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손톱 좀 물어뜯지 마"
첫째가 초등학생이 된 이후 늘 이런 잔소리를 해야 했었다. 입버릇처럼 내뱉던 이 잔소리가 아직도 가슴에 가시처럼 걸린다.
맞벌이 부부로 바쁘게 살며 다섯 살이 되어서야 친정에 맡긴 첫째를 우리품으로 데리고 왔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종일 함께 있었던 아이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낯선 어린이집에서 제일 늦은 시간까지 남아 있어야 했다.
아이도 낯선 이 시간들이 힘들었는지 몸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입원까지 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다.
병원에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아이와 함께 있고 싶은 부모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자책하면서도 결코 다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어른들의 사정에 맞춰 아이는 조금씩 적응을 해가면서 '의젓함'이라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손톱을 물어뜯는 행동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부터 눈에 띄게 자주 목격되었다.
"엄마, 나 괜찮아."라고 말하며 학원을 다니고, 텅 빈집을 지키던 아이가 되었다.
어른스럽고 차분하다는 주변의 칭찬은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지만, 사실 그건 아이가 혼자 견뎌내고 있다는 슬픈 신호였음을 그때는 몰랐다.
오히려 나는 주변의 엄마들의 평가에 들떠 있었던 것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과 상담이 있던 날 선생님은 나의 이러한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일깨워 주셨다.
" 어머니, 1학년 아이는 1학년다워야 해요. 너무 얌전하고 의젓하기만 한 건 1학년스러운 행동이 아니에요. 아이가 스스로 억누르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
그제야 무섭고 외로워도 부모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스스로 다독였을 작은 어깨가 보였다. 다른 엄마들이 엄마한테 네가 너무 의젓하다고 다 칭찬해라고 말한 내 말이 아들에게는 얼마나 큰 짐이 되었을까?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내내 이어졌다. 하지 말라고 하면 알겠다고 대답은 철석같이 하지만, 아들 방을 청소하다 보면 꼭 책상 밑이나 침대 아래에서 여전히 물어뜯은 손톱이 한두 개씩 보였다. 아이의 손가락은 손톱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의 손톱을 볼 때마다 참 마음이 아렸다. 어린 아들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다행히 성인이 된 이후로 조금 나아졌다.
사십이 되어 가는 나이까지는 손톱을 물어뜯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
만약 내가 시간을 되돌려 그 시절로 갈 수 있다면 나는 아이에게 절대로 의젓하다는 칭찬을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마음껏 까불어도 되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울고, 혼자 있기 싫으면 싫다고 떼써도 괜찮다고, 너는 그냥 아이다우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우리 아이는 손도 안 가고 참 의젓해요라며 안심하고 좋아하는 엄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그래야만 사랑받는 줄 알고 자신을 꾹꾹 누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손톱을 물어뜯는 행위로 나타날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