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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Dolphin Feb 13. 2018

우리와 우리 가족 그 사이.

그 좁혀질 수 없는 간극에 대하여.

"미안하지만, 엄마는 외국인이 싫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도 아니고, 우리 어머니는 외국인이 싫다고 하셨다. tv만 틀면 외국인과 국제커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시대이기에, 부모님은 우리에 대해 관대하실 거라 생각하던 차였다. 그가 나를 만나러 세 번째로 한국을 방문하던 그 날 아침, 엄마는 내게 '외국인 남자친구'가 있음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셨다.




그와 나를, 그리고 나와 가족을 모두 '우리'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와 내 가족 또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와 우리 가족 사이의 거리를 중간에서 매 순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가 tv에 나오는 외국인처럼 김치를 먹고, 막걸리를 마시며 아름다운 한국 문화에 감탄을 한다고 해서 우리 가족 모두에게 무조건적인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순한 외국인 손님 그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심란한 표정을 살펴보던 내가 겨우 입을 뗐다.


"엄마는 외국인이 왜 싫은데?"

"내 딸 뺏기는 기분이 들어. 너희 결혼한다고 해도 걱정이고. 나중에 아이들도 얼마나 힘들겠니."


엄마는 몇 년 뒤 우리의 미래까지 점쳐보고 계신 듯했다. 딸을 뺏기는 기분이라니. 내가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그와 삶을 일구어나가는 상황을 일컫는 것이리라. 엄마의 말을 듣고 내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았다.


내가 한국인과 결혼을 해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산다고 하면 엄마는 그때도 나를 뺏기는 기분이 든다고 하실까?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산다는 것은 항상 힘들기만 한 일일까? 엄마에게 되묻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엄마의 굳은 입가를 보며 말을 되삼켰다.


되묻고 싶은 질문을 쏟아내기 보다 침묵이 편할 때가 있다.

 



국제연애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며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상대방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가족과 주위 사람들이 연애를 반대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살아가거나,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tv에서 보는 요깃거리일지라도, 그 외국인이 실제 내 주위 사람의 연인이라는 사실에는 아직까지 거리낌을 느낀다. 아이러니하다.


'우리'와 우리가 아닌 이 사이의 거리.


"우리"라는 말에는 상당히 많은 힘이 내포되어 있다. 나와 너를 묶는 그 단단한 연결 고리. 특히 한국에서는 '우리'가 가지는 힘은 대단하다. 우리나라, 우리 가족, 우리 남자친구, 우리 여자친구, 우리 딸, 우리 아들. 그리고 그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는 때로 폭력이 된다.


"너는 우리의 일부가 아니야."


그 틈 어딘가에서, 과연 '우리'는 '우리 가족'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그가 한국을 방문한 지 3주가 지나고 다시 한국을 떠날 시간이 돌아왔다. 여느 때처럼 그는 환한 미소를 띠고 가족들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하며 따뜻한 포옹을 한다. 엄마는 걱정 어린 말씀과 달리 그의 방문을 좋아해 주셨다. 맛있는 음식을 비롯해 한국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시고 싶다며 그에게 최고의 여행을 선물하셨던 터다.


날씨만큼 차갑게 굳었던 내 마음도 시간이 흐를수록 한결 편해졌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었으니까. 이젠 우리와 우리 가족도 어쩌면 하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의 마지막 날, 엄마의 출근길을 우리가 배웅했다.


"잘 가, G. 다음에 또 놀러와!"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웃으며 말했다. 네~어머님 감사합니다. 환상적인 마무리라고 생각했다. 모든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현관문을 나서던 엄마가 내게 뒤돌아 말했다.


"다음에 또 놀러 오라는 얘기는 괜히 했다."


쾅. 문이 닫혔다.


그래, 아직 멀었다. 한순간 굳은 내 표정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를 말없이 안았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가족의 일부로 맞이하는 건 그 상대가 누구이건 간에 긴장되고 떨리는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 서로를 포용하는 일. 간절히 우리가 가족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일. 그리고 그 '우리'가 가족이 예상하던 모습과 다를 때에 발생하는 알 수 없는 긴장감까지.


국제연애를 시작하는, 혹은 이미 경험한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우리'와 동시에 '우리 가족'을 생각해야 한다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를 이해한다. 둘 사이를 저울질하는 것도, 둘 중 하나를 영영 떠나버리는 결정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 두 세계 사이의 거리감을 확인하는 순간만큼 속상한 순간도 없다.


내가 '빼앗긴' 딸이 되지 않도록, 그가 나를 '빼앗아가는' 이방인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다른 이들보다 어쩌면 더 오랜 시간 노력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언제쯤, '우리'가 '우리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언제쯤 '우리'가 '우리 가족'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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