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가 넘도록 첫차를 타고 오겠다던 둘째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남편도 둘째 녀석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 과방에서 아직 자고 있겠지, 어제 술을 많이 마셨나 보지 ~~ 이제 어릴 때 활발했던 성격이 다시 나오나 봐."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 역시 걱정이 되었다.
3월 대학교 입학을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대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했던 우려는 말 그대로 쓸데없는 걱정이 돼버렸다.
둘째 녀석은 첫 일주일을 누구보다 바쁘게 대학 새내기의 신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입학 전 새터에서 만난 선배들과 밥약을 하고, 선배가 1학년 대표를 해보라는 권유에 스스로 지원해서 1학년 과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유치원 때 워낙 까불거리며 질문하기 좋아했던 둘째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게 지냈었다.
아직도 남편은 유치원 아버지교실에서 둘째가 선생님의 질문마다 저요 ~ 저요 ~ 하고 손을 드는 바람에 난처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대학교에서도 조용히 지내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서 내심 놀라워하고 있다.
선배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는 이야기에 어떻게 약속을 잡았냐고 물어보니 먼저 밥 사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너 그렇게 안 할 줄 알았는데 용하네 ~"
"엄마 고등학교 때 친구가 그러더라. 고등학교 때처럼 말도 안 하고 공부만 하면 친구가 안 생길 수 있다고,,,
대학교는 한 학기가 고작 3~4개월뿐이라고... 그래서 먼저 인사하고 먼저 다가가 보는 거야"
"너 좋은 친구 두었구나, 그 친구가 인생을 아는구나. 엄마보다 낫다"
그랬다. 아이들끼리도 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조금 더 살았다고 잔소리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뭐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제야 대학생 아들을 둔 엄마가 된 듯했다.
첫째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코로나로 인해 1학년부터 2년을 원격 수업을 했었다. 거의 대학교 캠퍼스를 누려보지도 못하고 2년을 보냈다. 그것이 그렇게 안타까웠다.
남자들은 군대 다녀오면 예비역이 되고 예비역이라는 무게감으로 아마 대학 첫 새내기 때의 기분을 내지 못할 것이다. 대학 새내기의 자유, 해방감을 누려보지 못한 첫째가 안쓰럽기도 하다.
나이에 맞는 보통의 평범한 일들이 후일 엄청난 추억이 되는 것을 이제는 안다.
둘째 녀석의 대학 새내기 생활을 보면서 30여 년 전 나의 대학 생활이 떠오른다.
번선, 밥약, 새터라는 말도 새롭고 재미있다.
내가 집에서 보는 아들들의 모습과 외부에서 활동하는 아들들의 모습은 다르다.
우리 아들은 이렇습니다.라고 함부로 단정 짓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