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았다면 몰랐을 삶 – 6

거절해야만 지켜지는 것들

by 분홍야옹이

아프고 나서

가장 어려워진 건

몸이 아니라

‘거절’이었다.


몸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시댁 부모님이나

친정엄마가 아프실 때도 그렇다.


직접 간호를 해드리지는 못하고

요양사를 불러드리는 쪽을 택한다.


나도

딸이고 며느리인데,

곁에 있어드리지 못하는 선택이

늘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내 몸이 무너져버리면

그다음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걸

나는 너무 잘 안다.



여동생이

부득이하게 강아지를 맡아달라 했을 때,

조카들을 봐달라 했을 때도

나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그 일이 끝난 뒤의 몸 상태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괜찮아, 이해해.”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그 말 뒤에 남는

섭섭함이 느껴질 때

나는 혼자서 오래 생각하게 된다.



친구들 모임도 그렇다.


번번이 거절하다 보면

“뭐 섭섭한 거 있어?”

“왜 자꾸 안 나와?”

이런 질문을 듣게 된다.


설명해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조심하는지

완전히 이해받기는 어렵다.



우리 집으로 놀러 오겠다는

지인들의 말도

나는 자주 말린다.


신혼 초에는

우리 집이 늘 북적였다.


그때는

아직 궤양성대장염이 생기기 전이라

지인들이 우리 집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도

나는 즐거운 쪽에 가까웠다.


친구들, 회사 동료들,

가족들까지.


어느 날은

친구 남편마저

우리 집 숟가락과 그릇 위치를

알아서 꺼내 쓰는 걸 보며

나는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나를

그만큼 편하게 생각해 주는 게

고마웠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잘해주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프고 나서

나는 알게 되었다.


모두에게 잘해주느라

정작 나를 잃는 건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제 나는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보다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나를 이기적으로 만들기보다

오히려

더 오래, 더 제대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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