을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고, 심한 날은 눈알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잠자리에 누워서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손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보다 괴로웠던 것은 밤마다 고개를 드는 자괴감이었다. 손이 잘린 것도 아닌데, 신경이 마비된 것도 아닌데 나약함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두려움.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통증'이 두려운 게 아니라, 통증이 사라지는 게 두려웠다.
뮤지컬에는 '코러스 라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주연 배우들과 코러스 사이에 놓인 선. 이것은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이기도 하다. 코러스와 주연 배우의 간극은 건널 수 없는 강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이 선을 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의지는 '분하고 분해서 저 선을 뛰어넘고 말리라'고 다짐할 때만 생긴다.
나는 건초염의 통증 뒤에 숨어버린 채 덜덜 떨고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환경이 아니라, 나의 의지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않는 나 자신이 정말이지 우스워 보였다. 그제야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한 번 뛰어넘어 보자. 미니 깁스를 한 채로 최대한 손목을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두려움을 공포의 대상이 아닌, 끌어안아야 할 대상으로 보니까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두렵다고 생각하는 일을 그냥 하는 거라고 하지 않던가. 잠시 괴테의 말을 빌리겠다. 꿈을 품고 뭔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시작하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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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높이는 법
가장 두렵다고 생각하는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