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인생을 두 번 사는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귀에 인이 박히게 들었다. 유달리 철이 빨리 들었기도 했고, 나 스스로도 초중고 시절 내내 또래들과 어울려 노는 게 이상할 정도로 유치하고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책에 푹 빠져사는 어린이였기에 지적 허영이 심했던 걸 수도 있고, 단순히 너무 조숙한 어린이였던 걸 수도 있지만,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혹시 정말로 내가 인생을 두 번째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불만을 가지기 마련이다. 예외는 없다. 그렇게 한국사회에서 최고라고 추켜올리는 판검사 변호사 의사들, 잠 못 자고 업무과중에 미친 듯이 시달리며 일한다. 돈 많아서 삶에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은 재벌들도 사랑을 이루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도파민 부족으로 마약에 빠져 인생을 내다 버린다. 마치 이 세상에 100% 만족스러운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나 역시도 인생에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만약에 그래서, 지난 생에 내가 죽고 나서 사후세계에 가서 너무 많은 불평불만을 했다면? 그래서 사후세계 공무원과 다음 회차 인생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했다면?
그러니까 이런 거다. 악성 민원인이었던 내가 다음 생이 시작되기 직전, 사후세계 동사무소에 나란히 공무원과 마주 앉아서, 내가 살면서 했던 모든 착한 짓과 나쁜 짓을 종합해서 총점을 계산한다. TRPG게임할 때 내가 가진 총점에서 능력치를 배분하듯이 나의 다음 생을 설정하는 거다.
"자, 여기 보시면 임캔디님은 생전에 기부도 좀 하시고 봉사도 하셔서, 외관 분야에서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좋은 피부', '풍성한 머리숱' 옵션으로 가져가실 수 있고... 대신에 길에 쓰레기 툭하면 버리신 거랑 독설 좋아하셨던 거 때문에 마이너스 포인트도 어느 정도 적립이 되셔서, 디메리트 란에서 '늘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쉽게 살이 붙는 과체중 체질'이랑 '부정교합'이 두 개는 무조건 포함이에요. 또 지병이 있어야 될 정도는 아니지만 '고도난시'정도는 옵션에 포함될 거고요. 이제 가족관계로 넘어가 볼게요. 음, 생전에 가족분들이랑 너무 사이가 안 좋으셨어서, 가족 포인트는 거의 없어요. 보통 가족 쪽에서는 평균 100포인트 정도 가져가시는데 캔디님은 최대로 끌어와도 10 정도 되겠네요. 어떻게 분배하시는지는 마음이지만..."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하는 거다.
"그러면 아예 친부 포함한 일가친척을 다 포기하고 대신 가진 포인트를 전부 친모한테 몰빵 해도 되나요?"
"친부랑 조부모, 사촌 다 포함해서 아예 아무도 안 가져가신다고요? 그렇게 한 군데에 포인트를 몰아넣으면 캔디님을 세상에서 최고로 사랑하는 어머니는 가지겠지만, 어머님 쪽 집착이 약간 있을 수 있어요."
"예 뭐..."
"네 그럼 가족은 그렇게 설정하고, 또 출생 배경 관해서는 두 가지 옵션 중 하나 선택하실 수 있는데, 지역을 지방 쪽에서 중산층 정도로 태어나시겠어요, 아니면 수도에서 중산층보다 좀 아래로 태어나시겠어요?"
"수도요. 좀 가난해도 그쪽이 기회가 훨씬 많을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지적 능력치인데..."
"어차피 공부 천재 될 만큼 높은 능력치도 아니고, 공부만 하는 인생 지겨워요. 창의력에 몰빵 해주세요. 예술가 뭐 그런 거 하고 싶어요. 수학 과학 이런 거 다 빼도 되니까, 재치랑 언어 능력 쪽에 많이 넣어주세요. 글 잘 쓰고 연설 카리스마 있게 잘하고, 늘 아이디어 넘치고."
"그러면 태어나시는 국가에 따라서 좀 고충이 있으실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네. 이민 가죠 뭐."
"그리고 전생에 여자들은 쉽게 사는 것 같다고 푸념을 많이 하셨던 게 접수되셔서 다음 생에는 여자로 태어나실 거예요."
이런 식으로 내가 직접 내 인생의 캐릭터 설정을 한 것 같다, 는 그런 식의 망상을 살면서 종종 했다. 왜냐면 내가 지금 당장 다시 사후세계 동사무소로 돌아가도, 나는 나에게 지금과 비슷한 능력치를 배분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능력치중에서 할 수 있는 최대로 배분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어떻게든 서울에서 살아남고자 했던 엄마 덕에 서울의 임대아파트를 전전하며, 평생을 번듯한 직업을 가져서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라고 주입당하며 살았다. 그런 엄마의 가치관과는 다르게 뛰어난 공부머리나 나를 뒷받침해 줄 집안의 지원은 없었지만 나에게는 창의력이 있었다. 알아서 예술대를 진학하고, 어떤 사회적 안전망도 없다는 사실에 불안에 시달리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 알아서 만들어낸 포트폴리오로 스무 살에 공중파 방송국에 입사했다.
싱글맘으로 본인도 전문대만 간신히 졸업하고 어떤 지원이나 배경도 없이 나를 키워낸 엄마는 더할 나위 없이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인턴쉽 종료 이후 대기업으로 이직해 1년을 더 프리랜서 PD로 일했다. 정규직 전환 제의를 받았지만 한 군데 묶이는 걸 싫어하는 성격과 더 재밌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거절하고 프리랜서 피디로 몇 년을 더 일했다.
좋아하던 케이팝 프로그램에 들어가 아이돌들과 노닥거리고 친구들은 알바를 병행할 동안 나는 직업 하나로 스물두 살에 월 삼백을 넘게 벌었다. 어렸을 때 교육받은 대로 성공한 삶 같았다.
그리고 5년 후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캐나다로 이민 목적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게 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음 글에 이어서 적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