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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Dolphin Oct 07. 2018

너를 만나러, 40시간의 비행

참 오래도 걸린 초장거리 연애 상봉기

호치민의 새벽 6시 침대 위,


가족들은 모두 곤히 잠든 새벽, 나는 뻑뻑해진 눈을 떴다. 


어젯밤 내내 대학원을 잠깐 쉬고 스타트업에 합류할지 고민하며 뒤척인 탓이다. 


몇 주간 보류해온 고민의 시간이 끝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날이다. 고민하느라 내내 머리가 무거웠던 찰나 호치민으로 가족들과 함께 도망치듯 여행을 떠나왔다. 


불현듯, 결정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메일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랜 고민 끝에 회사에 합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수천 번 머뭇거리던 발송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늦은 오후를 보내고 있을 그에게 대뜸 문자 한 통을 보냈다.



"I am going to Brazil this weekend."



고요한 호치민의 수요일 새벽, 나는 그렇게 3일 뒤 출발하는 브라질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오랜 고민의 끝에, 문득 내 머릿 속에 떠오른 건 너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었을까. 






내가 도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한거지, 라는 생각이 든 건 한국에 돌아와서다. 


목요일 오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며 생각했다.


'여길 이틀 후에 다시 와야한단 말이지...'


토요일 오후에 브라질로 출발해 2주간 머무르다, 돌아온 뒤 사흘 뒤에 새 직장에 출근하는 스케줄이었다.


내가 객기를 부려도 단단히 부렸었구나 생각하니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후회가 무슨 소용일까. 


한 학기동안 열심히 벌어온 장학금을 모두 비행기표 (환불불가) 사는데 써버렸고,


인천에서 LA, LA에서 상파울로, 상파울로에서 그의 도시까지. 총 40시간의 여정을 향해 시간은 달려가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홀로 도착한 인천공항엔 사람들이 붐볐다. 여름을 맞아 해외로 나가는 이들, 들어오는 이들로 뒤엉켜 복잡했다. 그를 배웅했던 겨울의 그 날과 비슷한 풍경이다. 


비행기 한 가운데 배정된 좌석 티켓을 받아들었다. 표를 너무 늦게 산 탓인지 늘 앉는 복도쪽 자리는 이미 다 매진된 뒤였다. 오랜 비행 시간 동안 얼마나 불편할지 걱정이 앞선다. 


비행기를 타러 줄을 서는 길. 괜한 긴장감에 목베개를 만지작 거린다. 추운 겨울 영풍 문고에서 1+1 행사에 함께 산 목베개였는데, 이젠 드디어 짝을 만나러가는 구나. 픽 웃음도 새어나온다. 


마지막으로 

영차- 

다리 스트레칭을 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하겠습니다."


익숙한 안내 방송이 들리자 하나 둘 찰칵-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늘 그렇듯 묘한 긴장감과 설렘, 두려움과 행복으로 점철된 내 마음과 비행기가 땅으로 곤두박칠치지 않도록 기도한다.






내가 탄 비행기를 머리에 이고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을 지나쳐왔을까. 


미국 대륙을 떠나 멕시코를 지나고,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베네수엘라의 밤하늘을 지나며 나는 네가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렇게 도착한 그의 도시. 허리와 어깨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과 바싹 말라머린 입술이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 비행기 의자 위에 묶여있는지를 말해준다.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자마자 벌떡 일어나 머리 위 캐빈에서 짐을 꺼냈다. 


입국 심사만큼이나 와이파이가 잡히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I am here." 


이 문자 한 통을 보내기 위해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날아왔는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는지. 


짐을 찾고, 화장실에 들러 거울을 한 번 확인하고, 드디어 공항 출구 문 앞에 섰다. 40시간의 여정을 함께 한 나의 스웨터를 한 손에 쥐고.


문이 열렸다.


두 눈이 바쁘게 너를 찾는다. 


네가 웃는다.


나를 안는다.


기나긴 40시간의 비행이 너의 품 속에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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