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때문에 재봉틀이 고장 났다

새옹지마라고 해야 되나

by 세번째 삶

마스크 대란은 우리 가족에겐 먼 얘기였다. 코로나 19 사태로 모든 매체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장하기 전부터 나와 두 아이는 거의 집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장을 보러 나갈 때는 이 사태 전에 사 둔 일반 마스크 몇 개를 아껴 썼다. 매일 출근해야 하는 남편은 다행히 회사에서 마스크를 줬다. 최근 마스크 5부제가 시작되기 전까진. 회사서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며 개인이 준비하라고 했단다.


나도 마스크를 사러 줄을 서야 하나 고민할 무렵, 남편이 일회용 마스크보다 면 마스크가 편하다면서 집에 있던 면 마스크를 찾았다. 남편은 직업상 일하는 내내 마스크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일회용 마스크는 종일 끼고 있다 보면 귀 뒤가 너무 조여서 아프다고 했다. 조만간 끝날 것이라 생각하고 참았는데 현 상황이 그렇지 않아 대안을 찾으려는 것이다.


집에 있던 겨울용 면 마스크를 해보더니 역시나 끈이 짧아 귀는 조이고 두꺼운 천은 답답하다고 했다. 임시방편으로 원래 끈을 잘라내고 뜨개실로 넉넉하게 끈을 달아주었다. 내친김에 코바늘 뜨개로 마스크를 크게 떠서 주며 해보라 했다. 남편은


"커서 좋기는 한데, 이거 하고 밖에는 못 나가겠는데?"

검은 실로 뜬 마스크를 쓴 남편의 얼굴을 보니 영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한니발이 떠올랐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바로 수긍했다.


그럼 면 마스크는 어디 가서 사야 하나? 누군가 면 마스크는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다고 했다. 인터넷에서도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고민은 기성품은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직접 크기를 보고 사야 한다고.


장 보러 나가는 길에 약국은 잊어버리고 생활용품점에 들렀다. 일회용 마스크도 팔고 있길래 반가워서 봤더니 덴탈 마스크라고 하는 파란 마스크 열 개 한 봉지에 만 원이 붙어 있다. 이런 마스크 오십 개 한 박스에 몇 천 원 하던 거 아닌가? 마스크 대란이라는 말이 이제야 실감 났다. 다양한 면 마스크도 팔고 있어 면 마스크를 몇 종류 사 가지고 왔지만 모두 남편에게 퇴짜를 맞았다. 남편에겐 너무 작아서 결국 어머님 쓰시라고 가져다 드렸다.




일회용 마스크도 싫고 파는 면 마스크도 싫으니 어쩌란 말이냐. 문득 십 년 전쯤 쓰다 처박아 둔 미니 재봉틀 생각이 났다. 아이들 어릴 때 한참 집안 인테리어 리폼 바람이 불어 이런저런 소품 만든다고 샀더랬다. 홈패션을 정식으로 배울까도 생각했지만 당시에 쓸만한 재봉틀은 거의 삼십만 원 대 이상이었고 언제 싫증 나서 그만둘지 모르는 취미생활을 위해 그만큼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때나 지금이나 시작만 해 놓고 금방 싫증 내는 것은 여전하다). 우선 해보고 계속하게 되면 더 좋은 걸 사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저렴하지만 꽤 똘똘하다는 미니 재봉틀을 골라 샀고 내 생각으론 그 값어치만큼은 쓴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일로 바빠지면서 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꺼내 보니 구석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누런 곰팡이도 피어 있었다. 구석구석 닦고 보니 아직 쓸 만은 하다. 노루발 교체 같은 건 없어서 기본 노루발 하나로 지퍼도 박고 두꺼운 천도 박다 보니 바닥이 덜거덕 거리고 덜덜 소리가 나긴 해도.


그런데 마스크 원단은 뭘로 해야 하지? 직접 마스크 만들 생각은 해 본 적 없어서 감이 오지 않았다. 뉴스에서 봉사자들이 면 마스크를 만들어 기부한다는 걸 보긴 했으나 나도 만들 수 았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시작하자 그동안 마스크에 무관심했던 내가 무안할 만큼 마스크 만들기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가 올라와 있었다. 유튜브와 블로그와 원단 인터넷 쇼핑몰까지.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검색 삼매경에 빠졌다. 눈알이 빠지도록 고르고 골라 원단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마스크 만들기 패키지도 있었는데 밥을 먹는 동안 살까말까 망설이다 들어가 주문하려니 아까 장바구니에 담아 둔 패키지가 품절로 떴다. 세상에, 정말로 대란이구나.


다행히 주문한 원단은 다음날 바로 배송되었다. 처음엔 도안 그리고 만들어 보고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렀다. 오랜만에 쓰는 재봉틀이 손에 익지 않아 덜덜덜 소리가 나는 재봉틀을 더욱 천천히 돌렸다. 그렇게 이틀간 여덟 개의 마스크를 만들었다. 곧 아이들이 개학할 텐데 아이들 것도 넉넉히 만들 생각이었다(처음 마스크를 만들 때는 아이들 학교의 온라인 개학이 결정되기 전이었다).


남편은 편안하다며 꽤 만족스러워했고 오랜만의 재봉질에도 내 솜씨가 녹슬지 않은 것 같아 괜히 우쭐해졌다. 재고 싶은 마음에 오빠와 동생에게 톡을 날렸다.


처음 만든 마스크


- 마스크 만들었음.

- 누구 필요한 사람 있어?

- 만들어서 보내줄게.


오빠는 필요 없지만 자기 회사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마스크 구할 데가 없다면서 열 개쯤 만들어 달란다.

'열 개나? 내가 이틀간 여덟 개 밖에 못 만들었다는데 열 개라는 소리를 부담도 없이 하는군. 그것도 남 줄 거라면서.' 초짜라서 하나 만드는데 품이 얼마나 드는데. 내 노고를 전혀 모르는 듯한 말투다. 인심 쓰고 싶던 생각과 달리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나왔다.


동생은 네 식구 것 두 개씩이면 좋겠단다. 아니면 출근하는 제부 것만이라도. 알겠다고 하고 다시 원단을 주문했다. 그리고 주문한 겉감이 도착하기 전에 남은 원단으로 안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새 원단도 다음 날 바로 도착했고 이번엔 마스크 필터도 한 두루마리를 사서 모양대로 그리고 오렸다.




안감만 만들어 놨는데 재봉틀 고장 ㅠㅠ



미니 재봉틀로 마스크 만들기 시작한 지 5일째. 전날부터 밑실이 자꾸 엉켜대서 엉킨 실 뜯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안감까지 총 세 겹의 천을 접어서 박으니 솔기의 두께를 견디지 못하고 몸살이 났다. 그래도 여태 잘 썼는데 잘 달래서 사용해 봐야지. 열어서 이래저래 손을 대는데 밑실 북채를 끼우는 가마가 튀어나왔다. 뭔가 부러지는 소리는 났는데 조각은 없었고 가마가 다시 고정되지도 않았다. 뭐가 부러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일반 재봉틀과 달리 미니 재봉틀은 가마가 분리되지 않는데 그게 부러져 튀어나온 것이다. 남편과 나는 한참을 고장 난 재봉틀과 실랑이하다가 재봉틀의 사망선고를 내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품이라도 구할까 예전에 구입한 사이트를 찾으니 이젠 취급하지 않는지 흔적조차 없었다. 미련이 잠시 마음에 고였다. 지금은 곰팡이 난 신세지만 그래도 나에겐 꽤 기쁨이었던 녀석인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남편이 물었다.


"새로 하나 사줘?"

"아니. 마스크 만들고 나면 또 안 쓸 거였어. 마스크 그만 만들어야지 뭐."


다른 건 상관없는데 마스크 만들어 준다고 큰소리쳐 놓은 게 미안했다. 마무리 못한 걸 손바느질로 마감하고 나니 동생네 줄 만큼이 겨우 됐다. 재봉틀이 고장 났다는 소식을 다시 톡에 올렸다. 오빠는 안 보내도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쓸만한 재봉틀 하나 사주랴고 물었다. 나는 그 돈으로 마스크를 사는 게 낫겠다고 했다. 만들어 놓은 마스크는 동생네로 택배 보냈다. 안감만 미리 다 만들어 놨기에 손바느질로 더 만들어 볼까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 아이들 것도 넉넉히 만들진 못했으니 나중에 천천히 다시 해 보는 걸로 마음을 접었다.


며칠 뒤 괜스레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미니 재봉틀을 검색해 봤다. 예쁜 미니 재봉틀이 10만 원 정도. 안 산다고 했는데 미련은 남았나 보다. 남편에게 그거라도 다시 살까 물었더니 답이 없었다. 다음 날 남편은 그것보다 제대로 된 초보자용 미싱이 어떻겠냐며 오늘 주문하면 내일 받을 수 있단다. 예전에 내가 사려던 재봉틀에 비하면 훨씬 저렴했다. 이름도 모르는 미니 사지 말고 돈 조금 더 주고 그거 살까 그럼? 단호하게 안 산다고 했던 내 말이 무색하게 나는 금방 솔깃하고 말았다. 있던 것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이렇게 크구나. 오랜 시간 쓰지 않고 갖고만 있었는데도.






며칠째 새로 온 재봉틀로 신나게 뭔가 박고 있다. 오래 묵혀 있던 원단들을 꺼내 박았다. 솜이 꺼진 쿠션을 리폼했다. 그리고 오늘 만들어 두었던 안감을 사용해 마스크를 다섯 개 더 만들었다. 드르륵드르륵. 재봉틀에서 이렇게 시원한 소리가 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처음 겁먹었던 것보다 쉽고 편해서 한결 마음이 놓인다. 이제 다른 이들에게 마스크를 만들어 나눠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마스크 때문에 오래된 재봉틀이 고장났고, 마스크 덕분에 새 재봉틀이 생겼다. 아마 며칠 간은 새로운 모양의 마스크 만들기에 바쁠 것이다.